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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n 26. 2021

빈센트 반 고흐의 환생(還生) 여행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⑬까마귀가 나는 밀밭, 붓

과거를 떠나(미래로 나아간(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까마귀가 나는 밀밭붓을 들다


#밀밭은 전생에서 내생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예열이 끝나자 나는 손에 쥔 붓을 거침없이 움직였다. 붓의 기세는 맹렬했다. 내가 붓을 움직였다기보다, 붓이 내 몸을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붓을 들기 전, 내 몸과 붓은 텔레파시가 통해 이미 하나가 되었다. 붓을 든 순간, 교감의 불씨는 강렬한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역정(歷程)을 이 한 점의 그림에 모두 투사시킬 각오로 먼저 붓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떠올렸다. 


 방향의 좌표는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설정됐다. 위는 하늘, 가운데는 밀밭, 아래는 땅이다. 저 하늘 어딘가에 내가 곧 맞이할 내생의 삶이 숨어 있다. 하늘 너머에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 우주가 있다. 죽어 내생의 세계로 들어가면 우주를 볼 수 있을까. 황금빛으로 눈부신 밀밭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 현실의 삶이다. 땅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전생(前生)의 삶이다. 즉 밀, 밀밭은 전생에서 현생, 현생에서 다시 내생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의 다른 이름이다. 밀은 곧 나이기도 하고, 내 삶을 암시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나의 운명을 예고하는 메타포라는 점에서 나에게 각별하다.      


빈센트 반 고흐아이리스(Irises), 캔버스에 유화, 71.1 x 93cm, 1889, LA 폴 게티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오베르에서 나는 밀에 집착했지만, 붓꽃이 머금은 짙은 보라색 향기도 그리워했다.


#내가 밀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더욱이 밀은 태생적으로 인간의 끼니를 책임지는 소중한 식량이기에 밀에 대한 나의 애착은 유달리 특별날 수밖에 없었다. 밀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3대 작물이다. 지구촌 인구의 거의 절반이 주식(主食)으로 삼을 만큼 식량 작물의 지존이다. 내가 우키요에를 통해 처음으로 존재를 알았던 일본이나 일본과 이웃한 한국처럼 쌀이 주식인 국가에서도 빵의 소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니, 밀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끼니를 때울 값진 식량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밀에 대한 나의 유별난 애착은 밀의 품성을 알고 나서 거의 신앙 수준으로 격상됐다. 밀은 기후 탓을 하지 않고, 토양 핑계도 대지 않는다. 의연함이 작물 중 으뜸이다. 밀의 이런 특성은 그 기원이 왜 BC 7000년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작물 중 하나인 밀을 빻은 것이 밀가루인데, 빵의 원료다. 빵은 전 세계적인 음식으로 나 같은 유럽인들에게는 끼니때마다 먹는 주식이라 귀한 대접을 받는다. 국수와 과자의 원료도 밀이다. 


 밀의 희생정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밀을 빻아 가루를 체로 치고 남은 찌꺼기인 밀기울은 가축 사료로 쓰인다. 밀알을 떨고 난 밀 줄기인 밀짚은 밀짚모자, 밀짚 방석으로 다시 태어난다. 인간의 삶과 비교하면 밀은 현생, 밀기울과 밀짚은 밀의 내생이라고 할까. 내가 밀을 사랑하지 않을래 야 않을 수가 없는 이유다.      


#땅은 생명의 근원이자 보금자리

 내게 남다른 밀의 굳세고 희생 어린 성품을 떠올리다 보니 새삼 생명이란 두 음절의 단어가 생각난다. 사람이 먹는 것은 모두 생명체다. 밀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때가 되면 죽는다. 동 · 식물류 할 것 없이 생(生)과 사(死)가 운명인 물체들은 땅, 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구 표면적의 30%를 차지하는 땅이 없다면, 지구상에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 땅의 두 배가 넘는 약 70%가 바다지만 바다 밑바닥에도 땅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올리브 나무캔버스에 유화, 73 x 92cm, 1889년 6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올리브 나무는 늦 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검은 자줏빛으로 익는 열매 모습이 오베르에서도 자주 떠올랐다.  


 땅은 수분과 영양분을 보관하는 창고이자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이며 비가 오면 물을 바깥으로 빼내는 배수 역할을 한다. 식물과 나무의 터전이 땅이고, 사람도 땅 위에 집을 짓고 산다. 한마디로 생명체의 보금자리다. 우리가 땅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내가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에 작지 않은 비중으로 땅의 존재를 드러낸 근거도 이와 같다.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늘 땅의 신세를 지고 죽고 나서도 흙으로 돌아가니 땅은 생명의 모태다. 현생인 만물은 내생인 하늘과 전생인 땅 사이에 있다. 만물이 일시적이고 생명체가 유한한 이유다. 우리는 땅에 고마워해야 하고, 땅 앞에서 숙연해져야 한다. 그것이 도리다.      


#밀은 모범적인 현생의 본보기

 그런 점에서 밀은 내생과 전생에 충실한 모범적인 현생을 깨닫게 하는 본보기다. 밀의 수확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내가 삶을 마감한 곳이자 안식처이기도 한 이곳 오베르에서 자라는 밀은 7~8월이 수확철이다. 연중 태양이 가장 뜨거운 한여름이다. 밀은 다 자라면 줄기가 1미터쯤 되는데, 지금 그림에 보이는 밀이 그렇다. 


 내가 죽기 전 7월에 그린 그림 속의 밀은 뿌리부터 줄기, 잎사귀까지 몸 전체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태양의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땅에서 솟구치는 지열을 뿌리치지 않고 온전히 품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풍성한 결실을 안겨주고자 대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밀의 처절하리만치 자기희생적 습성이 낳은 눈부신 금빛은 보기만 해도 황홀하다. 극한에 달한 태양열과 지열을 온몸으로 받아내 영양분이 가장 많은 상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인간에게 모든 것을 바칠 준비를 끝낸 밀의 모습을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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