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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Oct 20. 2024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비밀이야기, 열여덟번째날 점심

애도 없는데, 이 나이에 동네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사는 동네는 학창생활을 한 동네도 아니다. 그런 동네 친구를 인스타그램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인스타그램 내에도 수많은 커뮤니티가 존재하는데, 그 안에서 동네친구를 만날 확률을 구하시오. 제가 이 확률을 구할 수 있었다면 서울대에 갔을 겁니다.


오늘은 이렇게 생긴 유일한 동네친구를 만났다. 어제 종일 비가 오고 추워질 거라고 하더니, 날씨가 정말 좋았다. 하늘도 맑았고, 카페테라스에 벽면에 전기 콘센트도 있었다. 아이폰 12 mini를 사용하고 있는 내게 충전기는 소중하니까. 이 친구와 함께 한 시간 동안은 내가 충전기 위에 올려진 핸드폰 같았다. 친구 덕분에 내가 충전을 하고 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다. 내심 만났는데 이야기 중 정적이 많고, 공백이 불편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만나고 싶은 친구였고, 나와 비슷한 이름의 사람이 마침 친구에게 연락할 일이 있어서 연락을 기다리던 참에 내가 연락을 해서 바로 약속이 잡혔다. 운이 좋았다. (습관적으로 '운이 좋다'라는 말을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운을 좋게 하는 비법이 될 수 있다고 자기 계발서에서 읽고 딱히 손해 될 일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중이다.)


요즘 내가 글을 쓰면서 느낀 것들과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결국에 우리의 대화 주제는 '사랑'이었다.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나 자신,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어떤 일, 그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되는 것들, 그렇게 알게 된 나의 X-boyfriend의 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작년에 시놉시스만 잡아뒀던 소설 하나를 입체감 있게 만들어가려고 고민하다가 나는 어떤 생각으로 연애를 해왔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연애 상대와 특징을 적어봤다. 남편을 제외하고, 두 손으로 다 셀 수 없는 수가 나와서 참 그마저도 열심히 살았다 싶었다.


 (앞으로 쓰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해석은 모두 내 개인적인 관점이며,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는 사람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기분이 나쁘지 않길 바라는 바람에 마음을 먼저 전해 본다.)


연애는 결혼보다 이별을 택하는 무게가 덜 하다고 생각한다. 연애는 가볍고, 결혼은 무거워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대체로 연애할 때도 단번에 관계를 끊어내는 편은 아니고 나름대로 기회를 많이 주는 편이었고, 헤어짐을 결정하기까지 수일부터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으니까. 이별은 어떤 형태든 쉽지 않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 나아가서 어떤 그룹 내에 관계도 모자라, 가족까지 결부되어 버리는 관계라 굳이 무게로 표현해 봤다. 나 또한 남편과 진지하게 이혼할 뻔한 적이 있고, 실제로 우리가 부부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끝났을 위기는 많았다고 본다. 맞벌이에 애도 없는데 이혼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 아닌가.


그래서 연애를 할 때와 결혼을 할 때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사랑의 성격'이라는 결론을 내려봤다. (물론 내가 현재 도달한 결론은 앞으로 살면서 다시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연애는 누군가와의 애정이라면, 결혼은 누군가와의 애정이 가족 간의 사랑을 띄는 성격이라고 본다. 우리는 아빠, 엄마, 동생 등 가족이라고 묶인 연결고리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천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등신, 그냥 가족들 안 보고 살면 되지'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누구도 재단할 수 없다고 본다. 만약 우리가 한 사람당 하나의 감정만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끊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가령 굉장히 엄하고 보수적이며, 사랑을 돈으로만 표현하는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를 낳아준 사람이고, 나를 길러준 사람이기에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라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정서적으로 충족되길 원한다. 아버지는 애교가 많은 동생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렇게 아버지를 대하긴 어렵다. 아버지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의젓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업에 좋고 나쁨에 따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나는 아버지가 기분 좋은 모습일 때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다 보니 아버지 앞에만 서면 점점 위축된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요약할 수 없겠지만, 이 부분에 이입했을 때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서운함, 외로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나이 들어 전보다 약해진 아버지를 봤을 때의 안타까움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부모와의 연을 끊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손뼉 친다. 당장의 관계를 포기하고도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혼이 전보다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무 자르듯이 잘라내지 못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 결혼이라고 본다. 주변에서 손가락질하고 쉽게 '야, 이혼해'라고 말해도 당사자가 당장에 끊어내지 못하는 (경제적이든, 감정적이든) '어떤'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연애도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정도의 차이 때문에 결혼은 누군가와의 애정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으로 확대되는 개념이 아닐까 생각했다.


취미미술을 몇 년간 해왔는데, 나는 수업시간에 가장 어려웠던 것이 채색이었다. 단순히 '저 나무는 연두색'이라고 인지했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노란빛이 있는 연두색, 초록빛이 있는 연두색, 검은빛이 있는 연두색 등 연두색의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같은 나무의 잎인데도 불구하고 나뭇잎마다 나타내는 색이 조금씩 달랐다. 이렇듯 하나로 보일 수도 여러 가지로 보일 수도 있는 게 사랑 아닐까. 그리고 연애로 농익은 사랑의 결실로 가족이 되는 결혼이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만난 동네친구에게 연애를 많이 해보라면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관점 이야기가 나왔다. 연애를 할수록 밑바닥의 나를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물론 요즘은 이상한 사람들도 많아서 조심히 만날 필요는 있지만,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연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짜 가족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오래도록 내가 가장 미루고 미루었던 이야기가 바로 '엄마'에 대한 주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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