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6. 숭의여고 농구부 박찬숙

by 박인권

숭의여고 농구부 박찬숙


#전령사의 전갈(傳喝)

갑자기 학교가 떠들썩했다. 책상에 걸터앉아 장난치고 떠들던 아이들 모두 귀를 의심했다. 전령사(傳令使) 아이 한 명이 벼락같이 나타나 중3 교실 복도를 휘젓고 다니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학교에 박찬숙 왔다!’


어쩔 줄 몰라 날뛰는 전령사의 전갈(傳喝)에 각 교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한여름 오후 후덥지근한 열기를 뚫고 교실 복도 너머에서 다급하게 들려온 전갈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여고 농구 스타가 우리 학교에 떴다, 는 소식은 호기심에 목마른 사춘기 소년들을 흥분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화젯거리였다.


#한국 여자 농구의 미래, 박찬숙

전령사가 입에 거품 물고 아이들에게 전한 길거리 뉴스의 주인공은 미녀 농구 스타 숭의여고 3학년 박찬숙(1959~). 한국 여자 농구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에이스로 자타가 인정하는 전국구 스타였다. 당시 국내 여자 농구계에서는 보기 드문 신장 190cm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유연성, 득점력에 더해 스타성까지 겸비해 국민적 인지도를 지닌 선수였다.


박찬숙은 남자 중고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남자 일색이던 국내 스포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미모의 하이틴스타의 존재는 중고등학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환호의 대상이었다. TV에서 본 박찬숙의 얼굴은 풋풋한 10대 후반의 여고생이라기에는 개성이 강했다. 눈, 코, 입의 윤곽이 뚜렷했고 서구형 미인이었다. 농구까지 잘했으니 너도나도 팬을 자처했고 그녀는 청춘스타를 상징하는 스포츠계의 아이콘이었다.


#청춘들의 야단법석

고교 1학년 때 일찌감치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고 여자 농구의 정상급 센터로 훌쩍 성장한 박찬숙의 실물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아이들은 조바심을 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 기간이라 학기 때보다 다소 긴장감이 풀어진 아이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고 청춘들의 안달복달 야단을 어찌할 수 없었던 선생님들도 서둘러 수업을 끝냈다.


3학년 전교생들은 일제히 교실을 박차고 뜻밖에 횡재한 구경거리를 찾아 나섰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수백 명의 아이들 무리가 밀물처럼 대강당으로 밀고 나갔다. 대강당 앞 길가에 세워진 숭의여고 농구부 전용 봉고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 옆구리에 숭의여고 농구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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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때 여고 농구 스타 박찬숙이 등장해 난리가 났던 계성중 대강당. <사진=계성중 68회 졸업 앨범>


#북새통을 이룬 강당 출입구

숭의여고 농구팀은 방학을 맞아 지방 전지훈련 중이었다. 남고(男高) 농구의 신흥 명가(名家) 계성고와 연습 경기를 위해 이날 대구를 찾았고, 우리들은 운 좋게 박찬숙의 실제 모습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니스 칠을 한 베니어합판이 넓은 바닥 전면(全面)에 깔린 강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 위에 덧신을 신어야 하는데 맨손으로 뛰쳐나온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6개의 출입구 안팎에 빼곡히 몰려 있었다. 늦게 도착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바람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를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앞 대열의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까스로 강당 안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예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반보다 일찍 수업이 끝난 우리 반 아이들은 북새통 속에서도 숭의여고 농구 선수들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연습 경기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났는지, 양 팀 선수들은 비 오듯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냉방장치가 없는 강당 안 마룻바닥이 후끈 달아올랐고 빠져나갈 길 없는 땀 냄새가 진동했다.


#처음 본 박찬숙의 실물

TV로만 본 박찬숙의 실물은 과연 예뻤다. 190cm라는 키의 현실감을 느껴본 적 없던 아이들은 눈앞에 드러난 박찬숙을 보고서야 크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팀 동료들보다 한 뼘 이상 큰 박찬숙의 플레이는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부드러웠다. 남자 선수보다도 크면 컸지, 꿀리지 않는 우월한 신장(身長)은 곧잘 골 밑 플레이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남자 선수들과의 대결에서도 쉽사리 밀리지 않는 박찬숙의 몸놀림에 놀랐고, 농구 선수가 저렇게 예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고등학교 선수들도 박찬숙의 실제 모습을 처음 봤는지, 경기 중간중간에 신기해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승부의 결과야 물론 뻔했고 남자 선수들이 큰 점수 차로 이겼다.


1977년 여름 어느 날 모교에서 벌어진 실제상황이었다.


박찬숙은 고교 졸업 후 입단한 실업팀 태평양화학(1997년 해체)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1979년 세계 여자농구선수권대회 준우승, 84 LA 올림픽 은메달, 아시아 농구 선수권 4연패(1978, 1980, 1982, 1984)의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현재 서대문구 여자농구단 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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