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여교사 삼총사와 짓궂은 학생들의 장난기
여교사 삼총사와 짓궂은 학생들의 장난기
#까까머리 남중생과 여선생
70년대 중등학교에는 남녀공학이 드물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지금에 훨씬 못 미칠 때라 여자 선생들이 적었고 남자 중학교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도 1~3학년 통틀어 여교사는 단 3명뿐이었다. 사춘기의 티를 갓 벗은 까까머리 학생들은 짓궂은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10살 남짓 위의 여교사들을 큰집의 큰누나처럼 여기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었다.
여교사들은 여교사들 나름대로 사춘기의 끼를 호기롭게 발산하는 문제의 몇몇 조숙한 학생들을 일부러 엄하게 다스려 행여나 고삐가 풀릴 수도 있을 다른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喚起)시키는 발 빠른 대응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가령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 오늘 너무 예쁜데예, 재미난 이야기 해주이소, 라며 은근슬쩍 농(弄)을 거는 아이를 교탁 앞으로 불러내 손을 들고 서 있게 한다거나 선생님,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데예, 라고 의도적인 수작(酬酌)을 떨라치면 즉각 입 다물고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라는 호통이 떨어졌다.
여교사 앞에서 공연히 객기(客氣)를 부리면서 나대고 싶어 안달인 아이들의 마음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옛날에는 선생님들의 단호한 꾸짖음 한 마디에 금방 꼬리를 내리고 마는 학생다운 순수한 데가 있었다.
그렇다고 막 봉우리를 틔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장난기가 수그러들기에는 어설프게나마 청춘(靑春)의 흉내를 내고 싶은 피가 너무 뜨거웠고 사춘기 소년 특유의 반항심과 오기도 들끓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들과 본관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맨 윗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다. ⓒPARK IN KWON
#중1 때 담임 선생
운이 좋게도 중1 때 담임 선생이 여선생이었다. 음대를 갓 졸업하고 부임했다는 자기소개에 비추어 스물서넛 살쯤으로 우리보다 열 살 정도 손위라고 짐작했다. 아이들이 담임으로 여선생을 더 바랐던 것은 체벌(體罰)을 밥 먹듯이 일삼는 남자 선생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여선생이라고 체벌하지 말란 법은 없던 때였지만 아무래도 남자 선생보다는 심리적인 부담이 덜하리라는 기대감이 컸고 실제로 그랬다.
#판탈롱 바지와 미지(未知)의 세계
음악을 가르친 담임 선생은 항상 머리 끈으로 머리를 묶고 다녔고 치마 대신 바지를 즐겨 입었다. 얼굴 피부가 하얗고 날씬한 도시 여성 스타일이라 치마도 어울릴 법했으나 당시 유행한 판탈롱만 고집해 안 그래도 긴 다리가 더 길어 보였다. 판탈롱은 허벅지가 꽉 조이고 무릎 아래에서부터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 여자용 바지로 70년대 중반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끈 차림새였다.
바지의 특성상 허리에서부터 무릎 위까지의 몸매가 레깅스를 입은 것처럼 다 드러나 지나가는 뭇 남성들이 눈치껏 힐끔거리는 일이 많았고 우리 반의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배울 노래의 악보(樂譜)를 칠판에 판서(板書)할 때 예사롭지 않은 선생님의 굴곡진 뒷모습에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판탈롱 복장의 앞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딴짓하던 아이들도 앞만 쳐다볼 뿐이었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선생님은 짐짓 교탁(敎卓) 뒤로 발걸음을 옮기며 딴청을 피웠다. 담임 선생이라는 친근감에 더해 아이들이 유달리 음악 수업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알고 보면 다 이런 속사정이 있어서였다.
담임 선생은 또 화장(化粧)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일반적인 커리어우먼과는 달랐고 나머지 두 여교사와도 달랐다.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욕구가 바야흐로 새록새록 피어오를 나이들이라 아이들은 음악 시간만 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미지(未知)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국어 선생의 카리스마
또 다른 여교사 한 명은 국어를 가르쳤고 나머지 한 명은 물상 과목을 담당했다. 국어 선생은 세 분 가운데 키가 제일 컸고 얼굴에 뾰두라지가 많은 까만 피부를 의식해서인지 화장이 짙었다. 치마와 바지를 번갈아 입는
스타일이었다.
물상 선생은 키가 작은 아담한 체격에 얼굴이 통통했고 세 분 중 미모가 가장 뛰어났다. 음악 선생과는 정반대로 늘 블라우스에 치마만 고집했다.
짓궂은 아이들도 시종일관 농담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엄하게 수업을 진행한 국어 시간에는 담당 선생의 카리스마에 눌려 이렇다 할 장난을 치지 못했고 대신 웃는 얼굴에 우스갯소리를 잘해 수업 분위기가 느슨했던 물상 시간만 되면 이런저런 얄궂은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속셈이 딴 데 있었던 물상 시간
이를테면 가속도 계산 문제를 푸느라 아이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집중할 때면 물상 선생은 학급을 몇 개로 나눈 분단(分團) 사이의 교실 통로를 천천히 오가며 우리 모습을 지켜보곤 했는데 별안간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것에서부터 장난질이 시작된다.
