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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라야 남자 Jun 30. 2021

회식의 진정한 시작은 저녁 8시지~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군대보다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가 있다. 바로 신입사원 시절이다.

중도 탈락한 동기들 덕에 어부지리로 정규직이  나는 인턴기간에 근무했던 할인점본부파트에 재직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어느 회사이건 간에 온라인 매출이 제일 비중이 크지만 2010년도 초중반만 하더라도 아직 유통의 꽃은 할인점이었다. 회사 매출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만큼 팀 인원도 많고 자부심도 컸다. 당시 나를 채용해준 부장님이  핵심부서의 팀장이셨고 40 후반의 고참급이었다. 나름의 통찰력과 리더십으로 후배 차장, 과장님들도  따르며 존경받는 분이었다.


다만 이분의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술이었다. 팀장님은 술을 너무나도 사랑하셨다.  회식을  일주일마다  번씩 했다. 그것도 사전 고지도 없이 다들 자리에 앉아 한창 야근하고 있는데 저녁 8시쯤 되면 갑자기 ‘! 다들 책상 덮어라! 나가서 소주나 빨자!’ 이런 식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자리에 앉아 있던 10명가량의 팀원들은 정말 모두 책상을 바로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막내들은 바로 고깃집에 자리 있는지 전화를 걸어보고 뛰어가서 자리를 맡는다. 저녁 8시에 회식을 시작하면 도대체 집에는  시에 가라는 것인가? 게다가  술도  못했다. 장교로 재직하던 당시에도 소주 3 법칙을 제대할 때까지 고수하던 나였다. 다만 정규직이라는 목숨줄 앞에 살아남으려고  법칙과 타협하며 겨우   마시는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팀장님이었다. 팀장님은 나보다도 술이 약한  같았다. 많이 들어본 표현인 ‘술이 술을 마신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통제 없이 계속 술을 마시며 주변에 폐를 끼치는 유형을 말한다. 소주 한두  들이키면 제정신을  차려 주변을 삭막하게 만든다. 노총각 과장님한테는 ‘ 결혼을  해서 인생이 끝났다. 네가 무슨 희망이 있냐.’ 등의 막말을 하며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실적이  좋은 차장님에게는 ‘  일이 적성에  맞아!  이래문제야!’ 등의 막말을 한다. 과거 지방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에는  먹다가 엎드려뻗쳐나 오리걸음도 시키고 손찌검도 했다고 하니 이건 그나마 양반인 것이다.


1차가 10시쯤 마무리되면 다시 막내들은 재빠르게 2차 장소를 알아본다. 간단한 호프집부터 ‘7080’ 노래주점까지 인근을 뛰어다니며 팀장님을 모신다. 팀장님이 선곡한 난생처음 들어보는 노래에 춤을 춰야 하고 코러스를 넣으며 흥을 돋우어야 한다. 중간중간 분위기 싸해지는 그분의 독설도 당연히 안주로 같이 먹어야 한다. 그렇게 12시가 되면은 문이 닫힌다는 동요 노랫말처럼 팀장님을 대리운전기사님 편에 맡겨 보내드리고 서로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각자 집에 간다. 택시비는 물론 한 푼도 안 준다. 그 짓을 일주일에 두 번 매주마다 꼬박꼬박 했다. 회식 다음날,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뜬 채 출근을 하면 얄밉게도 팀장님 산하 차장, 과장님들은 오전 10시에 늘 밖으로 외근을 나가 저녁 5시에 돌아온다. 매우 뽀샤시해진 피부와 함께. 그렇게 충전된 체력으로 그들은 다시 밤에 술을 마신다.


어느 날은 2차를 한창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팀장님이 채워져 있는 맥주잔 10개 정도를 일렬로 늘여 놓으시더니 다시 그 사이사이에 반 정도 채운 소주잔을 올려놓으셨다. 그러더니 막내인 나를 부르시며 내 손에 안주인 방울토마토 세 개를 쥐어주셨다.


‘자, 앞으로 다섯 걸음 정도 나가라’

‘네?’

‘나가 얼른! 그리고 방울토마토! 그거 입에 물어. 다음은 알지?’

‘..........’


혹시 상상이 되실지 모르겠다. 맞다. 입에 문 방울토마토를 일렬로 줄 서 있는 소맥잔 도미노의 맨 앞에 있는 소주잔에 맞추라는 것이었다. 토마토 세 개는 세 번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이다. 팀원 10여 명이 숨죽이며 모두 주목하는 가운데 막내인 나는 비장한 각오로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었다. 거리는 약 2.5m, 발사각은 45도, 포의 출력은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 고개를 살짝 뒤로 뺐다가 앞으로 뻗으며 ‘퉤!’ 하고 내뱉는 순간! 기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내가 내뱉은 방울토마토는 마치 슬로 모드 영상처럼 천천히 날아가더니 맨 앞에 있는 소수 잔에 정확히 명중한 것이다. 그러고는 ‘또르르르르르’ 청명한 소리와 함께 소주잔이 맥주잔에 ‘풍덩~’ 빠지며 소맥잔 10여 개가 완벽히 완성되었다. 그다음은 뭐 난리가 아니었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고 2002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결승골 넣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받은 칭찬 중 이날 제일 많은 칭찬을 받았다.


이분과 거의 1 정도를 같은 팀에 있었다. 그러고서 다른 지원팀으로 발령이 나시며  지독한 회식과도 안녕이었다. 내가  회사를 나올 당시 팀장님께 인사를 갔을  정말 많이 섭섭해하셨다. 그리고 내가 나온 이후 얼마 있다가  분도 정리해고를 당하셨다. 공채로 입사해 이십 평생 영업 한길을 걸어오신 분이었는데 너무 안타깝고 회사란 뭘까 많은 회의가 드는 소식이었다. 20   회사에 충성하며 다녀도 이렇게 쳐내는 것을 보면 회사 자체는 그저 이해관계의 대상일 , 가족도  무엇도 아닌 걸까 싶다. 지겹고 지겨운 회식이었지만 함께 보낸 시간 덕이었는지 나름 정도 들고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회사라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인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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