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2. 1,000m 오래달리기, 그 극한의 고통

by 박인권

1,000m 오래달리기, 그 극한의 고통


#지옥의 레이스와 기이한 검사장 풍경

70년대 중고등학생들에게 지옥의 레이스, 라는 이름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체력 측정 검사가 있었다. 검사를 앞둔 아이들은 레이스에서 겪게 될 악몽과도 같은 극한의 고통에 지레 겁을 먹고 초긴장 상태에 빠지기 일쑤였다.


순번(順番)을 기다리다 마침내 출발선상에 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 모습은 자기들도 모르게 다양한 신체 반응으로 드러났다. 다리를 후들후들 떠는 아이도 있었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아이도 있었는가 하면 긴장만 하면 과민성 방광 증상이 도져 오줌을 지리는 아이까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레이스를 마친 아이들은 하늘이 노래지는 혼미(昏迷) 속에서 헛구역질하거나 토하고 울면서 쓰러지는가 하면 졸도까지 해 검사장 풍경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름하여 1,000m 오래달리기가 빚은 기이한 광경이다.


#체력장과 고입(高入), 대입(大入) 시험

1,000m 오래달리기는 당시 고입과 대입 시험에 반영됐던 체력장의 한 종목이었다. 체력장은 중고등학생들의 기초체력 향상을 위해 실시된 종합적인 체력 검사 제도로 1971년에 채택됐다. 내가 중학교 때 체력장 종목은 오래달리기를 포함해 100m 달리기, 멀리 던지기, 윗몸 일으키기, 턱걸이, 멀리뛰기, 왕복 달리기, 윗몸 앞으로 굽히기 8개였다.


79년에 왕복 달리기와 윗몸 앞으로 굽히기 두 종목이 폐지돼 80년 고3 때는 6개 종목으로 체력장을 치렀다.

중3 때 고입 자격고사인 연합고사 만점이 200점이었는데 체력장 점수가 20점으로 10%의 비중을 차지했다. 예비고사 마지막 시행 연도인 80년 고3 체력장 때는 340점 만점에 체력장 점수가 20점, 5.9%의 비중으로 하향 조정됐으나 결코 만만하게 볼 점수가 아니었다.


중학교 체육 시간 때 실시한 체력장 종목인 왕복달리기 테스트 모습. <사진=계성중 68회 졸업 앨범>


#오래달리기와 한계 체감 고통 지수

남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한 체력장 종목은 오래달리기와 턱걸이였으나 한계 체감 고통의 지수에서 턱걸이는 오래달리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턱걸이가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쥐어짜 악을 쓰는 단기전(短期戰)이라면, 오래달리기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사투(死鬪)로 기진맥진(氣盡脈盡)한 몸을 이끌고 한없이 멀어 보이는 종착지에 도달해야 하는 장기전(長期戰)이었기 때문이다.


신체 발육 측면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고등학교 때보다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중학교 때 오래달리기는 더욱 험난한 종목이었고 출발선에 선 아이들은 오금이 저리고 심리적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눈치채지 못한 무한 고통의 나락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로만 듣던 1,000m 오래달리기 테스트를 처음 받았다. 날짜를 정해 학급별로 돌아가면서 검사에 나섰는데 다들 오래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어 곧 들이닥칠 무한(無限) 고통의 나락(奈落)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출발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시시껄렁한 잡담을 주고받는 여유를 부렸다. 그럴 만도 했던 게 3분 39초 안에 들어오면 만점이라 100m 기준으로 21.9초 기록을 열 번 반복하면 된다는 몇몇 아이의 분석이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들의 100m 달리기 평균 기록이 13초~15초대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데서 나온 그 기세는 그러나 얼마 안 가 무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1,000m 오래달리기의 진입장벽

달리기라곤 100m 단거리밖에 몰라 1,000m 중거리 종목의 높은 진입장벽 앞에서 분석의 허상은 탈탈 털리고 말았다. 1,000m 오래달리기의 요건은 100m를 열 번 계속해 달리면 성립하지만 거리가 늘어날수록 신체 피로도가 급상승해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된다는 점을 아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첫 100m, 200m 구간에서 다들 의기양양하게 속도를 냈다가, 400m를 지나 500m에 접어들면 숨이 가빠 오고 서서히 다리가 풀리기 시작해 감당할 수 없는 격한 고통이 물밀듯 밀려왔다.


#200m와 400m를 동시 제패한 괴력의 사나이 마이클 존슨

육상에서 100m, 200m, 400m는 기록 향상을 위해 무산소 호흡으로 달리는 단거리로 분류되는데 100m 또는 200m 선수가 400m까지 제패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400m는 무산소 호흡에서 발생하는 피로물질인 젖산의 축적도가 100m, 200m보다 훨씬 높아 단거리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만큼 아예 차원이 다른 종목이라는 이유에서다.


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육상 200m와 400m에서 동시에 금메달을 따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는 미국의 마이클 존슨(1967~)이 육상계의 돌연변이인 까닭이다.


#마(魔)의 500m 이후 구간

500m 구간을 지나면서부터는 코로 숨 쉬라고 가르쳐준 체육 교사의 호흡법을 본능적으로 내팽개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動力) 추진체인 두 팔을 휘젓는 힘과 속도가 눈에 띄게 처졌다.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달리기 능력의 엔진, 다리의 감각도 느낄 수 없어 그야말로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헤매고 또 헤매었다.


마지막 100m, 200m를 남겨두고부터는 심장이 터질듯한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시달렸는데 눈앞이 노래지고 입에서 단내가 나 지옥이 따로 없는 공포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 구간에서는 거의 걷다시피 한 아이들이 많았고 대오의 끄트머리에 있는 아이 몇몇은 넘어질 듯 휘청거리면서 가까스로 골인 지점을 통과한 뒤 큰대자로 뻗어버리곤 했다.


#무위(無爲)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페이스 조절 작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오래달리기의 쓴맛을 몇 차례 본 아이들은 그 나름의 대책을 세웠는데 마라톤 선수들이 즐겨 사용하는 페이스 조절이었다. 예컨대 400m 운동장 한 바퀴를 돌 때까지는 무리를 이룬 대오(隊伍)의 뒤로 처져 평소의 중간 속도로 달리면서 체력을 비축하는 작전으로 500m 지점을 지난 후반부에서 정상 레이스를 펼친다는 식이었다.


말이 페이스 조절이지, 날마다 고강도 훈련을 반복하며 레이스 기술을 몸으로 체득한 운동선수도 아닌 일반 학생들에게 그 작전이 먹힐 리 없었다. 후반부에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작전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평소 꾸준한 체력단련과 체계적인 달리기 훈련이 필수적인데 어쩌다 한 번씩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오래달리기에 나서는 일반 학생들로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 넘지 못할 벽이었다.


나도 중학교 체육 시간 오래달리기 테스트 때 몇 번 페이스 조절에 도전해 봤으나 500m를 넘어선 지점부터 속도를 낼라 치도 발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라 아예 처음부터 기록과 상관없이 레이스 완주에만 목표를 두었던 기억이 난다.


#운이 따랐던 고입 체력장

다행히 운이 좋았던지, 연합고사용 체력장 시험 오래달리기에서 만점을 받았고 덕분에 전 종목 20점 만점을 채울 수 있었다.


악명(惡名) 높은 1,000m 오래달리기는 결국 레이스 도중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에 따른 여론 악화로 1994년부터 체력장 제도가 전면 폐지되는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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