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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Aug 03. 2023

더현대에서 가구 본 적 있나요?

이름도 몰랐던 그 브랜드 식탁과 의자 

인테리어에 관해 쓰다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하나 풀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갖는 거실과 투룸에 내가 꼭 새것으로 장만하리라 마음먹은 가구는 딱 2개, 침대와 거실식탁&의자였다. 특히 거실 식탁은 다이닝 외에도 독서, 차마시기, 손님 접대에도 활용하리라 마음먹어서 무려 한달을 서칭 끝에 구매했다. (난 옷을 10분만에도 사는 사람이라, 한달은 물건 고르기를 한 최장기간 기록이다)  


내가 원한 식탁의 조건은 

6인용일 것 -> 4인 으로 사람을 자주 초대하는 편인데, 시중 4인 책상에 4인이 앉으려면 옆구리를 치기 일수라, 최소 6인용 테이블을 원했다. 

원목일 것(다리까지) -> 철이 긁히는 소리에 매우 예민한 나는 세라믹 테이블을 극혐하는 편이다. 그릇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팔을 얹었을때 차가운 온도도 싫다. 그래서 묵직하면서도 따뜻해보이는 나무를 원했다. 

유행에 타지 않을 것 -> 최신 트렌드에 맞춘 세련된 가구 한개가 집에 있을 경우, 가구가 인테리어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그 한 가구 때문에 인테리어를 거꾸로 바꾸는 경우가 생긴다. 


저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책상이 얼마일 거라고 예상하는가? (난 50만원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현동 가구거리, 백화점, 이케아까지 살펴본 결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괜찮다 싶으면 100만원이 쉽게 넘을 수 있다는 거다. 


 침대를 여의도 더 현대백화점에서 사다보니(지누스 ->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기가 많은데, 매장이 있다고 하여 방문하여 구매했다. 매트리스와 헤드까지 130만원 정도 지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온 김에 식탁까지 구경을 하기로 했다. 세라믹 식탁이 유행을 하다보니, 받침은 나무일지라도 상판은 거의 세라믹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원목식탁이 그렇게 인기가 없나 할 찰나, 눈에 딱 띄는 식탁을 발견했다. 


공식 브랜드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진만 보고도 어떤 브랜드인지 맞혀보세요! (출처: 00브랜드 홈페이지)


그저 무난하기 그지없는 따뜻한 월넛, 카멜 색상의 원목식탁. 설명을 더 하고 싶은데, 너무 깔끔한 원목식탁이라 더이상 무슨 형용사를 통해 표현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책상 같기도 하고 다이닝 테이블 같기도한 그 책상은 다리꼬기에 습관이 있는 내가 다리를 꽈도 걸리는 거 없이 견고해보였다. 스리슬쩍 앉아서 책상의 표면을 한번 손으로 훑어보고 있으니, 저 멀리서 직원이 뛰어왔다.


어머, 손님 눈이 너무 좋으시네요. (전 그냥 나무식탁이 좋아서요)
이 브랜드 아시죠? (아니요)
이거 가격 너무 잘 빠졌어요. 원목식탁 요즘 잘 없는데, 필요하시면 하나 가져가세요. (필요하면 하나 그냥 가져갈 수 있나요.?)


그제서야 브랜드 로고에 한번 눈길을 주고(봐도 뭐라고 읽어야할지 모르겠더라), 식탁 오른쪽 구석에 있는 가격표를 한번 확인했고, 눈을 의심했다. (0이 더 붙은건 아닌지 진심으로 고민했습니다)

얼마였게요~?  (출처: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


12,000,000원

할인해서 천이백만원이면 원래는 이천만원이었다는 건가. 120만원을 잘못 쓴게 아닌가. 


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게 북유럽에서 추위를 강하게 이긴 oo나무로 만들어져서, 뒤틀림 하나도 없고 가벼운데 묵직해요!(가벼운데 묵직하다는게 뭔소린가 싶지만, 정말 가벼운데 묵직해보였다)
지금 앉아있는 의자도 너무 편하시죠~ 의자까지 하시면 정말 할인 많이 들어가는 거에요! 


순간 촉각이 생각없이 앉아있던 나의 엉덩이로 향했다. 아무 생각없이 털석 앉았던 의자는 요즘 유행하는 라탄식으로 앉는 부분이 세팅되어 있었고, 겹겹이 엮인 라탄은 적당한 푹신함을 주고 있었다. 

해당 의자는 개당 2,000,000원으로 4개하시면 추가 할인 들어가고 있습니다:) 


책상이 1,200만원인데 의자가 800만원이다. 도합 2,000만원짜리 식탁과 의자완성.

책상에서 당장 손을 떼고, 의자에 붙어있는 내 엉덩이도 서둘러 떼었다. 아이고... 귀하신 식탁과 의자에 앉아있었군요... 


 (글을 쓰려고 여의도 더현대에 입점함 모든 브랜드들을 검색해서, 읽을 수 없었던 그 로고를 찾은 결과, 해당 브랜드는 바로 칼한센앤선이었다.)

저 o가 아닌 기호는 뭐지 했는데, 그냥 똑같이 알파벳 o로 읽히는 것 같았다. (출처: 공식 홈페이지)


칼한센앤선은 110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브랜드로서, 그 가치와 품질을 인정받아 현재는 덴마크 왕궁에 납품되고 있다고 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덴마크 왕실에서 사용중이라는 로고가 떡하니 있다) 전통적인 수공예 기법을 고수하면서도, 20세대 덴마크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한스웨그너를 만나 감각적인 디자인까지 체험할 수 있는 가구이다. (솔직히 몰랐고, 이번에 찾아보면서 그렇다고 한다 ㅋㅋ) 특히 앞선 의자는 칼한센앤선의 대표적인 시그니처 의자인 와이체어로서, 나는 시중에 해당 디자인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카피 제품이었고 원조가 이 브랜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문득 그 매장에 온 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가구를 살까? 연봉 1억이어도 2천만원어치 식탁은 무리일 것 같은데, (아닌가, 연봉 1억은 괜찮을라나..?) 최신 유행하는 하이엔드 가구처럼 모양이 아방가르드하거나 키치하지도 않은, (디자인만으로는) 노멀 그 자체인 식탁에 천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전편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내가 결국 구매한 식탁과 의자는 이케아 합판 식탁과 조립형 나무의자 2개였다. (이케아 나무 의자도 생각보다 비싸서 나머지 2개는 플라스틱으로 쿠팡에서 주문했다.) 가격만 놓고 보면 이케아는 정말 모든 사람이 인테리어에 도전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혁신적인 브랜드이다. 2천만원의 가치에서 60만원으로 기회비용을 줄여줬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칼한센앤선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가구 디자인의 원조 브랜드의 가치는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의 나는 2천만원짜리 식탁과 의자 앞에서 여의도 더 현대에서 내가 가구를 보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범해보이는 물건조차 (내 기준) 비싸게 느껴질 것이고, 애당초 백화점에서 '평범'이 무슨 의미랴. 백화점은 고급진 물건을 파는 곳이지, 평범한 물건들을 파는 곳이 아닌걸. 이렇게 색다른 브랜드 적립(+1) 경험이 늘어났다. 



※ 그날 매장에서 직접 구매를 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구매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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