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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골목길 오디세이 ⑨동네 방앗간

by 박인권

골목길 오디세이 ⑨동네 방앗간


#명절 때 가장 바쁜 곳

명절 때만 되면 동네에서 가장 바쁜 곳이 있었다. 그곳은 하루 종일 드나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방앗간 이야기다. 곡물을 가공하는 시설을 갖춘 방앗간의 기능은 먹거리와 직결돼 있어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고 주민 모두가 고객이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살았던 고향 동네에도 번듯한 방앗간이 있었다. 평상시에도 방앗간 주인은 바빴지만, 추석이나 설 연휴를 앞두고는 온 가족이 다 동원되고도 손이 모자라 임시로 일용직 일꾼을 급하게 데려다 부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양념거리와 떡 공장 겸 주부 사랑방 공간

기계화와 공장화의 시대 흐름에 밀려 지금은 대도시에서 방앗간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70년대의 방앗간은 가정집 필수 양념거리와 떡과 같은 특별식을 책임지는 시설로 주부들의 사랑방 구실도 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먹기 좋게 썬 가래떡. ⓒTeemeah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참깨 볶는 냄새와 희고 긴 가래떡

우리 동네 방앗간은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 자동차가 오갈 수 있는 큰 길가에 있었다. ●●방앗간이라고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쓴 간판을 단 방앗간이 눈에 들어온다 싶으면 참깨를 볶는 고소한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자극했고 떡 찌는 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방앗간 앞을 지나갈 때는 늘 입맛을 다셨고 호스처럼 생긴 쇠 파이프에서 꿈틀대며 빠져나오는 희고 긴 가래떡을 보는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가곤 했었다.


#맵고 따가운 고춧가루의 공격

도로로 나가기 위해서는 방앗간 앞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따금 여간 고역(苦役)이 아닐 때도 있었다. 주부들이 사시사철 요리에 사용하는 고춧가루를 빻을 때가 그랬다. 영업시간에 방앗간의 셔터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고 무방비로 개방된 넓은 공간을 유유히 뚫고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맵고 자극적인 고춧가루 냄새와 따가운 기운이 두 눈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해 오면 눈물이 샘솟듯 솟아 나오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예닐곱 살 때 고춧가루를 빻으러 방앗간에 가는 어머니를 멋모르고 따라나섰다가 혼쭐이 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방앗간 소리

그런데도 방앗간에 대한 추억은 좋았던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나는 방앗간에서 멀찌감치 들려오는 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방앗간 소리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짜고 빻고 갈고 볶고 뽑고 찌는 소리였는데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짜는 것은 참기름과 들기름, 콩기름과 같은 기름류, 빻고 가는 것은 곡물, 고추, 찹쌀, 멥쌀, 보리쌀, 콩, 팥, 대추, 밤, 볶는 것은 참깨, 들깨, 콩, 찹쌀, 멥쌀, 보리쌀, 뽑는 것은 가래떡, 찌는 것은 시루떡이다.


흰 송편과 모시송편. ⓒKorea.net/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인상적인 가래떡 자르는 모습

방앗간에서 나는 여섯 가지 소리를 수행하는 장비는 곡물분쇄기와 깨와 콩을 볶는 기계, 기름을 짜는 압축기, 가래떡을 뽑는 떡 기계, 전기와 물, 수증기로 시루떡을 찌는 대형 찜통 등이다. 내가 특히 재미있어한 장면은 방앗간 주인이 하얀 김을 뒤집어쓴 채 먹음직스럽게 실체를 드러내는 가래떡을 가위로 일일이 자르는 모습이었는데 대략 40cm 크기로 잘랐던 게 아니었나, 기억한다.


우리 집에서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방앗간에서 짜서 먹기도 했고, 도로 건너 시장통 기름 가게에서 사다 먹기도 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말린 고추를 가져다가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빻았고 추석 명절 때는 갈아 놓은 멥쌀가루를 사다가 집에서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백일이나 돌맞이 기념 떡인 백설기. ⓒwizdat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백설기와 시루떡

아버지 생신날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백설기와 시루떡을 방앗간에 주문 제작해 식구들과 친척,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백설기는 원래 백일이나 돌맞이 기념 떡인데 아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집안의 행복을 위하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먹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찰지고 쫀득쫀득한 식감이 자꾸 손을 가게 하는 떡이다.


쌀가루에 콩고물이나 팥고물 따위를 층층이 깔아 시루에 쪄낸 시루떡은 달고 고소한 감칠맛이 뛰어났는데 백설기나 시루떡 모두 고급 간식거리였고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쌀가루에 콩고물이나 팥고물을 층층이 깔아 시루에 쪄낸 시루떡. ⓒHyeon-Jeong Suk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꿀에 찍어 먹었던 가래떡

나는 구정(舊正) 때마다 먹을 수 있었던 가래떡을 제일 좋아했었다. 방앗간에서 막 뽑아낸 가래떡을 집에 가져와 10cm 남짓한 크기로 잘라 꿀에 찍어 먹으면 꿀맛이었다. 꿀이 없을 때는 흰 설탕에 찍어 먹기도 했고 아무것도 찍지 않고 가래떡 본래의 심심한 맛을 즐기기도 했다. 대청마루 소쿠리에 바쳐둔 가래떡이 썰기 좋게 굳어졌을 때 어슷하게 썰면 떡국떡이 됐다.


#한겨울에 구워 먹는 별미, 가래떡

잘라 놓은 가래떡과 떡국떡을 난로 뚜껑 위에 올려두면 떡의 겉면이 노르스름하고 부드럽게 바삭거릴 정도로 익는데 쫀득한 맛이 살아 있으면서 아삭한 식감에서 우러난 고소한 맛까지 음미할 수 있었다. 가래떡을 구워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한겨울에 먹는 구운 가래떡은 나의 최애(最愛) 별미였다.


설탕을 넣고 한 컵 타서 마시면 속이 든든했던 미숫가루.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미숫가루

방앗간과 미숫가루에 대한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식구들은 미숫가루를 다 좋아했는데 수시로 방앗간을 드나든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가 집에서 물에 불리고 말린 찹쌀과 멥쌀, 보리쌀을 가져가 볶아서 만든 미숫가루를 두세 숟가락 떠 설탕과 함께 물에 넣고 야무지게 저어 한 컵 마시면 속이 든든했다.


명절 때만 되면 몰려드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떠들썩했던 방앗간 모습은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흘러간 풍경이 됐다. 세월은 가고 추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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