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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Feb 01. 2022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2)

은퇴준비 프로젝트 시작


우리 부부는 몇 년 전부터 퇴직을 생각해왔다. 

회사를 그만 둘 완벽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거창하게 퇴직이라기보단 당분간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이야기다. 20년 동안 앞만 보며 달려왔으니 잠시 쉬어도 되는 거 아닌가.

이 말을 들은 가족이며 지인들은 다 '너무 이른 나이'라고, '아직 애들이 대학교도 안 갔는데 무슨 퇴직이야?' 라며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유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지금은 '너무 이를 수도' 혹은 '적절한 타이밍' 일수도 있다. 


애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오전에 집 근처 산에 산책을 가보면 젊은 청년들과 많은 아저씨들이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트래킹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일을 안 하나? 지금 회사에 가 있어야 하는 시간 아냐?' 남자들이 이른 시간에 회사에 가지 않고 여유 있게 있는 모습이 낯선 걸 보니 나는 천상' 한국 아줌마'다.  그들이 회사 사장이어서 늦게 출근을 하는지, 혹은 재택근무 전에 운동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회사를 가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아줌마

'남자는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아줌마.

그랬던 내가 생각이 바뀌게 된 건 이곳에서 산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등바등 살아온 우리가 "Tranquilo(천천히, 여유 있게)'를 외치는 이들과 이곳에 살다 보니 먹고 살 문제만 해결된다면 일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살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제일 행복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먹고사는 게 해결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그 방법은 찾으면 될 터였다. 아니, 어쩌면 그 문제는 평생 걸려도 만족할 수 없을 테니 적정선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몇 년 전부터 남편은 해외업무가 힘든 모양이었다. 벌써 나라를 세 번이나 옮기고 태어나자마자 나온 둘째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외국에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쳤을 법 하긴 했다. 주말에만 보는 가족에게는 많이 참으며 얘기를 안 했겠지만 언젠가부터 은퇴에 관해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그러다 말겠거니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은퇴를 꿈꾸며 버티고 있는 중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 은퇴할 수 있으면 좋지. 누가 일을 계속하고 싶겠어? 할 수 없이 하는 거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나에게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얘기하며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 얘기했다. 우리는 그렇게 몇 달을 은퇴에 대해 얘기하며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세 살에 해외에 나와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첫째 아이와 중학생 둘째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따라갈 수 없을 거란 판단이 섰다.  일단 애들을 어디선가 졸업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해외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슨 돈으로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할까? 그렇게 휴양지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우리가 가본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태국-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장점-물가 쌈. 음식 맛있음. 여행할 곳이 무궁무진. 

단점-퇴직 후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국제학교비와 주거비가 비쌈. 

필리핀-시부모님이 은퇴 후 거주하고 계신 곳.

장점-영어권, 물가 쌈, 은퇴비자 프로그램 있음

단점-총기사고 많음.  

베트남-살아봤던 곳. 두 번째 가면 더 잘 살 수 있음.

장점-물가 쌈, 살아본 곳이라 정보 많음

단점-비자 문제 해결하기 어려움

미국-친언니가 살고 있는 곳

장점-영어권. 꿈의 나라(개인적으로 아직 꿈을 버리진 않았음)

단점-비자 해결이 어려움. 물가 비쌈

캐나다-지인이 살다와서 정보 있음

장점-영어권. 엄마가 공부를 하면 아이들 학비 공짜. 생활비 미국보다 쌈.

단점-밴쿠버를 제외하곤 겨울이 너무 길고 추움


이런 과정을 거쳐 많은 조사 끝에 우리는 퇴직 후 말레이시아로 가기로 결정했다.

말레이시아는 베트남에 살 때 여행으로 가본 적이 있었다. 

물가 싸고 치안 좋고 다국적 문화에 맛있는 음식까지.

게다가 은퇴이민 비자(MM2H)가 있는 나라이다. 기본적인 여건에 충족되면 일정 금액을 예치하고 10년 동안 살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일사천리로 알아보고 1년에 한 번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여름방학에 맞춰 서류를 준비하고 비자 전문 업체를 통해 접수를 시켰다. 우리에게 이 일들은 몇 년 후를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당장에 갈 일은 없어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렇게 2019년 말에 비자가 확정되어 비자수령을 위해서는 꼭 말레이시아를 방문해야 했기에 우리는 겨울방학 여행 삼아 사전답사차 그곳의 여러 지역을 다녀왔고 그다음 해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코로나가 끝나지 않고 있다. 비자를 받고 바로 옮겼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최악의 타이밍'이었을 것 같다. 새로운 나라에 갔는데 적응할 시간도 없이 코로나로 학교도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고 2년 가까이 집에서 보내야 했을 시간들. 아찔하다. 

운 좋게 최악의 타이밍을 흘려보내며 우리는 이제 다시 잠시 미뤄두었던 여유를 찾으려 한다. 

이제 길었던 주말 부부 생활 청산이다!!!! 아이들도 아빠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우리가 그 시간을 완벽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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