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⑩고흐 양식의 완성
과거를 떠나(革) 미래로 나아간(新) 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⑩고흐 양식의 완성
#고흐 양식의 원리, 채찍질 기법과 난을 치는 기법
아를 시기 말미 행운처럼 찾아온 붓놀림에 대한 계시(啓示)는 생레미 생활에 익숙할 즈음 습작 과정을 거쳐 숙성단계 문턱까지 다다랐다. 생레미로 넘어오기 직전에 깨달은 채찍질을 닮은 붓질의 정체를 훨씬 정교하게 현실적으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문득 언젠가 고서점에서 언뜻 훑어본 적이 있는 아주 짧은 문장이 생각났다. 그 문장은 ‘난을 친다’였다. 뜻풀이에 내 해석을 덧붙이면 이렇다.
동양화에서 난(蘭)을 그리는 것을 ‘난을 친다.’고 하는데, 나는 이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아마 난을 그릴 때, 붓에 힘을 주고 순간적으로 짧게 끊어 내리치듯 찍는 타법(打法)과 비슷해서 생긴 말일 것이다. 앞서 터득한 굵고 짧게 혹은 굵고 길게 빠른 속도로 내리치는 ‘채찍질’ 기법에 ‘난을 치는’ 기법을 더하자 마침내 고흐 스타일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원리가 완성됐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을 통한 붓놀림 원리의 양식화. 부단한 노력과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화, 73.7 x 92.1cm, 1889,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두 가지 맥, 붓놀림의 힘 조절과 속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붓을 놀릴 때 동반돼야 할 두 가지 맥을 찾아냈다. 첫째는 힘 조절이었다. 붓에 힘을 주되 붓을 지배하지 않고, 붓과 호흡을 같이하는 부드러운 손목의 느낌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붓대를 사뿐히 쥐고 붓끝이 눌리고 미끄러지는 대로 손목이 따라가는 식이다. 붓질의 힘은 손목 힘이 아니라 붓끝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형체가 없어 눈으로 참고할 수 없는 마음을 그리는 것이라 의식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둘째는 붓질의 속도. 빛과 어두움에 좌우돼 내가 결정하면 그만인 감정의 색과는 차원이 다르다. 감정의 형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숨에 끝낸다는 각오로 빠르게 붓을 놀려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솟구치는 감정의 불길이 꺼지기 전에 붓질을 마감하려면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가 생명이다. 이른바 일필휘지(一筆揮之). 채찍질을 하고 난을 치는 동작이 조형미를 갖추려면 이 두 요소의 존재가 필연적이다.
#붓놀림의 강약과 일필휘지의 방법론
1. 손목과 손아귀의 힘을 빼고, 붓대가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로 살포시 움켜 진 채, 명상의 자세로 호흡을 가다듬어 내면에서 곧 저절로 하달될 감정의 명령을 기다린다.
2. 손목의 힘으로 붓끝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감정에 애교를 실어 붓끝을 유혹한다는 기분으로 붓털의 촘촘한 촉수에 감정을 이입시킨 뒤, 무아지경의 상태로 재빠르게 캔버스 이곳저곳을 수놓아야 된다. 애교니, 유혹이니, 하는 표현을 끌어들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색과 형태는 결국 붓끝에서 나온다. 감정의 색과 형태를 우리가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붓끝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감정의 실체를 붓끝에서 색과 모양으로 되살아나게 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감정과 붓끝의 관계는 오래 삭힌 애정으로 맺어져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부 사이와 같다. 감정도 붓끝에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감정이입과 몸의 반응의 중요성
변화무쌍한 감정의 생김새를 붓질로 캔버스에 새기는 기법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손목이 아니라 감정의 방향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마음속 표정의 속살이 드러내는 원초적인 이미지를 붓끝에 감각적으로 각인시킨 뒤 무심코, 쏜살같이 한꺼번에 캔버스에 인화시키는 동작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 마음에 진정성이 있으면 몸이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한다는 내 나름의 오랜 경험과 깨달음에서 체득한 나만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나는 이 기법을 개발해 그림에 제대로 개화(開花)시키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런데 이 기법의 방법론을 알더라도 결국 성공 여부는 각자의 정서적 민감성과 신체 반응과의 궁합, 즉 일체성에 달려 있다. 방법을 곁눈질해도 원하는 대로 목적달성을 이루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다는 말에 정답이 들어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생레미에 이어 오베르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림의 수가 쌓여갈수록, 내 몸도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데에 익숙해져 어느 시점부터는 몸이 저절로 기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반응과 기억의 대상은 다양한 표정을 지닌 감정인데, 전해지는 감각통로에 애정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어야 한다. 내 몸이 반응하고 기억하는 것을 소름 끼치게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그림이 나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의 사이프러스, 캔버스에 유화, 92 x 73cm, 1890년 5월,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생레미를 떠나기 직전에 그린 그림.
생레미 시절 때 이런 경향이 나타난 그림을 꼽는다면, ‘별이 빛나는 밤’(1889)과 ‘별이 빛나는 밤의 사이프러스’(1890)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의 사이프러스’는 1890년 5월 생레미를 떠나기 직전에 완성한 그림인데, 붓 터치와 색감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많이 닮았다. 특이한 점은 이 무렵 그림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별이 빛나는 밤의 사이프러스’에 등장한다.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두 남자와 그 위 대각선 방향의 짐마차다. 두 남자가 나와 테오라는 말도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봐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다. 이미 건강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에서 몸이 기억하는 방식에 따라 무심코 묘사했을 뿐이라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고 해도 다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년간 지낸 생레미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사람도 죽음이 임박하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법일까. 나는 동생 테오와 상의 끝에 내가 머물 마지막 장소를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정했다. 그곳은 파리 근교의 조용한 시골 마을로 내 조국 네덜란드와 비교적 가까운 데다, 마음만 먹으면 화가들의 심리를 잘 아는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가셰 박사로부터 깊어가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권유에서다. 1890년 5월 하순 첫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