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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⑨할머니의 곰방대와 막걸리

by 박인권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⑨할머니의 곰방대와 막걸리


#단명(短命)한 할아버지와 장수(長壽)한 할머니

나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실체가 내 머릿속에 없듯이 아마 생전의 아버지도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단명(短命)한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할아버지 몫까지 다해 장수(長壽)했다.


할머니는 큰집과 작은 집인 우리 집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번갈아 드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곤 했다. 할머니가 들려준 얘기 중 몇 가지가 기억나는데, 그중 하나가 할아버지의 사망 원인이 늑막염(肋膜炎)이었다는 것이다. 의료 기술이 지금에 많이 못 미쳤던 시절이라 당시에는 할아버지처럼 늑막염으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내가 기억에도 없는 할아버지 얘기를 꺼낸 데에는 애연가(愛煙家)이자 애주가(愛酒家)였던 할머니의 무병장수 건강 체질과 관련이 있다.


#할머니와 담배와의 만남

40대 초반에 7남매를 홀로 건사해야 할 막막한 처지에 놓인 할머니는 어느 날 날마다 짓눌러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했던 곰방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잎담배의 맛을 알 리 없던 할머니는 희한하게도 공중으로 흩어져 올라가는 담배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보였고,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신기한 경험에 스스로 놀라워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앓아눕기 전까지 둘도 없는 애연가로 담배를 끼고 살았다.


곰방대. ⓒ국립국어원/https://krdicmedia.korean.go.kr/front/search/searchResultView.do?file_no=197508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곰방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예닐곱 살 때 할머니의 곰방대를 처음 보았다. 쌈지에서 담뱃잎 뭉치를 꺼내 곰방대 끝 대통(桶)에 꾹꾹 욱여넣고 성냥불을 붙이는 동작과 동시에 빨부리를 물고 몇 모금 뻑뻑 빨면 대통 속 담뱃잎들이 빨갛게 타들어 가면서 불이 붙었다.


할머니가 숨을 내쉴 때마다 코와 입에서 나온 뿌연 연기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재미있다고 깔깔대며 흥미롭게 지켜봤던 기억이 화석처럼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언젠가부터 할머니는 곰방대 대신 필터 없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는데 할머니의 담배 심부름도 여러 번 했었다. 미성년자도 담배를 살 수 있던 시절이라 동네 구멍가게로 담배 심부름을 오는 아이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할머니의 흡연 습관

할머니의 흡연 습관 중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할머니는 담배를 절반쯤 피우다가 엄지와 검지로 담뱃불을 눌러 꺼 재떨이 가장자리에 걸쳐 놓은 뒤 한참 후에 다시 불을 붙여 담뱃잎이 다 타들어 갈 때까지 피웠다. 생각해 보면 담배를 음식처럼 애지중지했던 당시에는 할머니뿐 아니라 아버지고 그랬고 고모들도 그랬던 것 같다.


대학 입학 후 담배를 배운 나도 용돈이 궁한 하숙생 시절 담배 한 개비를 여러 번 나눠 피우기도 하고 담배 살 돈이 다 떨어지면 재떨이에 쌓인 꽁초 중 쓸만한 놈을 골라 피우는 궁상(窮狀)을 떨곤 했다.


할머니의 흡연 습관 중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할머니는 흡연가들에게서 으레 볼 수 있는 마른기침을 일체(一切)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 갑 정도 평생 담배를 태운 할머니가 마른기침 한 번 하지 않은 점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할머니의 막걸리 사랑

늦게 배운 담배와 달리 할머니의 술 사랑은 훨씬 빨랐다. 할머니의 술은 우리 집에서 탁배기라고 부른 막걸리였다. 탁배기는 막걸리의 경상도 방언이다. 술을 막걸리로 배운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막걸리 외의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독보적인 막걸리 애주가였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농사꾼의 아내에게 시집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막걸리 맛을 알았다고 한다. 논농사, 밭농사 때 빠지지 않는 새참 수발을 하던 중 할아버지가 권해서 어쩔 수 없이 마신 게 막걸리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걸쭉한 목 넘김이 싫지 않았고, 먹을거리가 변변찮을 때라 몇 잔 받아마시면 배도 불러 차츰 막걸리 사랑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막걸리는 막 걸러서 만든 술이다. 쌀이나 보리를 시루에 찐 지에밥을 말린 뒤 누룩과 물을 섞고 발효시킨 다음 맑은 술(淸酒)과 함께 걸러서 짜낸 게 막걸리다. ⓒPARK IN KWON


#할머니의 아침 식사였던 막걸리

정말이지 할머니의 막걸리 사랑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할머니에게 막걸리는 마시고 흥에 겨워 기분 좋게 취하는 술이 아니라 삼시세끼 음식 중 하나였다.

할머니는 아침 식사를 늘 막걸리로 대신했다. 우리 식구들이 아침을 먹을 때, 할머니는 막걸리 석 잔에 김치 몇 조각을 안주로 집어 드셨다.


할머니는 아침 식사 대용(代用)인 막걸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술독에 빠질 만큼 술 욕심을 부리거나 툭하면 술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의 막걸리 사랑은 오전 식사로 석 잔, 어쩌다 저녁 밥상에서 반주(飯酒) 삼아 한두 잔이 전부였다.


막걸리를 담은 낡은 주전자와 묵은지, 막걸리 한 사발. ⓒPARK IN KWON


#절제형 애주가(愛酒家)

할머니의 이런 음주 습관은 평생 변하지 않았다. 술을 의식주(衣食住)의 한 축인 끼니처럼 귀히 여겨 일정량을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음용(飮用)한 대신 과음(過飮)을 멀리한 절제형(節制型) 애주가의 전형(典型)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술에 취한 할머니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꼬장꼬장한 할머니의 성품과도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젊었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큰 병치레를 한 적이 없는 할머니는 1982년 여름 86세로 자연사(自然死)했다. 할머니 세대는 60세를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여겨 환갑잔치가 일상적인 풍속이었다.


막걸리는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아 마셔야 제맛이 난다. 걸쭉하고 텁텁한 막걸리 특유의 맛과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PARK IN KWON


#무병장수한 할머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던 할머니는 팔십이 넘어서야 지팡이를 일상생활의 벗으로 삼고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앓아누웠다. 경북 상주 큰아버지 댁에서 한 달간 몸져누워 있던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잠결에 스르르 하늘나라로 갔다. 임종(臨終)을 지킨 아버지한테 직접 들은 얘기다.


19세기에 태어나 구구 팔팔(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사(二三死, 2~3일 앓다가 사망), 가 부럽지 않게 무병장수(無病長壽)한 할머니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다.


곰방대와 막걸리는 할머니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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