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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사 May 21. 2021

<화려한 휴가>와 <택시 운전사>

민주화운동이 41주기를 맞았다




맨 몸의 청년을 공수대원이 곤봉으로 때리고 있다.

찰나를 목격한 사진 외에도 그 날의 증언은 수도 없이 존재한다. 


가장 가까이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초등학생 시절 518을 겪었다. 당시로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지하지 못하셨지만, 거리에 총 소리가 울리고 피 냄새가 낭자했던 것으로 그 날을 기억하고 계신다. 나는 단 한 번도 길거리에서 피 냄새를 맡아본 적 없다. 총 소리도 들어본 적 없다.


내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이 그 날에 빚지고 있음을 옛 전남도청 거리를 걸을 때마다 떠올린다.



2021년 5월 18일로 광주 민주화운동이 41주기를 맞았다. 광주 사람이지만 감회가 새롭다거나 하는 감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이어진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어디를 가도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게 광주 민주화 운동은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은 운동이었다.


80년 이후에 태어난 내게도 41년째 이어지고 있는 어떤 싸움.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제 빈약한 논리를 채우고 흡족해하는 부류가 살아 있기에 그 날의 싸움은 여전히 이어진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도청에 남았던 스물 여섯 시민군의 일기 中-






가까이는 '화려한 휴가'서부터 최근 '오월의 청춘'까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콘텐츠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다. 그 콘텐츠들은 국경을 넘어, 홍콩과 같이 민주화를 꿈꾸는 세계 각지에게도 전해져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현재에도 첨예한 역사 인식 논쟁이 벌어지는 만큼(대체 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다음의 영화들은 아쉬운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봐두면 좋을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주의







1. 화려한 휴가





2007년 개봉, 6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김지훈 감독의 영화.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가 주연을 맡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광주의 평범한 택시 기사인 민우(김상경)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동생인 진우(이준기)와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같은 성당의 간호사 신애(이요원)을 짝사랑하는 둥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광주에 진압군이 들어오며 그 평범한 일상은 박살나게 된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극적인 전개로 많은 호평을 받았으나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은 영화였다. 먼저, 배우들이 광주 사람인데도 표준어를 쓴다. 어째서 굳이 표준어 연기를 지시했는지 모르겠으나 등장 인물들이 전라도 토박이인 이상 주연 배우들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도록 하는 것이 옳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두번째로, 여성 인물의 활용이 부수적인 것에 그쳤다. 


영화 속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던 민우가 시민군으로 거듭나기까지 신애를 비롯한 여성들은 주역으로 나서지 않고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실제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여성들은 참여를 독려하고, 부상자를 나르고, 치료하고, 밥을 짓는 둥 총칼을 들고 덤비지 않았어도 각자의 영역에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이 밖에도 <화려한 휴가>는 휴머니즘 영화의 보편성을 따라가기 위해 퇴역 군인을 주축으로 한 시민군vs장군의 구도로 영화를 전개하였기에 인물과 서사가 납작해져 실제 사건에 대해 깊은 교훈을 주지는 못한다. 어째서 시민들은 '무장할 수 밖에 없었는가?' 실패한 항쟁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는 답변하지 못한다.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이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각성하고 열사가 되었다는 전개로는 풀 수 없는 아쉬움이다. 그러나, 위의 모든 맹점을 차치하고서라도 <화려한 휴가>가 가진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518을 암시한 영화는 있었어도 <화려한 휴가>처럼 소재로 삼은 영화는 없었다. <26년>과 <택시 운전사>가 개봉할 수 있었던 시발점은 <화려한 휴가>의 흥행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화려한 휴가>는 영화 속에서 군인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탄압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주는데 이는 사진으로 알려진 518의 모습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따라서 영화는 518을 '과거의 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흑백 사진 속 정지되었던 이미지가 현실로, '실제 있었던 일'로 기억되는 효과를 갖도록 하고 있다.






2. 택시 운전사





2017년 개봉, 1200만 관객을 동원했고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이 주연을 맡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던 만섭(송강호)은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1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제대로 된 사정도 알지 못하고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을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어떻게 검문을 뚫고 광주에 들어섰으나, 광주의 상황은 좋지 못하고, 피터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취재를 계속한다. 그를 보며 만섭은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는 딸이 걱정돼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스틸컷



그 날 광주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않다. 최루탄과 피 냄새, 혼비백산 도망치는 사람들, 총알 소리……. 누구라도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을 것이다. 


택시 운전사 만섭이 그러했듯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평범한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택시 운전사 황태술(유해진)도 머리에 뿔이 달렸거나 누군가를 죽일 음모를 꾸리고 있지 않다. 그저 불의에 항거할 뿐. 옳지 않은 일에 옳지 않다고 말을 할 뿐이다. 사람들은 순박하였으며, 외부인에게 선뜻 주먹밥을 나누어 줄 정도로 관심이 간절했다. 고립되지 않기를 바랐고 자신들의 죽음과 투쟁이 무용하지 않기를 원했다. 


