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1. 찜통 교실 속 여름방학 보충수업
ㅡ찜통 교실 속 여름방학 보충수업
#가마솥 무더위와 보충수업
1977년 대구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용광로 더위와 끈적끈적한 습기로 불쾌지수는 가파르게 치달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다. 찬물로 등만 목욕하는 등목(沐)을 하고 나면 살 것 같았지만 금방 땀이 차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낮에는 폭염(暴炎)에 시달리고, 밤에는 열대야(熱帶夜)의 후덥지근한 기운이 사방에서 밀려와 밤새 뒤척이기 일쑤였다. 연중 날씨가 가장 무덥다는 대서(大暑)를 지나면서부터 가마솥 무더위는 절기를 비웃듯 더욱 기승을 부렸고 햇빛에 노출된 살갗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따끔따끔했다.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보충수업이 의무적으로 실시된 우리 학교 중3 교실 안은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70명이 넘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한 교실은 펄펄 끓었고 더위를 잔뜩 먹은 공기를 피할 길 없는 아이들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 있었다.
#더위와 싸우는 유일한 수단, 책받침 부채질
가뜩이나 책만 보면 잠이 쏟아지는 여름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하나 없는 콩나물시루 교실 안에서 학생들도 지쳤고 선생님들도 지쳤다. 더위와 싸우는 아이들의 유일한 수단은 책받침 부채. 책받침이 만들어 내는 바람은 콘크리트 교실을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를 막아낼 턱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부채질의 목적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일 터인데, 한여름의 교실에서 책받침을 쥐고 흔들어 일어나는 바람은 바람이라기에는 와닿는 낌새가 마땅치 않아 차라리 바람일 것이라 믿고픈 막연한 기대감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방학 때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사진=계성중 68회 졸업 앨범>
#땀에 절어 쉰내가 진동한 교실 안
바싹 붙어 앉은 수십 명의 몸에서 나는 땀 냄새와 발 냄새는 곰삭은 쉰내를 닮아 비위가 상할만했는데도 내색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후각 기능이 발동하려면 냄새의 진원지가 분명해야 하는데 아이들 모두가 냄새의 진원지라 다 그러려니, 하고 흘려 넘겼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들의 양복 차림 출퇴근이 일상적일 때라 남자 선생님들은 상의(上衣)를 벗고 넥타이를 풀어 제친 채 수업을 진행했지만, 아이들처럼 부채질할 수는 없어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훔치기 바빴다.
#1977년 7월 31일, 대구 낮 최고 기온 39.5도
7월 31일, 그날 아침이 밝았다. 오전부터 쨍쨍한 햇살이 사나운 성미를 드러냈다. 아이들은 빠짐없이 출석했고 보충수업은 어김없이 진행됐다. 하루 중 낮 기온이 가장 뜨겁다는 오후 2시, 기상 관측 온도계는 섭씨 39.5도를 기록했다. 역대급 더위였다. 찜통 교실 안 체감 온도가 이보다 훨씬 더 높으리라는 사실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졸던 아이도 불볕더위에 잠을 설쳐 신경질적으로 눈을 뜬 채 입가에 흘린 침을 닦아냈고, 졸음을 참지 못해 눈꺼풀이 잠기다, 말기를 반복하던 아이도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잠꼬대 비슷한 소리를 해댔다. 수돗물을 흠뻑 적신 손수건을 목덜미에 둘러싸는 방법이 그나마 책받침 부채질보다는 나았다.
찌는듯한 더위 속에서도 오후 들어 밀려오는 잠을 이기느라 자기 허벅지를 꼬집거나 고개를 뒤로 젖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학구열이 남다른 아이들이었다.
#물맛의 고마움
쉬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은 우르르 운동장 수돗가로 달려 나갔다. 시멘트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스무 개 남짓 설치된 야외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아이, 더위도 쫓고 잠도 쫓겠다고 세수하는 아이, 머리에 물을 적시는 아이로 수돗가는 쉬는 시간마다 만원이었다.
이글거리는 지열(地熱)과 태양열의 영향으로 수도꼭지의 물은 식도(食道)를 넘어갈 때 평소처럼 서늘하지는 않고 미지근한 기운이 앞섰으나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들이 물맛의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불쾌지수와 시빗거리
불쾌지수가 높으면 사소한 일로도 시비가 일어나는데 한 달간의 보충수업 내내 크고 작은 아이들끼리의 다툼도 잦았다. 다닥다닥 붙은 앞뒤 책상 간 아이끼리 서로 밀지 말라며 싸우고 시끄럽다고 싸우고 냄새난다며 실내화를 벗지 말라고 싸웠다.
7월의 마지막 날, 정점을 찍은 섭씨 39.5도는 기상청 집계 역대 국내 일일 최고 기온 공동 6위의 기록이다. 역대 1위는 1942년 8월 1일 대구를 달군 섭씨 40.0도. 대구는 역대 10위 안에 든 도시 중 여섯 차례나 포함돼 아프리카를 빗댄 대(大)프리카가 괜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굣길 오르막
언제나처럼 그날도 보충수업이 끝난 해거름, 등하교용 자전거에 파김치가 된 몸을 싣고 페달을 밟았다. 등굣길이 내리막이라 하굣길은 오르막이었다. 오르막은 반월당 로터리를 지나 대구 교대 입구 못미처서부터 영남대 대구 캠퍼스 진입로 부근까지로 어림잡아 400m 정도인데 경사가 가팔라 자전거 이용자에게는 난코스로 소문난 곳이다.
평상시 하굣길에도 이곳을 지날 때면 어쩔 수 없이 중간쯤에서 내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까지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곤 했던 길이라 이날은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1970년대 중등학교의 학습 환경은 지금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살인적인 무더위에 노출된 채 강행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