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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Oct 20. 2024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비밀이야기, 열여덟번째날 아침

글을 읽어주시는 서로 다른 분들이 요 근래 비슷한 질문을 많이 주셨는데, 대부분 글 한 개를 작성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하셨던 것 같다. 내 글 하나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분~4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평균 3분짜리 글에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다른 분들은 얼마나 걸리는지 잘 모르겠다. 질문을 받고 며칠을 살펴봤더니 나는 대략적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매일 이렇게 글 쓰는 시간이 정말 즐겁고, 요즘에는 하루를 보내면서 '오늘은 글에 어떻게 담을까'를 고민하면서 보낸다. 특히나 오늘은 하루치를 세 편에 나눠서 쓰려고 기획을 잡았는데, 쓰다가 두 편으로 줄여질 수도 있고, 한 편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문장은 삭제할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다이어트 변화는 지지부진한데, 내가 밥 먹는 걸 핑계로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기분이라 이런 속내를 비쳤더니 '다른 사람 일기 엿보는 것 같고, 재밌어'라고 말해주는데서 또다시 힘을 얻었다.



글은 10월 2일부터 발행했지만, (발생일 익일 오후 11시 발행이라는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기에) 다이어트는 10월 1일부터 시작했다. 사실 나의 다이어트는 그 이전인 9월 23일부터 시작했다. 기복이 심한 것 같지만, 추세선을 표시해 보면 천천히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보다 더 빨리 앞자리가 바뀔 줄 알았다. 약 25일간의 변화는 2.2kg 감량이다. 보통 일주일에 0.5kg 감량이 건강한 거라고 하니, 이 정도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수치다.


최대 20kg의 감량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열 달은 매일 글 쓸 써야 하는 셈이고, 나의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최소 일 년은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갑자기 압박감이 느껴지니 가볍게 이 정도까지 생각하고 넘어가 본다. 다이어트하다가 중간에 어떤 이유로든 글쓰기에서 도망치면 '빨리 글을 쓰라'라고 강제로 머리채 잡혀서 오는 게 희망사항이다. 아무튼 엑셀로 추이까지 만든 이유는 '나 지금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엑셀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오전에는 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녀왔다. 한 시간 동안 도수치료를 받고,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까지 약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개인적으로 마사지든 도수치료든 받을 때 선생님들이 가장 처음에 시작하실 때 '힘들면 참지 말고 말씀하세요' 혹은 '아프면 참지 말고 말씀하세요'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는 힘든 것을 참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생경한 말이었고, 들을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도수치료도 그 말로 시작됐다.


"아프면 참지 말고 말씀하세요. 이 정도 강도 괜찮으세요?"

"녜"


어깨와 목을 봐주시는 중이라 엎드려있어서 말이 단정하지 않게 내뱉어졌다.


"세게 느껴지시거나 아프진 않으세요?"

"네. 누르시는 건 느껴지는데 아프진 않아요."

"그럼 좀 더 세게 해 보겠습니다. 어떠세요?"

"세게 하시는 건 알겠는데, 아프지 않아요."

"아픈 걸 잘 참으시는 것 같은데, 너무 굳어지셔서 잘 느껴지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아픈걸 잘 참으시는 것도 조.. 좋은 거죠"


도수치료를 진행해 주시는 선생님은 매우 당황한 눈치였다. 말을 몇 차례 더듬으셨다. 가만히 엎드려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일반적인 사람보다 센 강도로 진행해야 하니 에너지 소모가 더 많아 힘들겠구나 싶었다. 미안했다. 아픈 건 죄가 아닌데, 아프니 자꾸 죄스러워진다.


운동선생님한테도 미안하고, 도수치료선생님한테도 미안하다. 요즘 들어 어깨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때문에 집안일을 살뜰히 챙겨주는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설거지하는 것도 힘이 들어 남편이 다 못해도 설거지를 매일 해주고 있다. 우리 집은 바닥이 타일이라 설거지를 하다 튄 물을 슬리퍼로 밟으면 까만 자국이 생기는데, 내가 이 부분을 너무 싫어하니까 설거지가 끝나면 바닥에 생기는 얼룩까지 주저앉아서 박박 닦아준다. 쭈그리고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면 고맙고, 안쓰럽다가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게 내가 식기세척기 사자고 했을 때 샀으면 좋았잖아?


한 시간의 도수치료가 끝나고, 어깨에 주사도 맞았는데 주사를 맞을 때마다 근육이 팔딱팔딱거렸다. 근육이 많이 뭉쳐서 매우 안 좋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주사 놓을 때마다 말씀해 주신다. 요즘 내 몸에 있는 장기가 '저 여기 있어요, 저는 여기랍니다!' 하면서 서로 팔딱거려서 해부학 공부를 하는 기분이다. '너는 거기 잘 있구나. 근데 아프지 않게 있어주면 안 될까? 내가 앞으로 잘할게'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점심은 계획보다 늦게 집에 돌아온 터라 배달. 이렇게 보니까 나 참 배달 많이 시켜 먹는구나, 싶다. 대충 배달어플을 살펴보니 일주일에 세네 번 정도는 배달시켜 먹는 것 같다. 나는 아침을 안 먹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고 저녁만 집에서 먹으니까 꽤 잦은 빈도다. 일주일에 절반정도. 다음 주부터는 배달 빈도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 줄여봐야겠다. 지점마다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던데, 백종원선생님의 중국집은 짜장밥에 올려진 계란이 예술이다. 내가 계란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해놓고 자주 먹는 것처럼 느껴져서 구태여 보태자면 지연성 알레르기 때문에 보통 3일에 한번 정도 먹는다. (계란은 3일에 한 번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아주 슬픈 이야기지만, 나는 한 끼에 계란프라이를 두세 개씩 해먹을 정도로 계란을 사랑했다. 유제품은 사랑하니까 헤어진 슬픈 연인이라면, 계란은 친구라도 좋으니 곁에서 계속 지켜보고 싶은 애틋한 우정이랄까.


유제품 이야기에 생각났는데, 얼마 전에 폭주기관차를 타고 (유제품을 먹고) 3일 만에 오른쪽 턱에 놀부아저씨 사마귀처럼 뾰루지가 '뾱'하고 올라왔다. 벌써 3일째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왼쪽 턱에 자잘한 트러블이 올라왔다. 혹시 세수도 잘하고, 베개 커버 빨래도 잘하는데 얼굴에 트러블이 자꾸 올라온다면 먹는 것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중독이나 급성 알레르기가 아닌 경우, 음식이 원인인 경우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힘들다. 식사기록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식사기록뿐만 아니라 어떤 기록이든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휘발되는 것들이 많아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따로 담았는지도 모른다. 짜장밥을 후다닥 먹고, 친구를 만나기 위한 약속장소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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