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5. 단짝이 된 호적수(好敵手)
단짝이 된 호적수(好敵手)
#중3 출정식과 득의만만한 기세
가슴 뿌듯한 중2 겨울방학이 끝나고 기다리던 중3 1학기 첫날이 밝았다. 영어 교재 삼위일체의 문법 세계를 꼼꼼하게 들여다본 전리품(戰利品)이나 다름없는 물 오른 학습 전투력에 힘입어 바야흐로 울린 출정 신호는 진군(進軍)의 북소리처럼 반갑게 들렸다.
핵심 과목 영, 수 중에서도 영어 기초체력이 유난히 위력을 발휘할 때였다. 중3 수험 전선의 출발선에 선 나의 임전(臨戰) 태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영어 학습의 기초인 문법에 대한 확장된 자신감을 갖췄겠다, 생애 첫 자기주도학습의 결실인 공부 맷집도 생긴 마당에 1년간 이어질 고입(高入) 전장(戰場)에 뛰어든 나는 전에 없이 득의만만(得意滿滿)했다.
2학년 2학기 때 중3 과정을 서둘러 일견(一見)한 수학은 진도(進度)를 따라가는 것으로 복습의 효과를 거둘 것이고, 나머지 과목은 암기가 승부의 관건이라 전투를 앞두고 사기충천한 나의 기세가 마냥 허세만은 아닐 터였다.
기선제압의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법, 첫 전투의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첫 번째 진지전(陣地戰), 4월 월례고사의 승전보(勝戰報)
3월 첫 주, 빠르고 경쾌하면서 힘찬 가상의 진군나팔 소리에 발맞춰 아이들 모두 그 나름의 전략과 전술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1977년 4월 초순, 한 달여 공들여 구축한 첫 번째 진지(陣地)에서 중3 첫 월례고사 전투를 치렀다.
시험 기간은 3일. 시험 과목은 자그마치 13과목으로 국, 영, 수, 사회, 국사, 도덕, 물상, 생물, 공업, 기술, 지리, 음악, 미술이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여기에 체육 과목이 추가됐다.
여한이 없이 준비한 전력(戰力)을 다 쏟아부은 첫 전투의 승자가 가려졌다. 1, 2학년 때처럼 담임 선생이 이름과 석차(席次)를 차례대로 발표했다. 나보다 먼저 고지(高地)를 밟은 아이는 없었다. 중2 겨울방학 첫날 다짐한 스스로와의 약속이 현실로 나타나 속으로 웃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맨 아래 가운데가 나, 오른쪽이 단짝 친구. <사진=계성중 68회 졸업 앨범>
#채점 결과가 아쉬웠던 단답형 미술 답안
며칠 후 전교 석차도 공개됐다. 앞에서 세 번째, 여기서 석연찮은 사실을 발견했다. 과목별 담당 교사로부터 돌려받은 채점 답안지 중 단답형 미술 채점 하나가 이상했다. 숫자를 적는 문제였는데 내가 쓴 ‘4’를 미술 선생이 ‘9’로 판단하고 틀린 답안으로 채점한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 4를 빠르게 흘려 쓴 모양새가 보기에 따라 ‘9’처럼 보일 수도 있었으나 나는 분명 ‘4’라고 썼기에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답안 작성 때 내가 의도한 ‘4’가 받아들여지면 전교 석차도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 미술 선생을 찾아가 호기롭게 경위를 설명했다. 미술 선생도 어쨌거나 혼란의 빌미를 제공한 날림 글씨체의 책임 소지(素地)가 나에게 있는 것은 사실 아니냐며 호기롭게 내 기(氣)를 꺾었다.
진한 아쉬움이 남은 첫 전투 성과는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선의의 경쟁을 펼친 호적수
내 바로 뒤를 따라 2순위로 학급 고지에 오른 아이와는 3학년이 되고 처음 만났는데 희한하게도 그때부터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됐다. 이른바 호적수(好敵手)와는 거리를 두기 마련이라 가까운 친구가 되기 어려운 법인데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자는 의기(意氣)가 투합됐는지, 줄곧 선의의 경쟁자로 남았다.
선제공격에 성공한 나는 1학기 내내 선두를 지켰고 단짝 친구도 지치지 않고 내 뒤를 바짝 추격해 왔다. 여름방학 때 대구시 외곽에 살던 단짝 친구 집에 놀러 간 뒤로는 서로 더욱 친해졌고, 무슨 꿍꿍이속인지 헷갈리는 워딩(wording)을 일삼아 속셈을 알 수 없던 담임 선생에 대해 품었던 암묵적 비호감도 다르지 않았다.
#치열했던 선두 경쟁 레이스
2학기 들어 촘촘했던 학업 전선에 약간의 균열이 발생했다. 1학기와 달리 2학기에서는 첫 시험부터 단짝 친구와 엎치락뒤치락 살얼음판 선두 경쟁을 벌였고 학기가 종료될 때까지 그 양상은 이어졌다. 1학기 때 한 번도 만점을 놓치지 않은 수학 과목 성적이 들쑥날쑥한 것이 원인이었다. 단짝 친구는 우직한 외모만큼이나 뚝심이 대단했다.
졸업식 때 우리 둘은 나란히 학교장 표창을 받았다. 서로 다른 상급학교로 진학한 단짝 친구와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거나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소식이 뜸해져 지금은 근황(近況)을 알 길이 없다.
#모범생 스타일의 만년 3등 아이
3학년 내내 만년 3등이었던 아이도 기억에 남아 있다. 작달막한 키에 도수 높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한 모습이 영락없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말을 걸어도 말하는 둥 마는 둥 말수가 없어 졸업 때까지 서먹서먹했다. 우연한 계기로 대학 시절 대구 시내 길거리에서 한 번 만나고 그 길로 연락이 끊겼다.
당시에 즐비한 음악 카페에서 모범생 아이는 로마 제국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출판편집자라면 로마의 영광, 영광의 로마 중 어느 쪽을 제목으로 선택하겠냐고 묻길래 중학교 때와는 영 딴판인 모습이 자꾸 생각나 그냥 웃고 말았었다.
초중고, 대학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학창 시절이 중학교 3학년 때라 기억이 스러지기 전 소환해 되돌아본 지극히 사적인 추억이다. 이 자리를 빌려 어딘가에 있을 단짝 친구의 파이팅을 축원(祝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