물상 선생은 노트에 적힌 풀이 내용이 바른 지를 확인하기 위해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데 이때 앞섶이 열린 흰 블라우스 너머로 봉긋한 가슴 끝자락이 살짝 드러나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진 아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디밀어 곁눈질로 자신이 의도한 바를 확인하고선 득의만만(得意滿滿)한 웃음을 배시시 짓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그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조금 전 목격한 광경을 신바람이 나 주워섬기는데 십중팔구 실제보다 부풀린 것이었을 텐데도 아무도 확인할 길이 없어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초고위험 모험 수(手)의 비현실성
발각되면 혹독한 벌(罰)을 각오해야 할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도하는 아이도 있었다. 불량기(不良氣)가 있고 대담하면서 능청스러운 연기에 능한 아이가 주로 그 일에 나섰는데 물상 선생이 칠판에 판서할 때 벌어졌다.
선생님이 돌아서서 판서하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교탁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간 뒤 바짝 엎드린 채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보는 방식이었다. 바로 뒤에서 접근하는 인기척에 들킬까 봐 앞쪽에 앉은 아이들은 사전 약속대로 일부러 교과서 넘기는 소리를 내 측면 지원하며 작전 성공을 바랐으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첫째, 요행히 선생님의 눈치를 따돌리고 정해진 절차대로 행동에 옮기더라도 노림수를 충족시키는 장면을 가시권 안에서 포착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과녁이 정지된 상태로 고정돼 있지 않고 몸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 흔들려 정조준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둘째, 흔들리는 과녁이 방해하는 영점 조준(零點 照準)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깊숙이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지는 방법이 있으나 본능적으로 인기척이 감지돼 열이면 열, 전부 발각되고 마는 비현실적인 시도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에 앞서 행동 수칙을 다 지키기도 전에 들통이 나는 수가 많았고 그럴 때면 한바탕 곡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파장도 심각해 반 아이 모두 수수방관 괘씸죄 명목으로 단체 얼차려를 받았다.
소동의 주범(主犯)은 몽둥이찜질 세례로 손바닥이나 엉덩이에 불이 났고, 단체 얼차려를 받는 학생들은 책상 옆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식으로 대가를 치렀다. 작전 성공보다는 작전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둔 철부지들의 초고위험 모험 수(冒險 手)였다고 할 수 있겠다.
#실익 없는 본능적 반응
우연히 기회를 포착하는 일도 있었다. 1층에서 2층 또는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을 지나가다가 볼 수 있는 장면인데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본다기보다 보고픈 심리에서 학생들의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 실익(實益)은 없었다.
전교생 조회가 이뤄지는 대강당에서도 아이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강당에서 학생들은 바닥에 편한 자세로 앉아 있고, 선생님들은 강당 벽을 기준으로 옆으로 길게 줄지어 의자에 착석(着席)한 채 행사에 참여했다.
#대강당 안 육안(肉眼) 레이더망
선생님들의 착석 자세는 저마다 달랐고 한쪽 발 복숭아뼈를 반대편 다리의 무릎 위에 얹는 모습이 눈에 띌 때가 작전 개시 타이밍이었다. 보통 착석한 상태에서 한 자세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어 다리를 꼬았다가 폈다, 하는데 문제의 그 자세가 목격될 때가 있고 행위의 주체는 주로 남자 선생님들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시사철 치마만 입는 물상 선생도 가끔 그런 식으로 앉아 있었다.
전교생이 다 모이면 2,000명이 넘어 떠들거나 소리를 내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소음이 일고, 넓은 강당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모두의 주의가 산만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교사들과 제일 가까운 쪽 아이들이 눈에 레이더를 켜고 물상 선생을 예의주시했다.
#호기심이 낳은 부풀려진 희망 사항
하지만 육안(肉眼)에만 의존하는 레이더를 아무리 작동시켜 봐야 떨어진 거리와 각도상 학생들의 의도가 결실로 탐지될 리는 없고 다만 사춘기 시절 평균적 수준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부풀려진 희망 사항이 빚은 장난으로 그칠 뿐이었다.
사춘기에 막 입문한 학생들의 호기심은 별났고 아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톡톡 튀는 방식으로 묘책을 짜내느라 머리를 맞대고 낄낄거렸다.
실효성은 없지만 장난기를 발산하는 것으로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한 자연스러운 성장통이자 말썽꾸러기 학창 시절의 한 단면(斷面)이 아니었나, 싶다.
가르치는 교사들의 교권(敎權) 확립과 배우는 학생들의 인권(人權) 보호가 심각한 엇박자를 내는 세상에서 떠올려 본 70년대 중반 어느 중학교 교실의 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