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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n 26. 2021

빈센트 반 고흐의 환생(還生) 여행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⑫까마귀가 나는 밀밭, 기(氣)

과거를 떠나(미래로 나아간(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까마귀가 나는 밀밭()를 모으다


#그때의 오베르는 지금도 오베르

 내가 제일 좋아한 오베르의 자연풍경 앞에 다시 서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울컥하고 되살아난다. 하늘과 구름, 까마귀가 날고 있는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밀밭, 녹색식물과 생명의 윤활유인 혈액을 닮은 황톳길. 우리에게 위안과 휴식을 조건 없이 무한정 내주는 경치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내가 자연을 유달리 사랑하고 의지한 것도, 변치 않고 한결같은 풍광(風光)의 꿋꿋함 때문이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은 인간들에게 날마다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다.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삶을 마감한 우리를 아무 말 없이 품는다. 우리가 자연을 우러러보고, 자연을 닮아야 할 이유다.     


빈센트 반 고흐밤의 카페테라스캔버스에 유화, 81 x 65.5cm, 1888년 9월 16네덜란드 크뢸러 뮐러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를 시절, 나는 유난히 카페를 많이 찾았다. 생의 마지막 정착지 오베르에서 늘 그때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오베르의 7월은 하늘이 맑고 태양이 뜨겁다. 내가 살아서 본 오베르는 지금의 오베르와 다르지 않았다. 마을의 자태가 여전하고, 내가 그림으로도 그린 오베르 노트르담 성당도 그대로 있다. 자그마한 오베르 기차역에 내리면 왼편에 오베르 시청이 보이고, 그 앞에 반기듯, 서 있는 건물이 반 고흐 기념관이다. 나를 기념하는 장소라니, 반갑기도 하고 설렌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17세기 건축물 오베르 성(城)이 나오는데, 잘 꾸며진 정원과 연못이 친근하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한참을 내려가면 고색창연한 기풍에서 천 년의 역사가 실감 나는 고딕 양식의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내가 그린 오베르 노트르담 성당이다. 성당 위로 언덕을 따라 쭉 올라가면 눈에 익은 밀밭이 옛 기억을 불러내고 곧이어 등장하는 것이 내가 묻힌 오베르 공동묘지다.     


 내가 오베르에 산 기간은 두 달여에 불과했다. 이곳은 내가 임종을 맞은 곳이다. 이제는 고흐 양식의 상징으로 각인된 꿈틀거리는 붓놀림과 한풀이하듯, 색이 강렬한 춤사위를 펼친 실제 현장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추모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는데 인파 행렬이 생경하다. 살아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라 낯설면서도 환생 여행 중인 나에게는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참,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긴 걸 얼굴에 걸쳤는데, 코로나인지 뭔지 그놈의 바이러스 때문이란다. 해괴하긴 한데, 어쩔 수 없이 나도 코와 입을 가렸다.      


#총력전과 속도전

 오베르는 내가 묻혀 있는 곳이면서 내가 거사를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극적으로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태어난 곳이다. 원래 붓놀림이 잽쌌던 내가 대사(大事)를 앞두고 시간에 쫓긴 것도 있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총력전을 펼칠 기회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란 예감에 나도 깜짝 놀랄 만큼 강력한 속도전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축적한 모든 화력(火力)을 쏟아부었다. 


 아를에서 색채실험으로 씨를 뿌리고 생레미에서 색과 붓놀림의 원리를 양식적으로 통합하는 데에 성공한 나는 가셰 박사를 내세운 초상화 2점으로 화력 점검을 모두 끝내고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전투태세에 들어가기 전, 나는 내 몸에 남아 있고 내 몸이 기억하는 기(氣)의 총량을 한계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평생 끌어모은 소중한 자산인 다섯 가지 정서적 반응을 반추(反芻)했다.      


빈센트 반 고흐해바라기캔버스에 유화, 91 x 72cm, 1888년 8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현대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를 시절 그림인데, 해바라기가 내뿜는 원초적인 노란 빛을 오베르에서도 잊지 않으려 기억 속에서 꺼집어냈다.


#분노고독체념광기죽음의 공포를 넘어 내생(來生)을 그리다

 분노와 고독, 체념을 넘어 광기가 불러온 죽음의 공포는 지독하게 나를 옥죈 트라우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베르에 정착하면서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흔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게 새로운 삶과 자유를 보장할 내생의 관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굳힌 자살이라는 거사 결심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트라우마는 종적을 감췄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분노, 고독, 체념, 광기, 공포심을 일시 소환하기 위해서였다.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지금은 소멸한 그 감정들이 스스로 희생하는 일이 없었다면 내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나를 맞이하는 내생의 세계도 열리지 않을 터였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고비 때마다 다가왔던 다섯 가지 감정들은 화가로서 나를 있게 한 존재 이유이자 성장 동력이었다. 다행히 오랜 기간 감정들에 반응해온 내 몸의 기억은 아직 살아 있었다. 나는 단전호흡으로 기를 모으고 기억을 더듬어 감정들과 교감했다. 분노와 고독, 체념과 광기, 죽음의 공포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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