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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⑤공중목욕탕(沐浴湯)

by 박인권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⑤공중목욕탕(沐浴湯)


#사우나의 옛날 이름, 목욕탕

사우나의 옛날 이름은 목욕탕이다. 공식적으로는 공중목욕탕 또는 대중목욕탕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사우나가 냉탕 온탕은 물론 쑥탕과 건식 사우나, 습식 사우나, 입식 샤워기, 휴식 및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건강 증진 시설을 갖춘 현대식 목욕탕이라면 옛날 목욕탕은 냉탕과 온탕으로만 구성된 단출한 목욕 공간이었다.


70~80년대 초까지 목욕탕은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나 이후 찜질방 등 세련된 시설과 일부 스파 기능, 쾌적한 공간을 겸비한 24시간 사우나 시대가 열리면서 90년대 들어 점차 설 땅을 잃어갔다.


1. 좌식 사우나 시설과 큰 세숫대야, 작은 세숫대야를 보면 70년대 공중목욕탕이 생각난다. 20231008_163637.jpg

좌식 사우나 시설과 큰 세숫대야, 작은 세숫대야를 보면 70년대 공중목욕탕이 생각난다. 그때 세숫대야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고무 세숫대야였다. ⓒPARK IN KWON


#때 밀러 가는 목욕탕

옛날 목욕탕은 샤워기도 앉아서 사용하는 좌식(坐式) 스타일이었고 뜨끈뜨끈한 온탕에서 몸을 불린 뒤 때를 밀어 피부를 매끈하고 깨끗하게 단장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옛날 목욕탕에서는 몸을 씻는 것도 씻는 것이지만 몸에 낀 때를 때수건, 일명 이태리타월로 박박 밀어 각질을 털어 내기 위해서 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날마다 샤워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지금의 생활양식과는 딴 판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목욕탕에 가는 일은 그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었고 때를 밀고 나면 하늘을 날아오를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든 것도 당연했다고 할 수 있다.


2. 입식 사우나 시설. 20231008_163624.jpg

입식 사우나 시설. ⓒPARK IN KWON


#목욕 품앗이

그때는 목욕시설을 갖춘 가정이 별로 없어 세수와 머리 감고 발 닦는 것 말고는 몸을 제대로 씻을 수 없었던 시절이라 벼르고 별러 큰맘 먹고 가는 곳이 목욕탕이었다. 그러다 보니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둔 일은 때를 미는 것이었고 식구들끼리 혹은 가깝게 지내는 이웃 몇이 함께 간 것도 서로 등을 밀어주는 품앗이할 목적에서였다.


사정이 여의찮아 혼자 가는 사람도 많았는데 얼굴도 성도 모르는 처음 만난 사이라도 스스럼없이 상대의 등을 밀어주는 모습이 아주 흔했다. 혼자 가더라도 등을 못 밀어 애를 태울 일은 없었으며 인정도 많았고 품앗이 정서도 두터운 시절이었다.


3. 작은 때 수건. 20231006_091849.jpg

작은 때 수건. ⓒPARK IN KWON


#이태리타월의 추억

이태리타월은 때를 벗겨내기 쉽게 까칠까칠한 섬유로 만든 수건인데 70년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긴 때수건은 없었고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때수건만 있었다. 때수건을 사용하는 방법도 흥미로웠다. 때수건만으로 몸을 닦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손이 들어갈 수 있게 디자인된 때수건 속에 마른 수건을 집어넣어 이용했다.


이때 때수건에 약간의 물을 묻히는 게 중요했는데 때수건에 적당한 물기가 올랐을 때 피부가 따갑지 않고 상하지 않을뿐더러 때도 술술 잘 밀렸기 때문이다. 물기가 없고 마른 때수건으로 몸을 너무 세게 밀면 살갗이 따갑고 심할 경우 찰과상(擦過傷)을 입을 염려가 있었다.


4. 냉탕. 20231008_163840.jpg

냉탕. ⓒPARK IN KWON


있는 힘 없는 힘을 다해 박박 미는 것을 유달리 좋아한 손님들도 있었는데 주로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가 그랬다. 남자인 내가 직접 본 것처럼 아주머니도 거론하는 근거는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렸을 때 고향 집 근처 동네목욕탕에서 특정 부위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른 아저씨를 본 적도 많이 있었다.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야무지게 때를 밀어야 민 것 같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었었는데 보기에도 좋지 않고 살이 타들어 가는 통증에 시달릴 것이 뻔해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온탕. 20231008_164030.jpg

온탕. ⓒPARK IN KWON


#등 밀이 품앗이의 훈훈한 광경

따가움이라는 감각은 때를 미는 사람은 알 수가 없고 등을 내준 사람만 알 수 있어 등을 밀 동안 서로가 나누는 대화도 재미있었다. 때를 밀기 시작하면 때를 미는 사람은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묻기 십상이었고 등을 내준 사람은 ‘조금만 더 세게, 조금 더’, 라거나, ‘너무 세요, 조금만 더 약하게. 딱 좋습니다’라고 응수했다. 때를 밀 동안 때를 미는 사람이나 등을 내준 사람 모두 즐거워했고 옆에서 보는 사람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배어 나왔다. 때 미는 광경은 훈훈하고 보기 좋았다.


6. 탈의실 전경. 20231008_164334.jpg

탈의실 전경. ⓒPARK IN KWON


옛날 신문 기사를 보면 70년대 초 일부 목욕탕에 때를 밀어주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고 나오기도 하는데,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 사실상 그때는 각자 알아서 때를 미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때밀이에서 시작해 세신사(洗身師)로 불리던 명칭은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 기준에 따라 지금은 목욕관리사로 통일됐다.


7. 옷가지 보관함. 20231008_164350.jpg

옷가지 보관함. ⓒPARK IN KWON


#삶은 달걀과 목욕탕

나도 대여섯 살 때까지 어머니 손을 잡고 동네목욕탕에 자주 갔었다. 목욕탕 안의 답답한 공기와 뜨거운 온탕에 들어가기가 싫어 칭얼대는 나에게 어머니는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사준다며 어르느라 진땀을 뺐고, 그 말에 나는 금세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꼭 나를 먼저 씻기고 당신의 몸을 씻었다.


목욕을 끝낸 뒤 탈의실에서 먹는 삶는 달걀은 꿀맛이었다. 달걀 한 입 베어 물고 병 사이다 한 모금을 마시면 세상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요즘 사우나에서도 삶은 달걀을 파는 곳이 많고, 내가 사는 지금의 동네 사우나에서도 삶은 달걀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8. 내가 사는 동네 목욕탕 탈의실 한 구석에 마련된 이발 공간. 20231008_164632.jpg

내가 사는 동네 목욕탕 탈의실 구석에 마련된 남성용 이발 공간. ⓒPARK IN KWON


그러고 보면 목욕탕과 삶은 달걀 사이에는 분명 인과관계가 있을 법한데, 여행길 기차 안에서도 삶은 달걀, 시외버스 안에서도 삶은 달걀, 소풍 가는 학생들 가방 안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꼭 들어 있는 삶은 달걀이 필수 먹거리였던 70년대 생활문화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9. 목욕탕 탈의실 입구에 설치된 신발장. 20231008_164759.jpg

목욕탕 탈의실 입구에 설치된 신발장 ⓒPARK IN KWON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이제 옛날식 동네 대중목욕탕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때의 목욕탕 풍경은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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