만섭은 딸이 기다리는 서울로 가기 위해 전남 번호판을 달고 광주를 벗어난다. 그러나 코 앞의 도시에서도 광주의 실상은 알려지지 않았고 '폭도'들의 소행이란 군부의 말이 앵무새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딸을 위한 구두를 사가면서도 만섭은 고민한다. 눈을 감고 햇빛 속으로 돌아갈 것인가, 눈을 뜨고 어둠을 지켜볼 것인가. 그 기로에서 만섭은 눈물을 흘리며 차를 돌린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영화의 백미를 보자면 무엇보다도 이 장면


'푸른 눈의 목격자'로 일컫어지는 힌츠 페터와 택시 운전사 '만섭'과의 인연은 공항에서 끝이 난다. 어찌 보면 해피엔딩이다. 이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전면전으로 진행되고, 군부의 무자비한 학살 끝에 광주의 민중항쟁은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생략되어 훗날 무사히 살아남아 노인이 된 힌츠 페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씁쓸하면서도 상업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결말이란 생각도 들었다.


<택시 운전사>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에 대해 무등일보에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이 작성한 칼럼의 내용이 있어 이 글에서 짤막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래 링크에서 전문을 읽어도 좋겠다.


좋았던 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광주 공동체에 대해 묘사하였던 것, 도청 앞 집단 발포와 조준 사격 장면을 중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진상규명을 할 존재를 각인시켰던 것,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바깥으로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힌츠 페터와 주변인들을 보여줌으로써 언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것. 


그는 아쉬운 점도 세 가지로 꼽았다. 먼저 힌츠 페터가 20일 서울로 돌아 온 이후 23일 다시 광주로 와서 '해방 광주'를 촬영하였던 점을 생략하고 바로 독일로 간 것처럼 묘사하였고, 힌츠 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일부가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더불어 광주에서는 택시 운전사들이 자신의 차 200대를 모아 차량 시위를 벌였는데, 이 기념비적인 시위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영화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차량 시위가 생략된 점은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졌다.





3. 오월의 청춘



영화는 아니지만 KBS에서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라 소개해본다. 


80년의 광주를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드라마로,

이도현, 고민시 등이 주연을 맡았다. 총 12부작.


이 글을 작성 중인 5월 21일자로 6화가 방영되었다. 아직 한 편도 보지 않아서… 정주행 한 뒤에 분석글을 작성할 예정.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드라마 주연 배우들을 본 게 하도 오랜만이라 머쓱했다.


분석글이 기다려진다면... 하트 눌러주기

꼭 눌러줘야되






4. 끝




끝으로, 故 김대중의 일기로 알려진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전공 수업 시간에 전두환이 '탄압할 곳'으로 광주를 고른 이유 중 하나가 '김대중의 지지 기반이었기 때문'이라 배웠다. 전두환 정권은 9월 17일 북한군의 사주를 받아 내란을 일으킨 혐의로 김대중을 잡아들이고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김대중은 살아남았고, 대통령이 되었고, 아직까지 유일하게, 또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한국인으로 남아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나와 故 김대중 대통령은 고향을 잠시 공유했다는 점 외엔 조금의 연결지점도 없다. 

그러나 그가 나와 같은 지역에서, 정확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차별 받는 지역에서 태어나 하나의 업적을 이룬 인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가슴 깊은 감동을 느낀다.






인생은 생각할 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7일, 故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







작가 '한강'이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광주의 사진들을 보고 내면이 부서졌던 것처럼, 초등학생의 나도 망월동을 방문하고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안전한 세계가 붕괴되고 날 것의 내가 남아 태극기로 둘러싸인 시신을 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오로지 피가 있어야만 민주주의가 생동하는 것이냐고, 스스로도 답 할 수 없는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 질문은 사라지지 않고 상흔으로 남아 나를 사학과에 진학하도록 만들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방구석 1열에서 방영했던 <택시운전사> 편을 다시 보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장면인데도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딸이 광주에서 자라서 광주를 보는 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그 눈빛에는 슬픔과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느끼고 배웠다. 역사란 어머니에서 딸로,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달된다고.


5월이 지나간다. 


4월에는 제주 4·3 항쟁이, 6월에는 6월 민주항쟁이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우리가 남기고 전달해야 할 상처가 봄날에 머물러 있다. 

40년만에 스스로 공수부대원이었음을 고백한 남자가 유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빌었다. 유족은 이제 동생을 보낼 수 있겠다며, 아픔을 잊어버리고 살자고 그를 용서해주었다.


그 마음에 어떤 말을 얹을 수 있을까. 그저 기억하기를, 애도하기를, 지켜보기를.

그 어떤 일도 잊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참고 문헌


다음 영화 <화려한 휴가>

다음 영화 <택시운전사>

여성의 눈으로 본 영화 '화려한 휴가' 여성신문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212

자치칼럼-'택시운전사', 세 가지 감동 세 가지 아쉬움

http://www.honam.co.kr/detail/etc/519983?viewmode=pc

김대중평화센터(사진)

http://www.kdjpeace.com/home/bbs/board.php?bo_table=d04&wr_id=34&sca=&sfl=wr_subject&stx=%B8%C1%BF%F9%B5%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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