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28. 납작만두의 추억

by 박인권

납작만두의 추억


#경상도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고들 한다. 경상도 어머니들이 들으면 서운하다, 하겠지만 사실이다.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물론 내 나름의 해석이니 효력을 보장할 자신도 없다. 말 그대로 나만의 유권해석이니 흥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나만의 유권해석 첫 번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보고 겪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표 집밥을 먹으면서 나의 미각(味覺)은 자연스레 경상도 음식에 녹아들었다. 경북 문경 출신인 어머니도 경상도 음식을 먹고 자랐고 경상도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한 터라 우리 집 밥상 문화가 경상도식인 점은 필연적 귀결이랄 수 있다.


고모가 다섯 분인 나는 고모들이 입버릇처럼 흘린 말을 기억한다.

‘엄마가 음식을 잘해 좋겠다. 맨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집밥도 집밥 나름

고모들은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늘 칭찬했다. 경상도 며느리답지 않게 손맛이 남달랐다는 평가는 우리 집 밥을 먹어본 사람들이면 으레 하는 말이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대구에 모여 살던 고모 댁에 놀러 가 밥을 먹을 때면 고모들의 말은 인사치레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혀에서 느껴졌다.


어머니가 해주는 요리처럼 다른 곳의 집밥도 맛있을 수밖에 없어 집밥은 맛있는 게 당연하다고 믿어온 마음은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성 확신이 흔들린 것은 다른 집, 바깥 음식과 우리 집밥의 기묘한 차이에서 비롯됐다. 차이는 곧 짠맛이 매우 강하고 양념이 걸쭉해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떨어지는 경상도 음식의 특징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간 맞추는 방식과 식재료의 중요성

전라도 음식은 젓갈로 간을 맞추고, 경상도 음식은 간장, 소금으로 간을 낸다고 한다. 식재료의 다양성에서 전라도는 다른 지역을 앞서는데 이는 지형학적 조건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결국 보편적인 수준에서 전라도 음식은 맛있고, 경상도 음식은 맛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가도 간을 맞추는 방식과 식재료, 두 요소의 영향에 좌우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집 음식도 젓갈 대신 간장과 소금 위주로 간을 내 짜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고등학생 무렵 밥상에 오른 주요리와 필수 반찬인 김치, 밑반찬 따위의 짠맛이 거북해 식사 때마다 싱겁게 해달라고 성가신 주문을 하곤 했으나 음식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구 경북 지역과 염장(鹽藏) 식품의 발달

생각해 보면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고 무조건 음식이 짤까? 이유는 요리 과정에서 들어간 간장과 소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간장과 소금의 양이 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칠맛에 도움이 된다는 젓갈도 과다 사용하면 짤 수밖에 없고 간장, 소금의 비율도 높으면 음식의 짠맛이 강해지는 것이다.


내륙 분지가 많은 대구 경북 지역은 옛날부터 싱싱한 해산물(海産物)을 접하기 어려워 소금에 절여 저장하는 염장(鹽藏) 식품이 음식 문화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고, 이 과정에서 짠맛에 대한 적응력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밴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음식 맛의 결정 요소

음식 맛은 식재료의 질과 신선도, 양념과 육수의 비율, 양념과 육수 만들기, 간 맞추기, 불의 강도, 끓이는 시간, 고추와 파 따위의 고명에다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진 총합(總合)의 산물이랄 수 있겠다. 경상도 음식이 대체로 맛이 없다는 인상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전라도 음식의 경쟁력

경상도 음식에 대한 또 다른 박한 평가의 배경에는 맛의 고장, 산해진미(山海珍味)의 본거지 전라도 음식과의 경쟁력에서 뒤진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수긍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점에서 개인적 의견이라기보다 일반적인 평가라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내린 해석의 근거도 이와 같은 다수설에 입각한 것인 데다, 전라도 음식을 여러 번 맛본 나도 다수설에 찬성하는 편이라 고정관념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음식의 명성은 대외적 인지도와 음식의 역사와 전통, 평균적 취향에 맞는 보편적인 입맛 충족 세 가지 요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전라도 음식을 왜 맛있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상도 음식에 대한 오해

그러나 경상도 음식 맛이 별로라는 인식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수준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경상도에도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이 여럿 있고, 별미(別味)로 이름난 지역 음식도 곳곳에 널려 있다. 다만 경상도 음식은 맛집을 찾아나서는 나름의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인 셈이다.


철판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납작만두. ⓒkijeong kwon / https://pixabay.com/photo-3868322/ archive copy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길거리 음식, 납작만두와의 첫 만남

서론이 길었다. 대구 지역의 먹거리 명물(名物)이자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납작만두 이야기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납작만두를 나는 중학교 때 처음 먹어봤다. 중학교 바로 옆에 대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문시장이 있었고, 시장 안 노점(露店)에서 군것질거리로 판 만두가 납작만두였다.

생전 처음 본 납작만두는 모양부터 특이했다. 이름처럼 만두의 생김새가 아주 얇고 납작해 편평하게 민 밀가루 반죽을 구워낸 허름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납작한지 반달을 닮은 만두피 양쪽의 등허리가 찰싹 달라붙은 것처럼 보여 만두 같지 않았다.


만두 속에 들어가는 재료인 만두소의 양(量)을 최소화한 결과다. 만두소의 내용물은 두 가지, 당면과 부추가 전부였다. 다진 돼지고기와 김치, 으깬 두부로 대표되는 일반 만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물에 불려 짧게 채 썬 당면과 토막 낸 부추의 양적 존재감도 밋밋했다.


#납작만두의 미각적 가치, 단순, 소박, 중독성

먹어보기 전까지 실망의 눈빛을 감추지 못하던 나와 친구는 한 입 베무는 순간 화색(和色)이 돌면서 그래 이 맛이야, 하고 새로운 만두 세계에 눈을 떴다. 먹는 방식도 독특했다. 널따란 철판 위에 기름을 흥건하게 두른 뒤 튀기듯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납작만두 위에 대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섞은 간장을 뿌려서 먹었다.

납작만두와의 첫 만남이 선사한 맛은 소박하면서도 강렬했다.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쫄깃했고 당면과 부추가 뭉클뭉클하고 부드럽게 씹힐 때마다 대파와 고춧가루, 간장에서 배어 나온 매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중독성을 부추겼다. 단순하면서 이색적인 만두소와 평평한 만두피, 간장 양념이 하나가 된 납작만두의 첫인상은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 소박, 중독성. 내가 생각하는 납작만두의 미각적(味覺的) 가치다.


#납작만두의 양대 명소(名所)

늘 배가 고파 군것질거리를 찾아다닐 때라 방과(放課) 후 친구들과 수시로 서문시장 납작만두 가게에 들렀고,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도 납작만두 한 접시를 자주 사 먹었다.


납작만두의 유래는 먹거리와 식재료가 부족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가 어려울 때라 만두소에 들어갈 식재료를 구하는 일이 마땅치 않았고,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손쉽게 허기를 채우는 간식거리로 고안해 낸 음식이 바로 납작만두였다.


서문시장과 교동시장은 대구식 납작만두의 양대 명소(名所)다. 60년 전통의 미성당 납작만두도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지금의 납작만두는 양념장에 양상추와 오이를 버무린 채소 무침과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아쉽게도 납작만두와의 추억은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끝나고 말았다. 숱하게 내려간 대구에서 납작만두를 먹겠다는 조바심만 냈을 뿐, 정작 먹을 기회는 없었다.

이전 27화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