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스탄불 신시가지
누구에게든 이스티클랄 거리를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쇼핑이나 자유롭고 발랄한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교회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신시가지를 가기 위해 에미뇌뉘 역에 내렸다.
이 '에미뇌뉘'역은 앞으로 몇 달간은 안 잊어버릴 것 같다. 배 타는 곳까지, 술탄 아흐메드까지, 톱카프 궁전까지, 쉴레이만 모스크까지, 이집션 바자르까지, 고고학 박물관까지, 귈하네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는 곳, 심지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외울 수 있어 배를 타다가도 근처를 걷다가도 조금만 가면 화장실 갈 수 있어... 라며 안심하던 역, 트램역, 버스역, 선착장 역이다. '에미뇌뉘'역은 이스탄불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자 매우 번잡하고 차도 많이 막히는 곳이었다. 이 역 근처에는 이집션 바자르와 유명한 모스크가 있음은 물론 갈라타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갈라타 타리 밑에서 파는 고등어 케밥을 먹는 사람들,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신시가지로 가려고 배를 타려는 사람들, 아시아지구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마구 섞인 곳이었다. 이 사실은 다음날에야 알 수 있었다.
갈라타 다리가 보였다. 이 다리는 사람들과 트램이 함께 건너는 다리였다. 특이하게도 다리 아래쪽 공간에는 식당이 즐비하다. 아침을 잔뜩 먹었지만, 이곳에서 고등어 케밥 먹는 것이 여행에서 꼭 해야 할 (남들 모두 하는...) 이벤트이니 한번 먹어볼... 까? 하다가 호객 군에게 걸려들었다. 아니! 고등어 케밥을 디스카운트해준다나?
할 수 없이 고등어 케밥을 먹었다. 바게트 빵 안에 고등어 구이가 들어간 게 전부였으나, 에페스 맥주와 함께 먹으니 그 맛 일품이다.
어쩌면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아마도 식당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로 시선을 두기 전 바로 앞에서 낚싯줄이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이따금씩 작은 물고기가 잡혀 위로 올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도 이스탄불에서 고등어 케밥 먹어봤어'라는 자랑을 해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30%나 디스카운트를 해 주신 덕분에 케밥 25리라에 에페스 맥주 50리라를 들여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갈라타 다리는 건너는 내내 낚시꾼들을 구경하는 곳이다. 아니, 다리를 건너면서 그 앞에 펼쳐진 그 아름다운 풍경을, 그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갈라타 탑을 보지 않고 낚시꾼들만 보다니.... 이 글을 쓰다 보니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당시엔 그랬다. 다리 건너는 초입부터 끝날 때까지 낚시꾼들이 촘촘히 낚시를 하고 있었다. 생각 외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었나 보다.
'와, 저만큼이나 잡았어',
'와, 저기는 스티로폼 통에 물고기가 가득해',
'아니,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낚시를 해',
'아니, 저분은 차이 포트를 가져와 차이를 마시며 낚시를 해',
'아니, 저렇게 큰 물고기도 있어',
'이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아서 어떻게 처분하는 걸까? 먹을까? 고등어 케밥집에 팔까?'
낚시꾼들을 구경하는 것만도 재미나고 신나는 갈라타 다리 건너기였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고 나니 갈라타 탑은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큰 교차로가 나오는데 저 멀리 조그만 골목 오르막길로 사람들이 줄줄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계속된 오르막 골목과 그 옆에 가득한 예쁜 카페와 기념품점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계단을 오르니 작은 골목 사이로 거대한 탑의 일부분이 보인다. 그리고 골목길이 끝나자마자 탑은 우리 앞에 쓱 나왔다. 너무 높아서 탑의 전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쭈그리고 앉아도 다리 부분은 잘라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인 갈라타 탑은 6세기 전반 비잔틴 제국의 등대 탑이었다 한다. 이후 십자군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다가, 1348년 제노바인들에 의해 재건되었고, 도시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한다. 당시 탑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어, 성 십자가 탑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면서 거의 100년마다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기독교 전쟁 포로수용소로 이용되기도 했고, 천문대를 짓기도 했고, 1700년대는 화재 감시탑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수리되었고 이후에도 계속 보수공사를 진행해 오늘날의 탑의 모습은 1967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고층 건물 짓는 것이 우스운 요즘 세대가 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려 1,500년 전 이 등대 탑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등대였을 것이다. 세계 모든 배들은 이 등대를 보고 영원한 제국일 것만 같은 동로마에 도착했음을 가슴 벅차 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갈라타 탑은 이스탄불의 명물이다. 꼭 가봐야 할 곳이다.
