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빛깔의 짙붉은 김치는 다양한 미각(味覺) 체험의 기회와 시각적 호사(豪奢)를 제공하는가 하면 영양학적 가치를 지닌 것에 더해 우리 조상의 지혜와 생활상, 정서가 투영된 음식이다. 한국인의 생활 풍습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김치는 음식 그 이상의 것, 즉 한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로 규정해도 이상할 게 없다.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따위를 고춧가루와 마늘, 파 등의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 장기 보존할 수 있도록 숙성시킨 한국식 발효식품의 대명사 김치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음식이다. 김치의 사전적 정의를 충실하게 따르면 배추로 담그면 배추김치, 무로 담그면 무김치, 무청이 달린 총각무로 담그면 총각김치다. 이 중 배추김치는 김치의 표본으로 이를 앞세운 요리도 여럿 있다. 김칫국과 김치찌개, 김치 국밥, 김치 콩나물국, 김치전, 김치찜, 김치볶음밥, 볶음김치, 김치만두가 그런 것들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낸다.
#김치의 확장성과 역사
놀라운 점은 사전적 정의를 훨씬 뛰어넘는 김치의 확장성이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담근 백김치, 네모나게 깍둑썬 무로 담근 깍두기, 통무를 소금에 절인 뒤 끓인 소금물을 식혀서 부어 담근 동치미까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무로 담근 열무김치, 고들빼기 뿌리로 담근 고들빼기김치,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열무 잎 또는 배추를 절여 국물이 넉넉하게 담근 물김치, 부추 잎을 데쳐 담근 부추김치, 갓의 줄기와 잎으로 담근 갓김치, 파로 담근 파김치, 오이 몸집을 서너 갈래로 가르고 속에 부추, 파, 마늘, 고춧가루, 생강 따위를 넣고 익힌 오이소박이김치, 심지어 갈치의 몸통을 먹기 좋게 토막 내 배추 포기 속에 고명처럼 넣고 담근 갈치김치 등 배추나 무의 영역을 벗어난 숱한 김치와 맞닥뜨리면 새삼 김치의 영역을 광범위하게 개척한 선조들의 음식문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별로 김치의 특성과 맛도 다 다르다.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하는 젓갈과 양념의 종류, 양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육수가 끓으면 김치를 넣는다. 김치와 밥을 함께 넣고 끓이면 김치 국밥이다.
김치의 역사는 유구하다. 우리나라 김치의 유래는 삼국시대 때 등장한 염장(鹽藏) 채소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이 먹던 김치에 매운맛이 장착되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에 고추가 유입된 조선 중기 때로 전해진다. 이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배추김치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의 원형은 19세기 중후반에 비로소 형성됐다.
김치에 함유된 식물성 유산균은 위액 속 산성 물질에 견디는 내성(耐性)이 동물성 유산균보다 두 배 이상 강하다. 김치가 위나 장 건강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보존기간이 긴 발효식품으로 다양한 파생 요리의 주체인 김치를 담그는 우리의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의 등재 대상에 음식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한 큰술, 청양고추 한 개를 썰어 넣는다. 액젓 한 작은술과 국간장 한 큰술을 추가하면 김칫국의 풍성한 감칠맛을 도모할 수 있다. 이때 콩나물을 넣고 끓이면 김치 콩나물국이 된다.
#간편하고 소박한 김칫국
오늘은 김칫국에 관한 이야기다. 김칫국은 김치를 넣고 끓인 국이다. 돼지고기나 통조림용 참치가 들어가는 김치찌개와 달리 오로지 김치만 있으면 누구라도 쉽게 요리할 수 있어 간편하고 소박한 음식이다. 요리 문턱이 한없이 개방적이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김치가 주재료라는 점에서 단순한 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김치가 그러하듯이 김칫국은 맵고 시고 짜고 감칠맛이 나는 김치 본연의 숙성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국물 요리다. 김칫국 한 그릇에 음식을 통한 섭생(攝生)과 식문화(食文化)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담겨 있는 것이다.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이 속풀이로 그만이라 애주가들이 좋아하는 국이기도 하다.
덜 삭은 김치로 끓여도 맛있고 신김치로 끓여도 맛있다. 덜 삭은 김치는 덜 삭은 김치대로 상큼한 맛이 나 입이 개운해지고, 신김치는 신김치대로 시큼한 맛이 나 중독성이 있다. 김칫국을 끓일 때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한 숟가락씩 넣으면 국물 맛이 진하고 깊어진다. 대파 한 대도 썰어 넣으면 김칫국의 향이 살아난다. 잘 끓인 김칫국 한 그릇이면 김치찌개도 부럽지 않다.
대파를 썰어 넣고 2분 후 불을 끈다.
#김칫국의 파생 버전
김칫국의 파생 버전으로 김치 콩나물국과 김치 국밥이 있다. 김칫국에 콩나물이 들어가면 김치 콩나물국, 김칫국에 밥을 넣고 끓이면 김치 국밥이다. 김치 콩나물국은 김칫국의 맛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콩나물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산과 사포닌 성분 덕분에 숙취 해소에 좋고 간을 보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고마운 국이다. 김치 국밥은 입맛이 없을 때 금방 끓여 먹을 수 있고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끼 식사로 거뜬해 간편식으로 이만한 게 없다.
#김칫국 관련 속담과 일화
김칫국에 관련된 조상들의 생활 속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속담도 있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상대방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다 된 일 인양 지레짐작으로 설레발을 치고 떠들어대는 태도를 비꼬는 속담이다. 이 속담에서 말하는 김칫국은 오늘의 주제인 김칫국이 아니라 동치미 국물이나 나박김치 국물을 일컫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일리가 있다.
과거에 떡은 명절이나 잔칫날, 제삿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고 떡을 먹다가 목이 메어 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 무로 담근 동치미 국물이나 나박김치 국물을 떠먹으면 떡도 잘 넘어가고 체하지도 않았다. 무에는 소화를 돕는 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들어 있어 무 국물을 마시면 소화가 잘된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소금에 절인 무는 발효과정에서 수분을 뱉어내는데 그때 아밀라아제도 국물로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김칫국의 정의를 두 개로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김치를 넣어 끓인 국이고 다른 하나가 김치의 국물이다.
잘 끓인 김칫국 한 그릇이면 김치찌개도 부럽지 않다.
동치미 국물이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 응급 처방으로 유행한 적도 있었다. 난방(暖房) 연료로 연탄을 때던 1970~1980년대에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으레 동치미 국물을 마셨다.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해독 기능이 있는 동치미가 연탄가스 중독에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주거 환경 시설이 현대화되기 이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그럴싸한 민간요법이었을 뿐,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치유책은 아니다.
‘김칫국 먹고 수염 쓴다.’라는 속담도 있다. 실속은 없이 겉으로만 잘난 채, 하는 태도나 하찮은 일을 하고서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우쭐대는 허장성세형 인간을 꼬집는 말이다. ‘냉수 먹고 이 쑤신다.’도 동일한 용례로 쓰이는 표현이다.
김칫국의 파생 버전인 김치 콩나물국
김칫국 요리법은 요리법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주 간단하고 쉽다.
1.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낸다.
2. 육수가 끓으면 김치를 넣는다.
3.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한 큰술, 청양고추 한 개를 썰어 넣는다. 액젓 한 작은술과 국간장 한 큰술을 추가하면 김칫국의 풍성한 감칠맛을 도모할 수 있다. 이때 콩나물을 넣고 끓이면 김치 콩나물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