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오디세이 ⑦방역차(防疫車)와 환경위생(衛生) 차
#특수활동차
여름철만 되면 동네 골목길에 어김없이 출동하는 특수활동차가 있었다. 특수활동차는 특수한 임무 수행을 위해 차체와 장비를 맞춤형으로 제작한 특수 차량을 말하는데, 방역차(防疫車), 청소차(淸掃車), 환경위생(衛生) 차, 살수차(撒水車), 제설차(除雪車) 따위를 말한다.
특수활동차와 아이들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유독 아이들이 환호한 차가 있었으니 바로 방역차였다. 방역차는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소독약을 내뿜는 차량인데 임무 특성상 주요 활동 시기가 여름이었다. 70년대는 사회적 위생 인프라가 취약할 때라 무더운 여름날 불시에 방역차가 동네 어귀에 나타나곤 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옛날 방역차는 트럭 뒤에 방역 기계를 싣고 소독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특수활동차라기보다 특수 업무 수행차였다고 할 수 있겠다.
#방역차 출동의 시그널
방역차는 출동 시 소방차처럼 사이렌을 울리지 않는 대신 멀리서도 들릴 만큼 차체(車體)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는 특징이 있었다. 아이들은 놀고 있거나 집에 있다가 붕~ 붕~ 붕~ 소리가 들리면 벼락같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방역차에서 나는 소리는 소독약을 발산하는 기계장치가 작동되는 소리였다.
아이들은 그냥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방역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 전속력(全速力)을 다해 질주했다. 그 이유는 방역차 꽁무니에서 무지막지하게 뿜어져 나오는 짙고 뿌연 소독약 연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선점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방역차가 동네에 떴다, 하면 아이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방역차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Ffggs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와 현란한 기체 군무(群舞)
약품 냄새와 석유 냄새가 뒤섞인 소독약은 묘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소독약 연기와 소독약의 독특한 향에 열광했다. 대기 중으로 춤추듯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가는 소독약 연기를 쫓아 아이들은 저마다 고함을 지르며 방역차 꽁무니를 열심히 따라다녔다.
방역차는 소독약 연기가 동네 구석구석에 빠지지 않고 파고들 수 있도록 천천히 움직였는데, 그 속도를 아이들은 충분히 따라잡았다. 아이들과 방역차의 줄다리기는 방역차가 동네를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특이한 소독약 냄새와 연기 때문에 그 시절 방역차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기화(氣化)돼 연기로 모습을 바꿔 대기 속에서 현란한 기체 군무(群舞)로 존재감을 발휘하는 소독약은 중독성이 만만찮은 냄새에 힘입어 시각에 이어 아이들의 후각까지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방역차의 또 다른 이름, 연막소독차(煙幕消毒車)
방역차는 연막소독차(煙幕消毒車)라고도 불렸는데 아이들끼리는 그냥 소독차라 불렀다. 연막 소독은 모기 따위의 해충을 박멸(撲滅)하기 위해 살충제에 석유를 섞어 희석한 용액을 고압(高壓)으로 분출시킨 연기를 통해 소독하는 방식이다.
요즘에는 연막 소독 대신 살충제를 물에 희석해 연기와 냄새를 없앤 친환경적인 소독법인 연무 소독(煙霧消毒)으로 대체됐다.
#어찌할 수 없는 불청객(不請客), 환경위생 차
출동할 때마다 난리굿을 친 방역차와 달리 아이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특수활동차도 있었다. 인간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배설물을 수거해 가는 환경위생 차가 그랬다.
환경위생 차는 재래식 화장실이 보편적이었던 당시에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집 집마다 화장실 바닥에 쌓인 배설물을 치우기 위해 수시로 불렀다. 가정마다 화장실 사정이 달라 환경위생 차는 예고도 없이 불쑥 동네에 나타났다.
#환경위생 차 출동의 시그널
방역차의 출동 낌새를 차체 소리로 알아차렸다면, 불청객 같은 존재인 환경위생 차는 자극적인 거름 냄새로 반갑지 않은 등장을 눈치챘다. 일단 환경위생 차가 떴다, 하면 온 동네에 비상이 걸렸다. 비상 전령사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똥차 왔다, 경계경보 발동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어머니에게 알리기 바빴고 식구들은 부뚜막이나 마루에 놓인 음식물을 치우고 장독대 뚜껑을 닫느라 부산을 떨었다.
#부르르 떠는 호스의 몸체와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
환경위생 차에는 운전기사와 또 한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공무(公務)를 수행하는 지자체 직원들이었다. 직원 둘은 먼저 지름이 5~6cm는 됨직한 굵직한 호스를 차에서 내려 공무 집행 대상 가정의 화장실까지 끌고 가 목표지점 안에 연결했다.
호스가 조준점에 안착하고 난 잠시 후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배설물이 호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뒤섞여 맹렬하게 동네에 울려 퍼지는데 그때 호스의 몸체는 눈으로 느껴질 정도로 부르르 떨렸다.
기계 소리와 배설물이 빠져나가는 소리는 꽤 성가셨는데 작업 내내 사방팔방으로 퍼지는 암모니아 냄새는 더 성가셨다. 코를 막는 아이들도 있었고, 방문을 꼭 닫고 환경위생 차가 떠날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암모니아 냄새는 환경위생 차가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가셨다.
#출몰 시간이 짧은 청소차와 거북이걸음으로 지나가는 살수차
이틀에 한 번꼴로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골목 어귀에 나타나 득달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떠나기 바쁜 청소차와 한여름 대로변 가장자리를 따라 아주 천천히 지나가며 아스팔트 위에 물을 뿌리는 살수차도 그 시절 익숙한 풍경이었다. 내가 살았던 대구는 눈이 귀해 어릴 때 나는 제설차를 본 적이 없었다.
방역차와 환경위생 차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는 아득한 옛날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