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샘 Mar 12. 2023

에필로그

#37, 까미노데산티아고 정리

출발 전


한번쯤은 일상이라는 끈을 뚝 잘라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그 시기는 다르겠다. 나에게는 작년 겨울에 그런 마음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리고 올 여름 가위를 들어 그 끈을 잘라냈다. 잘라내면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이어져 있던 끈을 잘라냈으니, 원래 가려고 했던 끈을 따라가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멋진 끈을 이어 붙이겠다는 결심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끈을 다시 연결할 수도 있겠고, 다시는 연결이 안 될 수도 있겠고, 오히려 더 낡은 끈으로 다시 동여 매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은 그저 잘라내는 일, 그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연결된 끈에서 내려왔다.


산티아고길


일상이라는 끈에서 뛰어내리니 그동안 나와 연결되었던 흔적들도 하나 둘씩 달아났다. 길을 걷는 동안 난 그동안 내가 태어나 내가 '나'이기까지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는 걸 느꼈다. 나의 오늘을 만들어준 인연들의 기억도 하나 둘씩 저 멀리 사라져 갔지만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았다. 그래, 잠시 헤어지자.

과거의 나도, 떠나오기까지의 인연도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그림도 전혀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내게는 그저 하루치 길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새로운 친구들만 곁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눈 뜨면 걷고, 다리가 아프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물마시고, 피곤하면 잠을 잤다. 새벽을 걸으면 새벽 별에 감동하고 고원지대를 걸으면 광대한 들판을 둘러보려고 한 바퀴 돌았다. 코 고는 소리에 민감하지 않았고, 빈대에 물려도 많이 긁지 않았다. 어깨가 아프면 잠시 어깨를 돌리고, 다리가 아프면 좀 주물러주고, 너무나 지루하면 음악이라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저 길을 걸었다.


다녀와서


일상의 끈을 다시 연결했다. 연결된 부위가 그리 크게 흠이 나지 않았다. 그저 예전의 일상의 끈을 그대로 다시 가져왔다.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의 일상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산티아고는 언제고 들춰내고 싶은 기억으로 끈 속에 스며있다. 나는 안다. 스며진 그 색을.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나만의 팁


1. 나처럼 두 계절을 걷는 사람들의 경우 거기에 대비한 옷차림이 필요하다. 8월에는 한낮에 걷기가 지칠 정도로 땀이 많이 나지만 9월이 되는 순간 아침의 기온이 뚝 떨어진다. 긴 옷, 보온이 가능한 옷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 한 여름을 제외하고 가을에도 비가 가끔 온다. 1회용 비옷은 가능하면 삼가는 것이 좋겠다. 참 많이 불편했다. 머리와 배낭을 덮을 수 있는 판초우의가 있는 것이 여러모로 걷기에 좋다.


3. 가톨릭신자가 아니더라도 미사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볼 것을 제안한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어도 힘들게 걸었던 하루를 돌아보고 위로받는 참 좋은 시간들이다.


4. 침낭은 가능한 아주 가벼운 것으로 준비하고, 혹시 매트덮개를 준비할 수 있으면 준비해 가면 좋겠다. 생각보다 베드버그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5. 내게는 까미노와 관련된 작은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스마트폰으로 길을 검색하는 것보다 책을 꺼내 보는 것이 좀 더 유용했다. 생각보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 곳이 많고, 느리기도 하다. 물론 유심 칩을 사서 끼우면 자유롭게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겠다. 카페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것보다 맥주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6. 혼자 걷는 걸 추천한다. 물론 사정이 허락지 않거나 반드시 함께 가고 싶은 친구, 부부 혹은 연인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혼자 걸으라고 하고 싶다.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고, 좀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7. 스틱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 같다. 때로 나는 스틱을 양손에 쥐고 걷는 것이 더 불편할 때가 있었다. 무릎이 아프거나 반드시 스틱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출발해도 좋다. 그러다 너무 힘들면 산티아고 길에 들르게 되는 도시의 순례자용품점에서 하나 사면 될 듯하다.


8. 등산화는 반드시 길들인 것을 신고 갈 것을 권한다. 발을 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물집이 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등산화를 새로 마련해서 길들이지 않았거나, 땀이 많이 나는 등 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물집에는 스페인 약국에서 파는 컴피트가 특효다.


9. 걷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유난히 카페에서 음식을 시켜야만 가능하다고 문구를 붙인 곳이 아니면) 그냥 카페나 바에 들어가서 화장실만 이용해도 괜찮다. 나는 아주 급할 때 그렇게 이용했다.


10. 도네이션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가면 저녁이나 아침도 도네이션으로 제공하는 곳이 많다. 굳이 밖에 나가서 사먹을 필요 없이 숙소의 식사를 대접받고, 성의껏 기부하면 된다.


11. 배낭이 몸에 잘 맞는지 사전에 잘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 배낭의 무게를 허리끈이 좀 받쳐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어깨가 많이 아프다. 어깨 보호대를 만들어 어깨에 대고 다니는 서양여성들을 보았는데, 그렇게 어깨보호대를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산

항공료 : 1,125,500 (루프트한자)

숙소 : 369,850

식비 : 791,713 (거의 순례자 메뉴 사먹었음)

교통비 : 73,060 (파리 몽빠르나스에서 바욘가는 기차 비용 포함)

기타 : 316,935 (여행자보험포함)

총 2,677,058원 (환율 1,300원 적용)



2015년 12월, 산티아고 일기를 정리하며.





오래 전 쓴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부족하지만, 그 때의 그 느낌 그대로 살리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19화 대서양을 품는다는 것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