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③만병통치 빨간약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③만병통치 빨간약
#피지낭종 수술
2년 전 가을에 피지(皮脂)낭종 수술을 받았다. 주머니 낭, 종기 종의 한자어 낭종(囊腫)은 주머니 모양의 혹이다. 피지낭종은 표피 바로 아래 진피층의 피지선이 막혀 피부 바깥으로 배출될 분비물인 피지가 쌓여 생긴 혹인데, 양성종양이다. 악성종양인 피부암과는 다르며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고,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통증이 없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점점 커져 통증을 유발한다. 외과적 수술로 치료해야 하는데, 부분 마취 후 피지 주머니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간단한 수술이라 당일 수술하고 당일 귀가하며 샤워 빼고는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내 경우는 왼쪽 겨드랑이 부근에 제법 큰 놈 하나와 오른쪽 눈언저리, 두 군데에 있었는데 모두 수술로 덜어냈다. 수술 후에는 수술 부위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피부연고를 일주일쯤 바른 다음 흉터 방지용 흉터 연고를 3개월가량 발랐던 기억이 난다. 눈언저리 쪽 수술 흔적은 육안으로 전혀 보이지 않아 의료 기술도 발달했고, 연고의 품질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빨간약의 영어 이름 머큐로크롬.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맨땅과 무릎, 팔꿈치 부상
굳이 피지낭종 얘기를 꺼낸 이유는 연고와 관련해 학창 시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70년대에 초중고를 다닌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당시 주택가 골목은 비포장 맨땅이 많았다. 내가 살았던 고향 집 골목길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맨땅이었다.
골목길에서는 축구처럼 몸이 부딪히는 놀이를 많이 했는데, 넘어지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놀다가 넘어지면서 제일 많이 다치는 부위가 무릎과 팔꿈치였다.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가 까지는 부상이다. 반바지 반 팔 차림의 여름날, 무릎이나 팔꿈치가 까지면 그 쓰라림과 따가움의 고통은 말도 못 할 지경이다.
#빨간 소독약, 아까징끼와 갑오징어 뼛가루
상처 치료 방법은 단 하나, 빨간 소독약 아까징끼를 바르고 그 위에 갑오징어 뼛가루를 뿌리는 것이었다. 아까징끼는 염증 방지 소독약을 가리키는 일본식 발음인데, 어릴 때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고, 나나 형들, 내 친구들도 그렇게 불렀다.
빨간 소독약이라고 한 이유는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면 빨갛게 색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머큐로크롬인데, 수은 성분이 함유됐다는 이유로 지금은 시판이 금지된 상태다. 갑오징어 뼛가루는 정약전이 1814년에 저술한 어류 백과사전 자산어보(慈山魚譜)에도 나오는 피부 재생 치료 민간요법이다.
액체로 된 소독약이 피부에 닿으면 아야,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쓰라린 상처가 살을 에는 소독약의 날카로운 기운에 깜짝 놀라 바짝 긴장하기 때문이다. 상처의 정도가 심하면 갑오징어 뼛가루 위에 소독솜을 대고 반창고를 붙이기도 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그럴싸한 흉터 치료 연고가 없던 시절이라 놀다가 넘어져 다치면 빨간약이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70년대 주택가 골목은 비포장 맨땅이 많았다. 몸싸움이 잦은 공놀이를 하다가 넘어지면 무릎과 팔꿈치가 까지는 일이 잦았다.
#무릎과 팔꿈치 수난의 상징, 까만 딱지
남자아이들의 무릎과 팔꿈치에는 넘어져 까진 피부의 속살 위를 덮은 까만 딱지가 늘 수난의 상징처럼 붙어 있었다. 고무줄놀이하다 고무줄에 걸려 넘어진 여자아이들의 무릎과 팔꿈치에서도 상처가 아무는 징표인 시커먼 딱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괴로워할 때가 있는데, 딱지가 겨우 아물어 가고 있는 도중에 다시 똑같은 부위를 다쳤을 경우다. 나도 여러 번 경험했는데, 다친 데를 또 다쳤을 때의 통증은 몹시 사나워 참기가 힘들고 통증이 가시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려 이래저래 고생이다.
굳어지던 딱지가 강제 이탈하면서 속 피부가 다시 발가벗겨지는 순간, 빛의 속도로 달려드는 통증 감각이 칼로 찌르듯이 공격해 와 정신이 아득해진다. 혼미한 통증의 시간은 길고 또 길었다.
긴바지와 긴팔 차림으로 넘어졌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무릎이나 팔꿈치가 맨땅에 직접 노출되지 않고, 옷이 방어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피부가 까지는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축구 사랑의 값비싼 대가(代價)
나는 어릴 때 유독 축구를 좋아해 무릎과 팔꿈치를 많이 다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방과 후면 꼭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편을 갈라 축구 시합을 했다. 숫자가 항상 모자라 한 편이 대략 5~6명이었고, 골대도 정규 골대가 아니라 핸드볼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골대를 사용했다. 골대와 골대 사이의 거리도 짧았다.
운동장도 맨땅이라 상대 아이 발에 걸려 넘어지고, 태클을 당해 넘어지고 밀려서 넘어질 때마다 무릎과 팔꿈치가 남아나지 않았다. 내가 다친 데를 또 다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일이 잦았던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빠진 축구 사랑이 큰 이유였다.
내 무릎과 팔꿈치를 보면 피부가 여러 차례 벗겨졌다 아문 상처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빨간 소독약과 갑오징어 뼛가루도 아마 내 무릎과 팔꿈치 어딘가에 화석(化石)처럼 조용히 숨어있지 않을까, 혼자만의 추억에 잠긴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