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흔한 단어 18화

인스타그램

by Carroty

약 2년 전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나도 한 달에 백만 원은 벌 수 있겠지?'라는 희망에 차있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인스타그램 활성화를 위한 강의도 듣고, 포맷도 변경해 보고, 색채도 바꿔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1일 1피드도 해봤지만 나의 기량으론 부족한 점이 많았다.


내가 생각한 것만큼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몇 번의 좌절감을 맛보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다들 그 플랫폼 하나를 위해서 아이디어 기획, 촬영, 영상 편집 등 열정을 쏟아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그걸 바탕으로 소모임이나 강의를 진행하고, 몸이 몇 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루를 분단위, 초단위로 쪼개어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당시 투입된 프로젝트를 핑계로 인스타그램을 등한시하고, 가끔 스토리만 올리며 연명하는 계정으로 시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하지 않은 것은 한 가지 결심 때문이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던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노트필기 중 하나가 어그러지면 그 페이지를 다 찢어내서 처음부터 다시 썼다. 화이트를 쓰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화살표 하나가 어긋나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트 필기에 그렇게 불필요한 열과 성을 쏟는 친구들은 공통점이 있다. 정돈된 필기만큼 성적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뭐, 물론 요즘 필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은 많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쏟느라 공부는 잘 못 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그게 '완벽주의'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삶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로 인해서 잃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게 된 어느 날, '완벽주의'가 아닌 '완료주의'로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피드의 형식이 바뀔 때마다 기존 게시글은 다 삭제 또는 비공개 처리 후 새로운 마음으로 게시글을 올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인스타그램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민하고, 변화한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다. 이는 내가 '완료주의'로 살기 위해서 얼마만큼 '참아내고'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미 계정 폭파를 몇 번 하고, 피드 삭제를 수없이 해냈을 거다. 그리고 어쩌면 인스타그램 성장의 측면으로 봤을 땐, 계정 폭파를 하고 재시작하는 것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인플루언서들의 계정 성장 과정을 보면, '이게 첫 계정은 아니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됐으니 말이다. 적어도 나의 인스타그램은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 나의 여정을 차곡차곡 담아가고 싶었다. 찢지 못하는 일기장처럼 말이다.


종이 질감으로 시작한 피드가 글씨 크기가 달라지고, 피드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당근 볼펜과 함께 찍은 책 사진으로 바뀌고, 책 사진만 찍어서 미리캔버스 또는 캔바로 편집한 형태로 가공되었다. 소위 '잘 나간다'는 북스타그램의 형태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나만의 브랜딩을 하기 위해서 여러 시도를 해봤다. 당근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써보고, 색'을 입히고, '이미지'를 얹는 등 나만의 브랜딩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해봤다. 지금의 피드의 포맷 하나를 만들어내기에도 쉽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 예약발행을 했고, 예약발행을 위해서 일요일 하루를 갈아 넣었다. 우습게도 성과는 없었다. 피로가 극에 달해 20주를 쉬다가, 퇴사가 결정되고 다시 피드를 올리다가, 인수인계에 치여서 또 9주를 쉬다가. 어떻게 보면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통해서 나의 당시 에너지레벨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109주 전, 첫 피드의 좋아요는 16개였다. 어젯밤 오랜만에 올린 게시글의 좋아요는 15개다.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 '인스타그램으로 월에 백만 원을 벌어야지!'라는 허황된 꿈은 꾸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내가 읽은 책과 내가 읽은 브런치의 글을 소중하게 담아놓는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 계정은 나의 기록이고, 나의 삶이 담겨있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완료주의'를 더욱 공고히 다져나가고 싶다.

keyword
이전 17화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