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⑪생의 마지막 오베르 시절
과거를 떠나(革) 미래로 나아간(新) 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⑪생의 마지막 오베르 시절
#깊어지는 마음 골병과 육체의 쇠락
삶의 끝자락에 가까스로 걸린 운명의 두 달을, 나는 오베르에서 맞았다. 내게 주어진 생애 최후의 60여 일은 죽음 뒤에 맞을 새로운 나를 찾는 준비기간이기도 했다. 그 2개월 남짓한 세월은 내가 자살을 선택해 설정된 시간이라는 점에서 ‘주어진’ 보다는 내게 ‘내가 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착란 증세와 신경 발작에 시달려온 내 병의 실체는 마음 골병이었다. 골병은 병이나 부상이 깊어 속으로 곪아 터지는 질환이다. 내 경우는 골병의 원인이 마음에 있으니, 마음 골병이다. 마음이 아파 생기는 정신질환은 그 자체가 병이고, 심하면 육체를 좀먹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성이 강하다. 정신이 나약하면 신경계가 고장이 나고, 이는 육체적 질병을 불러올 수 있어 위험하다. 정신과 육체는 상호 인과관계라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둘 다 망가지기가 십상이다. 내가 좋은 예다.
오베르에 오기 전부터 신경 착란과 광기가 나를 괴롭히는 동안, 내 육체적인 건강에도 녹이 슬고 쌓여 병이 도지면서 위중해졌다. 정신과 육체, 모두 심하게 손상된 것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마음의 병이 깊으면 육체적인 쇠락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하루, 하루 실감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징조가 전령처럼 자주 찾아왔다. 그럴수록 그림에 대한 애착은 눈덩이처럼 더 커져만 갔고,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굴의 투혼이 불끈거렸다.
빈센트 반 고흐, 가셰 박사의 초상, 캔버스에 유화, 67 x 56cm, 1890, 오르세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1890년 6월 두 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그렸는데, 그 중 한 작품이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 시절, 물건 하나 들어 옮기는 것도 힘에 부쳐 버거워한 나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생각할수록 신통방통하다. 가끔 가셰 박사가 들려준 말에서 왜 그런지 알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삶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지막 남은 불씨가 순간적으로 가파르게 타오르면서 높이 솟구친 뒤, 거짓말처럼 금방 스러져 한 줌의 재로 변한다고. 사람 목숨도 그렇다는 것이다. 대개 숨이 멎기 하루, 이틀, 수일 전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이었다.
내 경우는 죽음을 앞둔 의학적 통과의례, 비장하고 장엄한 최후의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됐다. 오베르에 오면서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으니, 두 달 넘게 이어진 셈이다. 나에게 그것은 하늘이 내린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오베르에서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남긴 그림이 70점이다. 오베르에서 나는 초인(超人)이었다.
#거사를 계획하다
내 육신에서 생명을 밝힐 희망의 빛이 꺼지고 있음을 직감하면서, 나는 서둘러 거사(擧事) 계획을 짰다. 거사의 명분은 자살, 실행방식은 권총으로 정했다. 거사를 감행하기 전에 끝내야 할 과제가 하나 있었다. 내 영혼과 육신에 얼마 남지 않은 예술적 총기(聰氣)와 기력(氣力)을 짜내듯이 모두 모아 오매불망 고대해온 필생의 역작(力作)에 쏟아붓는 일이었다. 역작의 이름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다. D-Day는 역작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뒤 어느 날로 결정했다.
역작의 완성도를 높일 예행 연습 겸 삶의 시계가 초읽기에 들어간 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가셰 박사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색상만 다를 뿐, 구도와 형태가 거의 비슷한 두 점의 초상화를 그렸다. 제목이 ‘가셰 박사의 초상’이다. 1890년 6월 작품이다. 박사의 표정에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고마운 사람이다. 역작에 매달릴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