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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흔한 단어 21화

실업급여

by Carroty

뉴스에 '실업급여 부정 수급'에 대한 헤드라인이 몇 번이고 올라왔다. 그걸 보며, 실업급여 수급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련하리만큼 정직하게 일해온 내게 '실업급여 수급 불가'라는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많이 망가져서 불가피한 퇴사였기에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만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자진퇴사는 심사가 매우 까다롭다고 했다. 회사 내 제도를 모두 이용하고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서 퇴사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했다. 15일 휴직 제안에 그걸로는 나아지지도 못할 것이 너무 빤하고, 돌아와서 다시금 내 밀린 업무를 다 해야 할 것에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무의미한 것에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면 내가 더 아파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휴직을 하지 않고 바로 퇴사했다. 하지만 고용센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라도 했었어야죠."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마치 '네가 잘못했다'는 낙인이 이마에 찍힌 것 같았다.




회사 인사부에서는 내가 필요한 서류를 직접 발급해 주는 것에 대해 난감함을 표했다. 해당 서류를 내게 주면 껄끄러워질 것을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아닌 센터로 직접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센터에서는 회사에서 보낸 서류를 직접 읽어주며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줬다. 인사부 직원의 회피가 무색해졌다.


그렇게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몇 번을 오갔고,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자진퇴사에 대한 실업급여 수급 불가 판정을 받았다. 진술서도 2장 가까이 자필로 써서 갔음에도 무색하게 '불가'라는 답변은 너무나도 빨리 되돌아왔다. 힘껏 멀리 던진 줄 알았던 공이 내 머리 위에서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진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억울했다. Chat GPT가 된다고 했는데,라는 생각에 '구독료나 탐하는 무쓸모한 Chat GPT 사기꾼'이라고 욕을 했다. 그러다가 센터에 담당자들이 원망스러웠다. 다시 회사 인사부 직원이 나를 위해 문답서를 작성해주지 않은 게 서운했다.


이래저래 남들만 탓하고, 화가 났다. 그러다 그 사람들이 과연 내 분풀이의 대상이 맞을까? 내가 그 사람들의 탓을 하는 게 맞을까?라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상황이 맞지만, 내가 그들을 탓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될까?


문득 깨달았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방법을 찾고 진술서를 쓰고 내 '역할'을 해낸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냈을 뿐이었다는 것을. 마치 버스 문이 닫히는 순간, 헐떡이며 달려오다가 발걸음을 멈춘 사람처럼. 버스나 기차가 제시간에 떠났을 때,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나를 탓하는가? 아니면 제시간에 출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해낸 운전자를 탓하는가? 물론, '아,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라고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만, 결국 이는 제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이 상황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했을 뿐이라는 거였다. 괴롭고 힘들어도 휴직, 그 15일이라도 했었야 했는데,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조금만 더 빨리 올걸'과 같은 느낌의 탄식이었다.



모두 나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히 본인이 하는 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뿐이다. 상황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을 나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7개월의 실업급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몇백만 원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정도로 한 달에 몇천만 원은 쉽게 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부족할수록 감정은 쉽게 흔들린다. 그렇다면 나는 돈 때문에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아쉬워서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걸었다. 매미소리를 들으며, 살살 불어 땀을 식혀주는 바람을 느끼며 도착한 햄버거 가게에서 마음 대신 뱃속을 채워줬다. 한 모금의 제로 콜라에 마음이 먼저 가라앉았다. 그리고 뱃속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든든해졌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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