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3. 축구 경기의 의외성과 헤딩슛
축구 3. 축구 경기의 의외성과 헤딩슛
#축구 경기의 가변성
축구 경기에서는 이변(異變)이 자주 일어난다. 공의 형태는 원형(圓形)이라 본질적으로 타격 지점을 표준화하기 힘든 속성이 있다. 더군다나 사물을 통제하는 효율성과 대응 능력이 손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발로 공을 차 원하는 경기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는 축구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반복 훈련을 통해 터득한 공을 차고 다루는 기술과 능력에 더해 재능이 필요한 까닭이다. 축구 경기에서 나타나는 거의 모든 동작이 발에서 시작해 발로 끝나는 특징은 경기 결과의 가변성을 예고한다.
객관적인 전력상 강팀이 그보다 못한 팀을 누를 가능성이 높지만, 결과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높은 볼 점유율로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고서도 비기는 사례는 축구 경기에서 드물지 않다. 이와 관련해 어렸을 때의 기억이 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던 1970년대의 이야기다.
1971년 9월 25일 동대문운동장. 3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과 말레이시아와의 72년 뮌헨 올림픽 축구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이 벌어졌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이날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면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돼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었다. 한국팀이 일방적으로 말레이시아를 몰아붙였으나 끝내 골문은 열리지 않았고 오히려 말레이시아 수비수 찬드란에게 기습적인 역습 결승 골을 내주면서 올림픽 티켓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객관적인 전력의 우위도, 홈그라운드의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여신이 한국을 외면한 이날 경기에 대한 국민적 상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70년대 말레이시아 축구는 지금과 달리 주요 길목에서 강팀을 곧잘 무너뜨리는 복병(伏兵)이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끈적끈적한 수비 위주의 역습에 능했고 수중전(水中戰)에 강했다. 뮌헨 올림픽 축구 본선에는 말레이시아와 버마(현 미얀마), 이란이 나갔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승부를 꼭 가려야 하는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전후반과 연장전을 치르고서도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가 속출한다. 이럴 때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 승부차기다. 승부차기의 결과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양 팀의 경기 전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승부차기에 유독 약한 팀이 있다. 승부차기의 저주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골대와 크로스바 징크스
스포츠 세계에서 이변이나 의외성은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축구에서 유독 예상 밖의 결과가 더 자주 발생하는 것은 발로 플레이를 펼치는 축구라는 종목의 고유한 특성과 관련이 깊다. 발은 외부 물체에 대한 반응 속도와 적응력, 숙련도에서 손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축구 경기의 의외성에는 불확실성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골키퍼와 1대 1로 맞닥뜨린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어이없이 날려버린다거나 발을 갖다 대기만 하면 골인 상황에서 허공으로 공을 차버린다거나 수비수가 걷어낸다고 낸 공이 자책골로 기록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 것이다.
축구의 의외성은 골대와 크로스바 징크스와도 관련이 있다. 축구 골대의 높이는 지면에서 크로스바 아랫부분까지의 거리로 2.44m, 골대 너비는 양쪽 기둥(포스트) 안쪽 간의 거리로 7.32m다. 골대의 기둥과 크로스바의 두께는 12cm 이내로 동일해야 한다. 슛한 공이 포스트나 크로스바에 맞고 튀어나오는 장면은 축구 경기에서 흔한데 이 순간, 두 팀의 희비가 엇갈린다.
불과 12cm 차이로 한 팀은 골이나 다름없는 절호의 득점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땅을 치고, 한 팀은 절체절명의 실점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한 경기에서 이런 장면이 아무리 많이 나오더라도 득점과 실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승패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점에서 골대와 크로스바 징크스는 축구 경기의 특징을 드러내는 의외성의 한 단면일 것이다.
#헤딩슛의 효율성
축구공을 다루는 도구는 축구 선수의 발과 머리, 가슴 등이다. 공과의 접촉 빈도를 따지자면 발이 압도적으로 높다. 발로 공을 몰고 패스하고 태클하고 킥을 하고 슈팅을 날린다. 축구는 발로 플레이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노출 빈도에서 발에 뒤지는 헤딩슛의 효율성은 생각보다 높아 많은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승리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마가 타격 도구인 헤딩슛은 발에 비해 의외성이 훨씬 적다. 정확도가 높아 영점 조준에 성공하면 골네트를 흔들 확률도 높다. 헤딩슛은 시도하는 선수에게는 득점할 가능성이 크고, 방어하는 골키퍼에게는 실점할 가능성이 크다.
헤딩은 머리 위로 날아오는 공을 걷어내고 우리 편에게 패스하거나 공중볼을 따낼 때 유용한 동작이다. 헤딩의 존재감이 빛날 때가 있다. 코너킥과 프리킥, 페널티 박스 안으로 길게 띄워 패스하는 크로스 상황에서다. 특히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은 공격팀에게는 득점의 기회가, 수비팀에게는 실점의 위기가 된다. 공중볼 장악 능력이 탁월한 장신(長身)의 공격수가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축구 경기에서 흔하다. 경기 막판의 총력전 상황에서 코너킥 기회가 생기면 최종 수비수나 심지어 골키퍼까지 공격에 동원되기도 한다.
헤딩슛은 상대 팀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읽거나 예측하기가 어렵다. 킥하기 직전 공격수의 예비 동작인 팔과 다리의 움직임과 디딤발의 위치가 노출되는 슈팅과 달리 헤딩슛은 머리의 힘으로만 작동되는 간결한 행위라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방향성을 추측할 수 없다. 헤딩슛은 또 골키퍼와 워낙 가까운 곳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찰나의 동작이라 머리에 제대로 맞히기만 하면 득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헤딩슛의 득점 효율성이 뛰어난 이유다. 옆머리나 뒷머리로 시도하는 백 헤딩슛도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곧잘 골망을 흔든다.
코너킥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어김없이 펼쳐지는 일이 있다. 페널티 박스 안에 몰려든 양 팀 선수들이 공중볼을 따내기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골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헤딩슛을 시도하려는 선수들과 그것을 방해하려는 선수들 간의 생존경쟁이 선명한 움직임으로 드러난 결과다.
어느 팀이나 코너킥에 대비해 평소 치밀하고 다양한 전술 훈련에 치중하는 것도 그래서다. 코너킥을 전담하는 선수는 미리 정해져 있다. 킥이 강하고 정확하면서 공의 궤적이 날카로운 선수들이다. 훈련을 통해 미리 약속된 플레이를 숙지한 공격수들이 상대 팀 수비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몸싸움에서 이길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문전을 향한 프리킥이나 크로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위험성이 뒤따르는 헤딩 동작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머리가 찢어지거나 얼굴을 다치는 일도 흔하다. 청소년 대표팀 소속으로 한국 축구의 유망주로 기대를 모은 이재호(1956~)란 선수가 있었다. 고교 축구 명문 안양공고 시절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날린 이재호는 고려대 3년에 재학 중이던 1977년 6월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대학 연맹전 경기 도중 당한 치명적인 부상으로 축구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건국대 문전에서 공중볼을 다투던 중 상대 수비수의 머리에 얼굴을 가격당하며 땅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치는 중상(重傷)을 입은 것이다. 혼수상태에 빠져 보름 만에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이재호는 그러나 언어 및 행동 장애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됐다. 차범근(1953~)의 뒤를 이을 초대형 스트라이커로 촉망받던 이재호의 불운한 삶은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안타까운 장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득점 생산성이 뛰어난 헤딩슛과 헤딩 동작에는 늘 위험성이 뒤따른다.
공격하는 팀에게 효과적인 공략법인 헤딩슛은 골키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