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야기, 열일곱번째날
이틀째 혈당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데, 저녁에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공복혈당이 여지없이 치솟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패턴을 알았다는 것. 아마 나는 이렇게 알아낸 패턴을 결국 검진 일주일 전부터 적용해서 공복혈당을 정상으로 만들어보려는 '꼼수'를 발휘할 수도 있다.
어젯밤에 밥을 그렇게 먹고, 육포를 또 씹었다. 드디어 집에 있는 육포와 감자칩 그리고 제로탄산을 모두 끝냈다. 집에 있는 간식들을 아주 조금씩 없애버리고 다시 사지 않고 있다. 핑계 같고, 핑계가 맞지만 내 몫으로 산 건 남편이 건들지 않아서 결국 내가 다 먹어야 한다. 남편에게는 다이어트한다는 말을 못 했으니, 내가 먹었다. 육포, 감자칩 말고도 한동안 제로 아이스크림, 제로 탄산에 꽂혀서 집에 왕창 사뒀는데 제로 아이스크림은 아직도 있다. 큰일이다. 아무튼 그때 제로 스프라이트와 제로 미에로화이바를 거의 매일같이 마셨다. '이건 괜찮아!' 하면서 매일 마셨더니, 진짜 단 것을 찾아서 눈이 돌아버린 적이 있다. 그 뒤로 '제로'도 가급적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물론 이는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고, 아직 연구가 진행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정확한 건 아니지만 '뇌가 단 것을 먹은 것으로 인지한다'라는 것은 내가 증명했다. 그래서 집과 회사에서는 물, 탄산수, 차,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어느 날, 이 글을 꾸준히 봐주는 친구가 '너 되게 잘 먹고살더라'라고 말했다. 바쁜 일상 속에 내가 끼니를 거르고 살까 봐 걱정했는지, 정말 다이어트를 한다고 풀만 먹고살까 봐 걱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치킨을 사랑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은 닭가슴살이다. 그리고 찾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떡볶이다. 그런 내가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은 재택근무라서 남편이 먹고 싶다고 하는 떡볶이를 시켰다. 나는 떡볶이를 정말 단 한 점도 먹지 않았고, 남편 혼자 다 먹었다. 떡볶이 국물도 안 찍어먹었다. 의식적으로 떡볶이를 피한 것인데, 남편은 내가 '나 떡볶이 하나도 안 먹었는데, 오빠 혼자 다 먹었네?'라고 말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가끔은 이런 무관심이 고맙다. 어떻게 보면 다이어트하는 건 이 글 쓰는 것만 안 들키면 될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먹다가 알아차렸는데, 어젯밤 이후로 위경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약을 먹어도 아프던 강력한 녀석이어서 토요일 오전에 내과를 갈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는데, 완료보고와 동시에 위경련도 끝났다. 나는 그 개발에 혼신을 기울였나 보다.
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제어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언니가 오전에 퇴사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파트는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그 언니한테 배우면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직을 한다고 했다. 공허함에 이어 밀려오는 우울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번에 우울하면 유제품이 들어간 음식 말고 다른 것을 찾아 대체하기로 했는데 또 잊어버렸다.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점심을 먹고, 투게더 미니를 먹었다. 떡볶이를 안 먹은 것이 소용이 없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아차렸으니 됐다. 나는 다음번부터 우울감을 느끼면 참치가 들어간 식사를 하거나 간식으로는 견과류를 먹을 것이다. 습관으로 만드는 과정은 지루하고 지난하다.
저녁은 남편이 오리고기 볶음과 불고기를 해줬다. 아직도 우리는 '흑백요리사'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남편이 오리고기 볶음을 내어주면서 '청경채의 식감을 살려 even 하게 익혔습니다.'라고 했고, '이 음식은 어디서 파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신 거죠? 파인다이닝인가요?'라며 답했다.
흑백요리사가 끝난 최근에는 남편과 함께 식사할 때 '서진이네 2'를 보게 됐는데, 거기서 배우 고민시를 처음 봤다. 주말에 밀려드는 주문에 혼잣말을 계속하는 고민시를 보면서 남편에게 '저 행동은 이런 이유로 하는 거다' 설명해 주니까 그제야 남편이 '안 그래도 왜 저러나'했다며 실토했다. 남편은 힘든데도 이상한 노래를 지어 부르고, 춤을 추는 그녀를 보면서 '너랑 똑같다'며 말했다. 그 말이 칭찬 같은데 왜 씁쓸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나도 회사 업무를 할 땐, 업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혼잣말을 하고, 일이 힘들수록 이상한 노래를 지어 부르고 흥얼거리며, 가끔은 바보 같은 행동으로 동료들을 웃기게 하지만 혼자서 글을 쓸 때는 오로지 그 속에 녹여져 있다.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모습이 다른 것 같다. 좋아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감내하는 노력을 하기에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닐까. 그 모습이 부끄럽거나 창피하다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는 나 자신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특하게 여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미디어의 좋은 영향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늘 밤은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도록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