비밀이야기, 두번째날
첫번째날, 일찍 잠들어버린 덕에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 괜스레 들뜬 나를 들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잠들어버렸다. 다행이었다.
12시간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혈당이 전날과 다름이 없었다. 보통의 내 공복 혈당은 약 100~110mg/dl인데, (이 또한 당뇨전단계로 좋은 혈당 수치는 아니지만) 수면시간을 생각하면 원복 됐어야하지 않나 싶었지만, 며칠 전까지 먹은 음식과 전날까지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몸은 참 정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남편과 하루종일 함께 했다. 나는 다이어트하는 것을 들키지 않게 잘 먹었다. 그래도 남편이 점심에 '귀찮으니 햄버거나 시켜 먹자.'라는 말에 넘어가지 않고, 양배추를 깍두기 국물과 함께 볶아 참치를 넣고 볶음밥을 해 먹었다. 게다가 지연성 알러지로 2~3일에 한번 정도 먹을 수 있는 귀한 계란프라이를 두 개나 얹어서 먹었다. (하지만 우유는 지연성 알러지가 계란 흰자보다 심해서 아예 먹지 않는 것을 병원에서 권유했다.)
보통의 쉬는 날 같으면 먹고 바로 누워있다가 두어 시간 정도 후에 낮잠을 잤을 텐데, 나는 (다이어트 중이니까) 집안일을 핑계로 두 시간 정도 계속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후 2시간, 혈당을 재니 166mg/dl가 나왔다. (식후 2시간 혈당은 140mg/dl미만이 정상이다.) 내가 주말에 식사 후에 미친 듯이 졸린 이유는 역시 '혈당 스파이크'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 혈당으로 고생하시는 분의 가족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뇨가 있으신 분들은 무기력이 가장 큰 적이라고 한다. 혈당이 오르면 피곤함이 몰려오는데, 이때 피곤함을 이겨내고 활동량을 늘려주는 것을 어려워하신다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난 이번 주 힘들었으니까 누워있어도 돼.' 등의 합리화를 하며 병을 키워나간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내가 고생한 것은 맞지만, 과연 고생한 나의 몸과 정신을 위해서 정말 나는 건강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것이 맞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몸과 정신을 위한 건강한 휴식 방법을 찾아보는 것 또한 나의 또 다른 숙제가 되었다.
어쩌면 점심 직후에 먹은 이 샤인머스켓이 혈당을 솟구치게 한데 한 몫했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남편 안 보이게 손가락을 접어가며 열 알을 세어 먹었는데, 탄수화물을 잔뜩 먹은 데다 당도 높은 과일을 먹어줬으니 혈당이 안 오르길 바라는 게 욕심이었지 싶다. 하지만 이 샤인머스켓은 1년을 기다렸던 터라 안 먹을 순 없다.
저녁은 술 한 잔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안심스테이크와 새우오일파스타로 준비했다. 안심 옆에 있는 초록색은 방울 양배추인데,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동시에 조리하다 보니 너무 그을려졌다. 그래도 타진 않았다. 요 근래 '흑백요리사'를 재밌게 보고 있는 터라, 남편에게 '생존입니까?'라고 묻자 '어차피 평생을 먹어야 할 텐데'라며 '생존입니다.'라고 말했다. 내 음식을 맛없다고 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는 성정을 뻔히 아는 남편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 나를 생존시켰다.
방울 양배추는 냉동 기준 1kg에 약 5천 원꼴인데, 구워 먹으면 단맛이 나면서 부드러워서 고기와 곁들여 먹기 좋다. 쌈채소가 지겹거나 구비되어있지 않을 때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 항상 구비해 두는 편이다.
일단 한 2주 정도는 하루 2끼를 최대한 건강하게 먹으면서 천천히 탄수화물 양을 줄여갈 예정이다. 가령 밥 한 공기 먹던 것을 1/2 공기정도로 줄이는 등 나의 적정 섭취량을 찾아갈 예정이다. 여러 가지 다이어트를 해보면서 느낀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교훈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것을 몰랐을 때의 나는 각종 주사(지방분해주사, 삭센다 등)부터 시작해서 양약, 한약 등 남들 좋다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물론 이 방법은 단시간에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습관 자체를 고쳤어야 했던 나의 생활방식을 많이 간과했었다. 그래서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예정이다. 그래서 식습관자체를 극단적으로 바꿔서 다이어트를 할 계획이 없다.
아주 긴 싸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비밀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