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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Mar 09. 2023

우리는 함께였다, 산티아고에서.

#33일 차, 이제 각자의 길로.

우리가 감격하는 것은, 
바라던 대로의 결과가 펼쳐진 것 때문만은 아니다.
순간순간 결과를 기다렸던 그 간절함 때문이다.


이동 : St. Irene --> Santiago





어젯밤 늦게 잠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는 걸 안다.


잔은 눈시울이 벌겋게 될 정도였다.

우리가 드디어 다 함께 산티아고에 도착하다니…….

이제, 하룻밤만 자면 소망했던 곳에 서 있을 수 있다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늦게까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역시 캐시가 가장 먼저 일어났고, 우리들을 한 명씩 깨웠다.

아침부터 어깨가 아프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며칠 전부터 우리는 좀 무리를 했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픈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리가 맘처럼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색 않고 끝까지 발을 조금씩 움직였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내게도 오른쪽 무릎 아래 근육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은 벌써 목적지에 닿은 것 같은데,

다리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잔이 전에 사두었던 붕대를 내게 주며, 감으라고 했다.

압박붕대로 감으니, 조금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마지막 날 걸음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원래 유리는 중간지점에서 하루 더 쉬고,

수요일 오전에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고 했었다.

화요일 오후보다는 수요일 오전에 도착해서 12시 대성당 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많은 순례자들이 그런 마음이 있다.

오전에 도착하고, 도착하자마자 그 감격스러움으로 미사를 드리고 싶은…….


그런데, 유리도 점점 마음이 변하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아무래도 우리와 함께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단다.

우린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속으로는 감격해하면서도

겉으로는 묵묵히, 늘 걷던 그런 덤덤한 걸음으로 도보를 지속했다.

점심을 먹고 오르막에 서니, 저 건너로 산티아고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너무 갑자기 목적지가 나타난 것 같은,

아직은 좀 더 멀리 있어도 될 것 같은,

그래서 좀 더 희망을 품고 싶은, 

그런 우리의 목적지가 

갑자기 눈앞에 성큼 나타났다.


하지만 저 앞에 산티아고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신기하게도 난 다리의 근육통을 잊었다.



언덕을 내려와 산티아고 시내에 들어서서도 우린 거의 5-6km를 더 걸은 것 같다.

시내를 걷는 중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들도,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대견해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Buen Camino"를 외쳤다.

그들은 아마도 산티아고에 들러 미사를 보고, 숙소를 찾아 걷는 이들일 것이다.


드디어,

대성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 그런데 아쉽게도 공사 중이었다.




성당 앞마당에 선 우리는 모두 함께 얼싸안았다.

드디어 끝났다는 것,

드디어 우리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는 것, 그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스틱도 던져버리고, 두 팔을 번쩍 들고, 서로를 힘껏 안아주었다.


사실, 산티아고는 생각보다 번잡스러웠고, 대성당은 공사 중이라 조금 어수선했다.


우리가 뭔가를 완성했을 때, 

때로,

그 결과가 기대만큼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감격하는 것은, 

바라던 대로의 결과가 펼쳐진 것 때문만은 아니다.

순간순간 결과를 기다렸던 그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산티아고 길도 그랬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 걷던 그 순간순간이 떠올라서 감격스러운 것이다.


그저 그동안 묵묵히 걸었던 것,

그저 목표를 두고 힘들어도 참고 걸었던 것,

그 마음 때문에 우리는 감동스러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맘껏 기뻐했으나,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우리가 해냈구나!’라는 감격도 잠시,

이제는 끝났구나.

이제 안 걸어도 되는구나.

이제 무거운 배낭을 벗어도 되는구나.

하는 그런 마음들이 갑자기 몰려들면서,

뭔가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기도 한데,

생각보다 그 짐을 내려놓는 것이 그렇게 기쁘지가 않았다...........


돌아보면,

우리가 걷던 그 순간이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나에게 산티아고의 감동은,

목적지에 도착해서라기보다는,

캐시와 잔 그리고 유리와 함께 대성당 앞에서 서로가 서로의 도착을 축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여서,

그것이 내겐 더 큰 의미였고,

그래서 감동스러웠다.




배낭을 맡기고,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야고보 성상의 뒷부분을 힘껏 안았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다.


야고보 무덤을 둘러보고, 성당을 둘러본 후,

오랫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캐시도 유리도 잔도…….

그렇게 우리들은 한참을 앉아있었다.


성당 앞마당에서 그저 기쁨과 감격을 온몸과 소리로 외쳤다면,

이곳 성당 안에서 우리들은 저 가슴 안쪽에 감격과 기쁨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산티아고 음악회 주간이고, 산티아고 성당에서 근처 대학생들이 연주하는 음악회가 있는 날이라 했다.


학생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성가를 들으니, 더 마음이 고요해졌다.

잔이 아무 말 없이 산티아고 기념 열쇠고리를 건네준다.

그의 마음이 전해져 고마웠다.


이제 우리들의 크레덴시알을 보여주고 완주 증명서를 받을 차례가 되었다.

크레덴시알 오피스에는 사람들이 꽤 긴 줄을 서고 있었다. 


거의 100미터는 되어 보였다. 

어느 자원봉사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그룹으로 걸었느냐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그룹을 위한 줄이 따로 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유리는 따로 줄을 서고 우리는 그룹을 위한 오피스에서 완주 증명서를 받았다. 


그룹이 함께 걷는 경우가 있긴 해도, 우리 같은 그룹은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걸었는지를 적는 란에 우리처럼 생장에서부터 걸은 사람들도 드물었다.


완주증을 받고 근처 바에 가서 맥주를 한잔씩 하며, 유리를 기다렸다.

내가 먼저 캐시와 잔 덕분에 이렇게 완주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캐시도 잔도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며,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얼마 전부터 마음으로 결심한 것이 있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우선 캐시와 잔에게 작은 선물을 사주고 싶다는.

잔에게는 티셔츠를 한 장 사주고 캐시에게는 작은 가방을 하나 사주었다.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

런.

데.


완주증을 받은 후, 우리는 조금 헤맸다.

산티아고는 관광도시였다. 

알베르게는 많았지만,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알베르게는 성당과 아주 먼 곳에 있었다. 


근처, 알베르게를 몇 군데 돌아다니다 안 되겠다 싶어, 인포메이션에서 전체 알베르게를 소개받아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 겨우 한 군데 예약을 하고, 한참을 걸어서야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유리와 함께 넷이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

우리들은 그저 산티아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로 내려놔도 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해방감이 몰려왔다.

이제는 정말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산티아고 시내에는 먹을 것도 많았고, 기념품점도 많았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곳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다 세리에를 만났다.

세리에도 알베르게를 찾다 포기하고 조그만 호텔에 겨우 방을 얻었다고 했다.

세리에와 유리와 산티아고에서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다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었다.

우리는 타파스와 와인으로, 산티아고에서의 만찬을 실컷 즐기고, 

이후 대성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우리의 마지막 도보를 마감했다.


이제 잔은 내일 아침이면 간다.

부디 건강하게 공부를 잘 마치길 바란다. 

더불어 좋은 음악교사가 되기를.

캐시도 산티아고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뮌헨의 옥토버 페스티벌에서 재미있게 보내길 바란다.

유리는 피니스테라까지 걷는다고 했지…….

함께 했던 이들에게 모두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해 본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난 참 복이 많은 여자다.

감사하다.

이제 내일 점심시간에 함께 미사를 보고 난 후,

각자 자신의 길을 걸을 것이다.


어쩌면 내일부터 나의 진짜 순례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2015년 9월 22일, 산티아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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