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0.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의 집합체, 중학교 교실

by 박인권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의 집합체, 중학교 교실


#각양각색(各樣各色)의 청춘들

중학교 교실에는 별의별 아이들이 다 모여 있었다. 7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은 까까머리 또는 스포츠머리, 칙칙한 검은색 교복과 교모(校帽)로 일사불란한 용모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하나둘 속내를 벗겨내면 각자 나름의 개성과 그만의 끼로 충만한 청춘들이었다.


중학교 교실은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의 집합체, 그 자체였다. 맨 처음 나를 놀라게 한 아이는 중학교 1학년 초, USA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하고 던진 영어 선생의 질문에 번쩍 손을 들고 United States of America, 미합중국이요, 라고 대답한 녀석이었다.


#독보적인 존재감의 전교 1등

단번에 반 친구들의 시선을 끈 그 아이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똘똘해 보이기까지 해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4월 첫 월례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더니 1학년 내내 학년 수석을 놓치지 않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예전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는 품행도 방정하다는 인식이 불변의 등식(等式)처럼 여겨질 때라 그 아이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학급 반장도 당연한 몫이었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로 중1 과정의 주요 과목을 입학 전 선행(先行) 학습으로 모두 끝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서 또 한 번 놀랐다.


중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들과 찍은 사진. 맨 뒷줄 맨 왼쪽 아이가 별명이 쌕쌕이였고, 맨 앞줄 맨 왼쪽에 앉아 있는 아이가 싸움 실력이 남달랐던 친구다. 그 바로 옆이 필자. <사진=계성중 68회 졸업 앨범>


#전교 1등의 몰락

중3이 됐을 때 그 아이는 또 다른 이유로 나를 놀라게 했는데 사연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중3 첫 시험에서 전교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교류가 없다가 고등학교 2학년 말께 우연히 만날 일이 있었는데 학업 성적이 급전직하(急轉直下)했다는 고백에 할 말을 잃은 기억이 생생하다.


훗날 세칭(世稱) 삼류 대학에 다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로는 더는 그 아이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괴짜 우등생

두 번째 기억에 남는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한 반인 친구로 쉬는 시간만 되면 떠들고, 공부라고는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도 시험만 치면 반에서 1등, 전교 석차로는 3위권을 유지하는 별종(別種)이었다.


남들 안 보는 데서 공부하고 남들 잘 때 따로 공부하는지, 한 번만 보고 들어도 기억 회로에 저장되고 남다른 이해력을 타고난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괴물이라고 소문난 그 아이를 이후 대학 4학년 때 입대(入隊)를 위한 신체 검사장에서 다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줄곧 비교 불가의 전투력을 갈고닦았는지 정문이 ‘샤’라고 불리는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그 두 아이는 출발은 같았으나 이후 행보가 극명하게 갈린 것을 보면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는 말은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1925~2015)가 뉴욕 메츠 감독이던 1973년에 남긴 명언(It ain’t over, till it’s over)에서 비롯됐다.


#중2 수학여행지에서 있었던 일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전교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도 있었다. 수학여행지인 경남 충무(지금의 통영)에 도착하고 숙소 강당에서 벌어진 장기 자랑 무대에 실물을 처음 보는 드럼 세트가 설치되는 순간, 와, 하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화제의 주인공은 밤무대 가수들이 공연을 펼치는 극장식 레스토랑의 주인 아들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드럼 장비를 공수(空輸) 해 왔다는데 5개나 되는 북과 심벌즈 3개를 어떻게 실어 날랐는지, 반 아이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아이는 70년대에 유행하던 디스코 음악에 맞춰 드럼 연주를 멋들어지게 선보였는데 흥을 주체하지 못한 몇몇 아이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막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워 학생들 모두 열광(熱狂)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싸움 실력이 남달랐던 조용한 아이

소위 좀 논다는 아이가 한 반에 몇 명씩은 꼭 있던 시절이었고 우리 반도 그랬다. 희한하게도 주먹깨나 쓴다고 껄렁대는 아이들도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 못 하는 상대가 있었다.


말수가 적어 있는 듯 없는 듯 별 존재감이 없는 친구였는데 한 번은 공연히 시비를 걸어온 주먹패 한 명을 기습적인 명치 공격에 이어 원투 펀치로 얼굴을 두들겨 패 단숨에 제압해 버리는 괴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복싱 선수처럼 상체 몸놀림이 빨라 방어 능력이 뛰어났고 주먹의 파괴력도 대단해 어깨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태권도 유단자

작달막한 키에 촌티가 나는 볼품없는 외모와 달리 태권도 유단자인 숨은 실력자도 있었다. 누가 봐도 만만해 보이는 이 아이는 쓸데없이 자신을 괴롭히려는 상대와 꼭 방과 후 운동장에서 맞짱을 뜨자고 제안했는데 무술(武術)로 단련한 발차기와 정권(正拳) 치기에 나가떨어지지 않는 아이가 없었다.


#왕(王)자 복근(腹筋)이 인상적이었던 유도 선수

유도 선수도 한 명 있었다. 겉보기에는 몸집이 왜소한데 웃통을 벗으면 전혀 다른 근육질 몸매가 뚜렷했다. 유도 선수들은 체급과 관계없이 배에 왕(王)자가 선명한 복근(腹筋)이 인상적인데 이 아이도 그랬다. 덤비는 아이들을 잡아 순식간에 휘리릭, 하고 업어치기 한판으로 메다꽂아 싱겁게 승부가 끝나고 말았다.


유도 선수가 마음먹고 조르기 기술을 걸면 순간적으로 기절하는데 실제로 이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VIP 근접 경호원으로 유도 선수 출신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 바로 뒤에서 근접 경호하는 경호실 수행 과장이 한국 유도의 산실 용인대 출신이었다.


#별명이 쌕쌕이였던 친구

중학교 3학년 때 별명이 쌕쌕이였던 친구도 생각이 난다. 이 친구는 100m 달리기를 12.0초에 끊었는데 달릴 때 거짓말처럼 쿵쿵, 쿵쿵, 하고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가 육상 단거리 선수를 빼닮았었다.


또 한 명의 친구도 기억에 남아 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어느 날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갑자기 껌 줄까, 하더니 책가방을 활짝 열어젖히는데 그 속에 수십 통의 껌이 들어 있어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다. 구멍가게 집 아들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제는 모두 환갑(還甲)을 넘어 진갑(進甲)마저 넘긴 나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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