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퇴사를 하고 한 달 남짓. 대략 10년 전에 근무하던 직장에서 만난 친구에게 대체직원 제안을 받았다. 실업급여 수급이 불가할 수도 있다는 현실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휘몰아치고 있는 찰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당장 오케이를 하고 싶었지만,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친구에게는 남편과 상의해 보고 다시 이야기해 주겠다고 일단락 지었다.
남편에게 고민이 생겼다며 화두를 열었다. 남편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더니, 예상된 말을 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남편과 살면서 가장 힘이 된 말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맥 빠지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답을 정해야 할 때, 그는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뭐든 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게끔 한다. 좋든, 싫든. 내가 선택한 것에 내가 책임지게 된다. 그를 탓할 수가 없다는 것은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큰 함정이다. 나도 가끔은 그를 책망해보고 싶기도 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이런 고민이 있을 때마다 ’짜잔! 너의 마음은 이게 정답이야!’하고 바로 답이 튀어나오진 않는다. 성격이 급한 나는 그게 참 답답하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근데 일을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건 아닌데... 당장 건강상태는 차치하고, 8월이랑 10월에 병원 예약 잡아 놓은 것도 다 틀어지게 될 거고. 아! 나 하기 싫네.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고 있잖아.“
필리핀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려고 하면 방법을 찾을 것이고,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핑계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하고 싶은 이유보다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고 있었다. 경제적인 빈곤도 일상생활의 자유로움을 이기진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삶을 더 누리고 싶은 것이다. 한 달이면 충분히 쉰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저변에는 ‘아직도 쉬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혼자서 고민하던 것을 누군가 대화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고민 중이라며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만, 상대방은 ‘너 이미 마음 정하고, 나한테 말하고 있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 케이스가 이번 경우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대중교통을 타거나 내가 퇴사한 지 모르는 사람들의 연락이 오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HRV 수치상 그렇다. 종일 빨간불이 들어오던 내 수치가 이제야 조금씩 초록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태로 다시 사회로 내던지면 나는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치달을 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조바심은 간혹 내가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도록 한다. 나는 7월 한 달을 쉬고, 8월부터 ‘작가’로 살아가기로 해놓고 어느새 ‘현물’에 눈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좇던 가치를 잠시 잊고 현실과 타협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다른 생각을 잊도록 더 열심히, 치열하게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이미 이직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