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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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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라 Feb 28. 2022

가지 않은 길, 가고 싶은 길

눈이 내리면


1월 어느 날의 기억.

밖을 나서는데 온 세상이 하얗다. 와- 언제부터 눈이 내린 거지? 모자를 뒤집어쓰고 눈발 날리는 거리를 걷는다. 예쁜 길을 혼자 걷는 기분이 색다르다.





길도 나무도 계단도 온통 하얀 이불을 덮었다. 같은 곳이지만 어제와 완전히 달라진 거리를 걷는다. 나풀거리는 눈송이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상쾌함이 퍼진다. 차갑다기보다는 시원하게 하얀 눈이 내 얼굴을 간질이며 살살 녹는다.





늘 걷던 산책로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던 반들반들한 그 길은 어디로 갔나. 가야 하는 길이 있었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 모두 사라졌다. 어디를 둘러봐도 하얀 눈밭이다.





그냥 걷는다. 내가 지나가니 발자국이 생기고 그게 길이 된다. 어느 곳을 밟아도 괜찮다. 내가 가고자 하면 길이 되는 거였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이 아닌, 나 스스로 만든 길이다. 길을 내고 걸어가는 기분이 묘하다. 신나게 쪼르르 나만의 발자국을 남겨본다. 나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매일 보던 길, 매일 걷던 길이 낯설다. 인적 없는 하얀 공원을 홀로 걷는다. 소리 없이 소복이 쌓이는 눈. 나무도 길도 풍경도 하얀 새로움이다. 금방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이다.






밤사이 내린 첫눈, 눈부신 쿠데타



이어령 선생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나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눈 내린 아침, 고요하지만 힘이 센 눈. 쿠데타처럼 곧 사라지니까 소중한 눈. 경이로운 풍경.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다가 눈 내린 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2월의 마지막 날. 이제 겨울은 가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오려나보다. 봄이 오는 건 반갑지만 하얀 눈을 볼 수 없다니 너무나 아쉽다. 올해는 몇 번 보지도 못한 풍경이라 이렇게라도 글로, 사진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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