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야기, 다섯번째날
글을 한 번 쓸 때, 최소 세 번 이상은 읽는데도 치명적인 오탈자가 잘 걸러지지 않는 때가 있다. 두 번의 출간을 하면서도 매번 느낀 일이었지만 오탈자는 아무리 봐도 완벽하게 잡히지 않는다. 최근에 한 출판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오탈자 자연발생설'이라는 표현을 들었는데, 그 표현이 정말 딱이었다. 아무래도 오탈자는 발행(출간) 이후 생겨나는 것 같다.
엊그제 발행된 글을 보고 오탈자를 알려주신 분이 계셨다. 정말 고마웠다. 댓글로 달면 내가 부끄러워할까 봐 따로 연락을 주셨는데, 그 배려에 또 감탄했다. (잘못된 부분이 있고, 공개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댓글로 달기 어려우시다면 프로필에 '제안하기' 버튼을 통해서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흐린 날씨에 축 쳐진 느낌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밖에는 흐리다 못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의 컨디션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날씨가 흐리면 활력이 떨어지고, 우울하다. 그러다 보면 밥도 대충 때우고 싶어 진다.
기운을 억지로 끌어올려 일단 밥을 하고, 양배추를 썰어 춘천 닭갈비 밀키트를 볶기 시작했다. 그러자 닭갈비에 색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통마늘과 잘게 썬 파를 올려 함께 볶으니 색이 다채로워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이 짜사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시켰는데, 마라 향이 강해 못 먹겠다고 한 '마라 짜사이'도 함께 곁들이니 제법 그럴싸 해졌다. 집에서 혼자 먹는 끼니라도 예쁘게 한 상 차려놓으니 기분이 슬며시 좋아졌다. 그러자 문득 '우울증이 있으신 분들은 한 끼를 먹어도 예쁘게 잘 차려먹는 것을 추천드려요.'라고 어디선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말했던 글을 본 기억이 났다.
매주 일요일은 '빨래하는 날'인데, 개천절에 미리 빨래를 다 해놔서 오늘은 편히 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뭘 하면서 쉴까, 하다가 꿈꾼 내용을 글로 남겨놓기 위해 컴퓨터를 킨 김에 게임을 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검은 신화 : 오공'을 주로 했지만, 오늘의 테마는 휴식이니 '데이브 더 다이브'를 켰다. 그 옆에 (난생처음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고래의 비밀'을 재생시켜 놨는데, 내가 어릴 적 아빠가 왜 쉬는 날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봤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이럴 때마다 느낀다. '아, 아빠가 이래서 그랬구나.'
초밥집 운영을 위해 열심히 잠수하고, 포획하고, 서빙(데이브 더 다이브는 잠수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 초밥집을 운영하는 게임이다.)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저녁은 퇴근한 남편이랑 먹고, 나는 뭘 먹을까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다 어니언 베이글과 땅콩버터, 딸기잼을 꺼내 먹었다. 땅콩버터는 100% 땅콩으로 만든 친구고, 딸기잼은 저당잼이다. 베이글은 생각보다 단백질함량이 높아서 좋은 식사 대체가 될 것 같은데 간식으로 먹었다. (말이 길어지면 켕기는 게 있는 거다.) 이 점은 반성하고 있다. 간식을 과하게 먹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내가 우울하고...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저녁에는 밥을 먹지 않았다. 나름의 방식으로 반성하는 나 자신을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했다. 삼겹살과 함께 남편이 먹지 못하는 방울양배추를 잔뜩 구워서 밥처럼 먹었다. '야채를 많이 먹으면 다이어트에 좋겠지? 남편은 못 먹으니까 더 좋아' 라며 신나게 먹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자꾸 방귀가 나온다. 아, 나도 고포드맵 식품을 피해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 앞으로 야채는 양배추 대신에 숙주, 시금치, 상추 등 저포드맵 식품으로 찾아 먹어야겠다.
매일 조금씩 기록하다 보니, 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내가 특정 기분일 때 어떤 음식을 먹고, 특정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떤 신체반응이 일어나는지,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나를, 당장의 눈앞에 일과 학업 등으로 소홀히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동안 그렇게 지냈다. 야근으로 몸을 혹사하고, 대충 먹고, 스트레스받으면 과자나 아이스크림 폭식으로 풀고. 하지만 이렇게 한 발을 내디뎠으니 현명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덕분에 '당장 괜찮아져야 해'라는 강박대신 이 시간을 즐기며 재밌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