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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n 25. 2021

빈센트 반 고흐의 환생(還生) 여행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⑧고흐 화풍이 시작된 곳, 아를

과거를 떠나(미래로 나아간(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고흐 화풍이 시작된 곳아를     


#그림에 눈 뜨다

 2년간의 파리 생활을 끝내고 아를을 찾은 것은 1888년 2월이었다. 프랑스 남동부 론강 하류 연안의 작은 지역인 아를은 고대 로마 시대 유적이 잘 보존된 예술의 고장이다. 덕분에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오는 길에 들었다. 시끌벅적한 파리와 달리 한적한 시골 마을인데다 눈 부신 태양이 나를 사로잡았다. 자연풍광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해보라. 지금 봐도 한눈에 마음을 빼앗는 천혜(天惠)의 풍경인데, 내가 살던 그 시절엔 어땠겠는가. 남프랑스 특유의 이글거리는 태양,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 황금빛 보리밭, 유유히 흐르는 론강, 내가 좋아하는 카페……. 파리 시절 어렵사리 짠 고흐 화풍의 얼개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에 아를 만한 곳이 없다는 판단은 정말이지 시의적절했다. 


 아직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감정의 민얼굴을 색과 붓놀림으로 캔버스로 불러내려면 내 마음, 내 처지를 다독일 자연이 필요했다. 아를은 나의 내면에 고이고 쌓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버림받은 자의 슬픔을 보듬어줄 자격이 충분했다. 내가 정열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현실의 고단함도, 혼자된 자의 처절함도 내가 사모하는 그림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아를의 침실’, ‘밤의 카페테라스’, ‘붉은 포도밭’, ‘해바라기’ 연작,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상 1888)이 이때 그린 그림들이다. 15개월간 18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데생 빼고 2~3일에 한점 꼴이니 사력을 다해 그렸다. 그러니 내가 아를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더는 말을 않겠다.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아를 시기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전술 중 색채실험에 치중한 때였다. 아직 살아 꿈틀거리는 듯 독창적이고 격정적인 붓 터치는 내 손끝에서 나오기 전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아를의 침실캔버스에 유화, 72 x 90cm, 1888년 10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희대의 기행귀를 자르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 하나가 있다. 1888년 12월 고갱으로부터 버림받은 충격이 분노로도 모자라 광기로 번지는 바람에 귀를 자른 사건이다. 알려질 대로 알려져 식상 할 만도 하지만 희대의 이 기행은 내가 ‘광기 어린 화가’란 별칭을 얻게 된 계기가 된데다 그림에 오롯이 내 영혼을 불태운 생레미 시절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결코 의미가 작지 않다. 귀를 잘랐으니, 사람들이 어찌 나를 멀쩡한 눈으로 볼 수 있었겠는가. 안 그래도 종일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다 문밖으로 나설라치면 꾀죄죄한 몰골에 대면 기피증이라도 있는 양, 누구하고도 말을 섞는 법이 없었던지라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했다. 그러던 차에 끔찍한 일마저 저질렀으니 평화로운 마을이 들썩들썩한 것은 당연했다.


#깊어지는 발작 증세

 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경계경보가 한층 강화된 것을 알아차린 나는 가뜩이나 깊어지던 불안증세가 도져 주체할 수 없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고 호시탐탐 내 낌새를 엿보던 주민들의 신고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발작은 멈췄다 일어나기를 수시로 반복하며 나를 괴롭혔다. 정신이 아득해지는가 싶다가 눈앞에 불꽃이 번쩍 튀기도 하고 다시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가 나를 짓눌렀다. 한숨 자고 나면 제정신이 들다가도 이내 혼미한 지경에 빠지기를 거듭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감정의 민낯붓놀림으로 드러나다

 광기(狂氣)가 겉으로 드러나는 게 발광(發狂)인데, 이상하게도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뛸 때마다 희한하게 붓을 놀리는 동작이 사정없이 망막을 때렸다. 아를 시대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굵고 짧게, 때로는 굵고 길게, 색을 칠하는 붓질이라기보다 색을 눌러 빠르게 내리치는 채찍질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감정의 민낯을 눈앞으로 불러오는 두 번째 전술, 붓놀림의 윤곽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광기를 다스리고 조절할 환경이 시급했다. 고흐 화풍의 본격적인 구현을 위해서는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해서다. 전부터 봐둔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을 찾아갔다. 1889년 5월 초로 기억된다. 이로써 아를 시대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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