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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흔한 단어 19화

안부

by Carroty

봄비는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 사랑이 오롯이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달은 건, 겨우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처음엔 봄비가 남편과 나, 둘 다 균일하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11시 무렵, 우리가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봄비는 흥겹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던 어느 시기, 나는 생활패턴을 바꿔 오전 5시 30분에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봄비는 그 시간에 같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내 곁에 머물렀다. 일에 집중한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봄비는 발을 구르며 신나게 달려왔다. 환한 얼굴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 이리 와, 봐! 나 똥 쌌어! 잘했다고 칭찬해 줘!"


그렇게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내내 봄비의 따뜻한 선물은 나를 향한 사랑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봄비가 처음부터 이렇게 똥 싸는 것을 기쁘게 전달하거나 자랑스러워하진 않았다. 몇 년 전, 한동안 봄비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체크하는 것이 대소변이었기에 봄비가 건강한 똥을 싼 것을 볼 때마다 기쁜 마음에 며칠 동안 칭찬해 주었고, 그런 내 행동이 봄비에게는 '엄마는 내가 똥을 싸면 좋아해.'가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상대에 따라서 관심의 표현을 하는 말이나 행동이 하나씩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봄비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괜찮아?'라는 질문을 한다. 봄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무심히 묻다가,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그 질문을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당시 나 또한 그 질문에 아무 대답하지 못하고 상대를 바라보기만 했었다.


내게 '괜찮냐'라고 물어주던 사람은 나의 아빠였다. 그때는 아빠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고,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고 화가 났기 때문이다. 아빠의 괜찮냐는 질문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금에서야 아빠가 왜 그렇게 질문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빠의 '괜찮아?'는 '내가 너의 안녕과 평화를 염려하고 있어.'라는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을 것이다. 남편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남편은 단지 묻지 않을 뿐이다.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



봄비에게 엄마는 '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빠에게 장난감을 물어다 주면 함께 장난치고 놀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하면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보단 친구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봄비는 남편과 단 둘이 집에 있을 때가 최고의 휴식시간이라고 느낄 것이다. 서로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고요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주말 내내 나와 함께 하는 봄비는 월요일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 얼굴에 피곤이 묻어나 있었다. 3일 이상 연이어 집에 있는 날이면 봄비의 얼굴에 이렇게 쓰여있는 것 같았다.


"엄마, 어디 안 나가?"


내가 외출 중일 때, 남편은 봄비의 한없이 편안한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주곤 한다. 이런 사진을 받을 때마다 질투가 난다. '쟤는 왜 나랑 있을 땐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지?' 싶어, 괜히 내가 못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는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봄비는 우리 집에 처음 온 그 순간부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강아지'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보호센터에서 데려와 집에 내려놓은 봄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단비의 밥을 먹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그런 봄비를 보곤 웃음을 터트리며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지금의 봄비 사진과 우리 집에 온 첫 해의 봄비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기 봄비는 우리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시간 동안 주눅 든 얼굴로 있었다. 그저 배가 고팠던 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치를 보기보단 살아남으려 했던 것일지도.


그랬던 강아지가 남편의 말을 잘 새기고 익혔는지 우리와 함께 산 지 몇 개월 만에 남편의 말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개'가 되었다. 집은 말 그대로 개판이 되었지만 그 모습은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남편의 말은 봄비가 우리 가족이 되게끔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내가 나로 살게 했다. 결혼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유산을 하고, 세 달도 되지 않아 아빠를 떠나보낸 나는 공황장애가 왔다. 공황을 알아차리고 병원 진료를 권유한 것부터 괜찮다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 것도, 조금씩 힘을 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곤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응원해 준 것도 다른 멋진 말이 아니었다. 무심하게 내뱉는 그 한마디였다.


"괜찮아. 그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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