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완벽주의자(4)_세탁기를 마주하는 것은 꽤 아팠다.
전편 : 감정의 세탁기를 돌려보세요.
매일매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외로움이라는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약을 먹고(하루에 비상약을 5번씩 먹은 적도 꽤 된다) 감정일기를 쓰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살이 빠졌고, 무엇보다 눈물이 많이 났다. 손수건을 소지하지 않으면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정도였는데, 세탁기를 바라볼 때마다 돌아가는 내 감정보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가야만 하는 세탁기 자체가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안쓰러움
내가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느낀 감정은 안쓰러움과 불쌍함이었다.
이것은 29년 동안 내가 나 자신에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항상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 목표를 달성하는 나는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나름의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나의 관점 속에 사실 실패할까봐 두렵고, 무시당할까봐 두려운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가 있었다. 진정한 해리포터 덕후로서 빗대어 말해보자면, 해리포터 마지막 편 <비밀의 성물 part2>에는 호크룩스로서 살인마법을 당한 해리가 사실은 영혼을 8개로 나눠버린 상처받은 볼드모트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해리는 거의 골룸같은 비주얼을 하고 있는 볼드모트를 바라보며, 친구들과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등을 받지 못한 볼드모트를 안쓰러워한다. 회사에 앉아서도 감정일기를 쓸때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고, 나의 내면은 근 일주일을 바들바들 떨고, 아파하고, 이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불쌍해했다.
-일주일 후, 한참 차분해졌지만, 난 삶의 의욕을 잃은 채로 또 다시 선생님을 찾아갔다. 일주일 동안 쓴 감정일기는 무려 a4로 10장이 넘어갈 정도로 방대했고, 각각의 장은 눈물 자국으로 중간중간 알아볼 수 없었다. 그 10장짜리 종이를 꼬깃꼬깃 소중히 접어 선생님께 제출했다.
나 : 선생님, 말씀해주신대로 했는데요. 세탁기를 돌리면 돌릴수록 제가 너무 안쓰럽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많이 나고, 무엇보다 자기연민에 빠진 것 같아요. 제가 저를 불쌍히 여기면 안되지 않나요?
선생님은 내가 쓴 감정일기를 천천히 읽어보신 후, 한곳에 큰 동그라미를 쳤다. 내가 쓸쓸하고 아프지만, 그래도 돌아가야만 하는 세탁기에게 미안하고, 돌아가주어서 고맙다고 쓴 부분이었다.
선생님 : 눈물이요? 그까이거 마음껏 흘리셔도 됩니다!
이거 보세요!! 내 마음한테 고맙다고 하셨네요! 이것이 수용입니다.
선생님은 본인만 보고 계시던 큰 30인치 모니터를 내쪽으로 돌리며 한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보여주셨다. 거기에는 내가 있었다. 최근에 이런 정서적 완벽주의자를 위한 강의를 회사에서 진행하셨다고 하신 선생님은 경직된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이런 유형을 더 잘 찾아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 ppt 한장에 나의 모든 행동이 간파되어 있었다. 처음에 얘기했던 투시(남탓), 억울함에서 나를 직면하는 순간 느끼는 슬픔과 안쓰러움, 입체적이라고 자신하는 나 자신이 한장의 ppt로 설명될 정도로 나는 사실 단순하고도 지극히 노멀한 정서적 완벽주의자의 전형적인 스텝을 밟아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두 번째 스텝, 사실 자기연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슬픔을 느끼는 과정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자기위로 단계였다. 이 자기위로의 아픔을 견뎌야 진정한 자기애로 나아갈 수 있다며, ppt는 자기애라는 단어에 반짝이는 효과까지 뽐내고 있었다. 한번도 나 자신을 바라본적이 없었던 나는 이제까지 나를 불쌍히 여기는 행위를 자기연민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를 시도하지 않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감정의 모든 회피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29년 만에 진정한 자기애가 무엇인지 깨달아가고 있었다. 외롭다!! 쓸쓸하다!!고 외쳐대기 보다,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인정하고, 나에게 감사를 건내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