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7. 학교와 학생 간의 서로 다른 속셈, 대(大) 수양회(修養會)

by 박인권

학교와 학생 간의 서로 다른 속셈, 대(大) 수양회(修養會)


#귀찮을 법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특이한 행사

귀찮을 법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학창 시절의 특이한 행사 하나에 관한 이야기다. 딱 부러지게 단정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데, 이 행사는 주최 측과 행사 참여자, 즉 학교와 학생들 간에 속셈이 엇갈린다는 이유에서다. 학교 측이 명분과 실리 둘 다 추구했다면 학생들은 오로지 실리(實利)를 챙기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양측 모두에게 분명 유용한 측면이 있었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학생들이 행사에서 얻고자 한 실리는 스스로 각자의 사정에 의해 부여하는 행사의 효용성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행사의 취지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학교 측의 속셈

학교에서도 이런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해마다 시간과 인력, 예산을 투입해 연례행사로 진행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나는 학교 설립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전통으로 굳어진 역사성을 계승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사 취지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개최하는 것만으로 첫 번째 이유의 가치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행사 이름은 대(大) 수양회(修養會). 학교 측이 대 수양회란 이름으로 해마다 개최하는 행사의 비전은 교훈(校訓)에서 드러난다.


1906년에 설립된 모교 계성중학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를 교훈으로 내건 기독교 학교다.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한 미션 스쿨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민주 시민을 양성한다는 교육 목표와 인재상도 교훈에서 짐작할 수 있는 그대로다.


내가 중3 때인 1977년에 열린 대(大) 수양회 모습. <사진=계성중 68회 졸업 앨범>


#설교(說敎) 강연과 동문 선배와의 만남

몸과 마음을 닦아 지(知)와 덕(德)을 계발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수양회의 사전적 정의를 구현하는 실행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설교(說敎) 강연’과 ‘동문(同門) 선배와의 만남’.


설교 강연은 건학 이념의 현실적 실천을 위해 명망 있는 원로 목사 몇 분을 초빙해 성경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 신약 성서와 구약 성서의 주요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어떻게 생활 속 지혜로 뿌리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적 메시지를 담은 내용이었다.


언어의 연금술사로 달변(達辯)에 다변(多辯)인 목사들도 수천 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펼치는 강연인 지라 애당초 일사불란한 통제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종교적 용어의 빈번한 사용이 유발하는 지루함 때문에 강연의 흡인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정치인 동문 선배들의 남다른 현실감각

반면 동문 선배와의 만남 시간은 훨씬 활력이 있었고 학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주로 널리 알려진 사회지도층 인사 중 정치인들이 강사로 나섰는데 청중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관심사를 포착하는 감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듣고 나면 별것도 아닌 잡담 수준의 일화를 그럴듯하게 잘도 꾸며냈다.


강연 중간중간에 청소년들의 구미(口味)에 맞는 일상적 화젯거리를 넉살 좋게 툭툭 던져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순발력만큼은 남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제는 학창 시절 회고담과 자신의 인생 역정,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 따위의 천편일률적인 것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문 선배는 일제 강점기 불온 인물로 낙인찍혀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달아나던 중 모교 50계단에서 등에 권총을 맞고도 살아남았다는 전(前) 신한민주당 총재 권한대행 신도환(1922~2004)이었다.


#대(大) 수양회 풍경

대 수양회는 매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둔 3월 말이나 4월 초에 3일 일정으로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나른한 봄날, 전교생이 마룻바닥에 앉아 강당을 빼곡히 메운 수양회 내내 학생들도 졸고 선생님들도 졸았다.


원활한 수양회 진행의 특명을 받은 몇몇 선생님들은 행사 진행 틈틈이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의 머리를 쥐어박아 깨웠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는 경계 근무를 서느라 바빴다. 특명 수행은 대개 학생과장이나 체육 교사들이 맡았고 담임 선생들도 거들었다.


#학생들이 챙긴 실리의 세 가지 유형

수양회 행사 때 학생들이 각자 알아서 챙긴 실리는 세 가지 유형이었다. 첫째는 학구파 아이들이 눈치껏 활용한 중간고사 학습 대용(代用)의 시간. 수양회가 끝나면 바로 중간고사를 치르게 되는 일정상 공부 욕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3일이라는 수양회 기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학습 에너지 충전의 기회였다.


*학구파

지켜보는 눈이 있어 대놓고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을 펼칠 수는 없었으나, 과목별 암기 사항을 요약한 손바닥만 한 메모 수첩이나 핵심 영어 단어와 숙어를 적은 단어장은 들키지 않고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3일이라는 수양회 일정은 임박한 시험 준비에 필요한 부족한 학습량을 채울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고 하루하루 결전의 각오를 다지며 만반의 태세를 갖춘 최상위권 아이들에게도 행여 빠뜨릴 수도 있을 영역에 대한 최종 점검의 호기(好期)였다.

빠뜨릴 수도 있을 영역이란 사소한 듯하나 시험에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내용을 말한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우등생들에게 해당하는 체크 포인트다.


*잠꾸러기 파(派)와 내 멋대로 파

나머지 두 유형은 학습 실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졸고 휴식 시간에는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에게 수양회는 모자랄 것 같지도 않은 잠을 원 없이 보충하는 기회의 땅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될 대로 돼라, 는 식의 영원한 자유인을 꿈꾸는 아이들은 역시 실리를 추구하는 방식도 그들다웠다. 이른바 ‘내 멋대로 파’(派)인 이들은 노는 물이 비슷한 동료들과 불법 복제 성인 만화를 주제로 야한 음담패설(淫談悖說)을 늘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들 중 일부 아이는 성인 주간지에 실린 비키니 차림을 한 여배우의 화보(畫報)를 몰래 꺼내 보면서 낄낄대거나 심지어는 미국 성인잡지 일부를 찢어서 여러 번 접은 노골적인 도색(桃色) 사진을 펼쳐 위험천만하게 훔쳐보는 도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세 부류의 공통점

세 부류 모두의 공통점이 있었다면 강당을 가득 메운 아이들 무리의 가운데 자리를 선호했다는 점이다. 적발될 우려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방식대로 대 수양회를 받아들인 셈이다. 학교 측에 문의한 결과 대 수양회는 현재 인성교육의 날로 명칭이 변경돼 매년 4월 중순 무렵 이틀간 여는 것으로 확인됐다. 내용은 우리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나도 대 수양회 기간을 요긴하게 활용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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