갈라 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나 있다. 우리는 그중 한 골목길을 걷다 이스티클랄 거리를 찾아내기로 했다. 빨간 전차가 오가는 신시가지의 중심거리라 하니 가보고 싶었다. 한산한 골목길을 지나 이스티클랄 거리로 들어서니 갑자기 신세계에 들어선 듯 사람들이 가득하고 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하다. 마치 튀르키예 여행객들이 전부 다 이곳 이스티클랄 거리로 쏟아져 나온 듯했다.
빨간색 전차는 아주 작았다. 전차는 사람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고생을 해야 했다. 사람들이 전차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차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야 했다.
우리는 탁심광장까지 걷기로 하고 천천히 이스티클랄을 즐겼다. 오랜만에 바글바글한 거리. 오미크론이 염려될 정도였지만 마스크 단단히 쓰고,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신발가게에 들어가 신발 하나 사볼까 구경하기도 하고, 우리 집 2호는 옷 한 벌 사겠다고 불쑥 '자라'에 들어가기도 하고, 향긋하고 고소한 빵가게 앞에서는 참지 못하고 치즈와 올리브가 잔뜩 올려진 빵을 하나 사 먹기도 했다.
이 길에 성당이 있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어 길 옆에 성당이 눈에 띄자마자 '앗, 바로 여기다'하고 들어섰다. 이슬람 국가에서 온전한 성당 건축물을, 그것도 현재 신도들이 다니고 있는 성당을 방문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1724년 성 안토니오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이 교회는 오스만 제국 시절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과 교역하던 국가의 시민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 봉헌되었다고 한다. 곧, 교역 상대국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 기독교인들을 위해 설립되었던 것이다.
성당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감동을 일으킨 장면이 있다. 술탄과 신부님이 서로 악수하고 끌어안는 그림과 사진들, 그리고 그 둘의 화합을 상징하는 '평화의 기도문'이 큼지막하게 성당 정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설명문에는 술탄과 신부님 만남의 의미가 소개되었다. 마치 기적 같은 일이라고. 1219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이집트의 술탄을 만났는데, 800년 후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슬람 영토로 가서 이맘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만남에 따라 서로 평화를 약속하자고 한다.
이 성당은 1967년 교황이 튀르키예 땅에서 첫 전례를 드린 곳이기도 하고, 1986년 '평화를 위한 아시시의 기도'가 드려진 곳으로 무슬림과 유대인과 모든 기독교인을 위한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기도한 곳이라고 한다. 성당 앞의 신부님의 조각상은 교황 요한 23세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를 소집, 1963년 4월 11일 최초로 가톨릭 신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보낸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하신 분이라 한다.
(출처: 성 안토니오 교회, www.sentantuan.com)
처음으로 튀르키예 교회를 방문하신 교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동상인 것 같다.
교회는 190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고 하니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 유럽의 다른 성당과 달리 화려하지 않은 것이 이슬람 국가에서 천주교가 크게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신실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파란 하늘과 분홍빛 교회는 참 잘 어울리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성당 내부도 성상과 성화가 과하지 않았고 스테인드 글라스도 절제된 듯했다. 교회 앞마당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니 또 새삼스럽고 즐거운 느낌이다.
오늘 여정의 처음 계획은 갈라타 탑이었지만, 연구해보고 싶고 가슴에 담고 싶은 곳은 바로 이곳 성 안토니오 성당이다. 여행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가치를 담은 유적지를 찾아가거나 맛집을 찾아가거나 쇼핑을 하거나 전망이 좋은 곳을 찾아 나서곤 한다. 하. 지. 만.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아도, 그리 거창한 건물이 아니어도, 동네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종교시설이어도 그곳이 가장 애정 하는 여행지가 될 수 있다. 가슴에 먹먹함을 준다면....
누구에게든 이스티클랄 거리를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쇼핑이나 자유롭고 발랄한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교회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스티클랄 거리가 끝나는 곳, 어떤 이에게는 시작하는 곳에 넓은 광장이 펼쳐졌고 그곳이 신시가지의 중심, 탁심광장이다. 중앙에는 튀르키예의 독립전쟁과 공화국 탄생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리 과하게 크지 않았다. 탁심은 티르키예어로 '분배'를 뜻하는데, 이곳에 이스탄불 각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상수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 광장을 마지막으로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2022년 2월 6일, 이스탄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