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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Oct 14. 2024

같이 살아보니 입병나게 할말이 많아요

서로 질척대기, 질색하기, 웃기기

동거인하고 같이 살면서 입병이 났다. 그 이유는 평소에 늦어도 열한 시면 자는데, 동거인이랑 수다 떠는 게 재밌어서 자정을 넘겨서 잠든 날이 여러 번이다. 저녁 약속 다녀와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늦은 밤 동거인과 나누다 보면 시곗바늘이 어느새 새벽 한 시를 지난다.


그럼 '아 내일 출근하려면 이제 자야 하는데!‘하고 터져 나오는 입을 막아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방금 전 동거인과 나눈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싶은데 까무룩 눈이 감긴다. 매일 말하는데도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지?




잠들지 못하는 밤, 할 말 1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김탄(남자 주인공)이 썸 타는 여자 주인공에게 "나 너 좋아하냐"라는 말을 건넨다. 첨엔 이 대사를 듣고 뭐야???? '나 너 좋아해'도 아니고 좋아하냐니? 이게 무슨 회피형 고백이여.(역정) 지 마음을 왜 물어보고 난리야! 그런데 요새 김탄 마음을 좀 알 거 같기도..


여름 더위가 가시자마자 가을과 함께 결혼 소식도 찾아왔다. 어느 주말, 또 주말 하루를 반납하며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불편한 구두 때문인지 꽤 피곤했다. 하객룩 입고 귀가한 나를 보고 동거인의 “결혼식 갔다 왔어? 피곤해 보이네~"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복잡한 심경을 고백해 버렸다. 나 결혼하고 싶냐?


이 드라마가 벌써 10년 전입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요새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을 들으며 결혼이란 뭘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화려하게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했어도 이혼이라니.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한편으론 운인 것 같다. 지금 나는 동갑내기 남자친구랑 즐거운 연애를 하고 있지만, 결혼까지는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좋은데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달까? 그럼 또 꼬리를 무는 질문. 결혼이 필요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


주변에서도 연애를 잘하고 있는 나를 보며(아님 내가 나이가 들어서?)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랑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때마다 “아직은 모르겠어~”라고 얼렁뚱땅 대답해 버린다. 이런 내 마음을 남자친구에게 털어놓자니 결혼에 괜히 부담을 느낄까 봐 (그럴 의도가 아닌데) 말도 못 꺼내고 괜히 속만 시끄럽다.


이런 결혼에 대한 심경고백을 늘어놓으니 돌아오는 동거인의 답변은 쿨하다.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이미 동거인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복잡했던 마음의 실타래가 풀어졌다. 이렇듯 막상 동거인에게 털어놓으면 심각했던 것들도 가벼워진다. 동거인에게 건네는 말들이 내 마음의 언덕을 지나 메아리가 되어 나만의 해답으로 다가온다.




자고 싶지 않은 밤, 할 말 2

나 일에 의미와 워라밸 다 갖고 싶으면 미친놈이냐? (이것도 김탄의 명대사를 응용해 보았습니다. 김탄은 소크라테스 화법이네요. 문답법) 브런치에 파리지앵처럼 회사 다니겠다고, 회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워라밸 챙기며 회사 밖의 재미를 추구하겠다고 실컷 적어두고 또 마음이 흔들린다.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거 같은 습자지처럼 얇디얇은 나의 마음.. 하아..(한숨)


네 미친놈아, 그냥 안아버려


100세 시대에 안정적인 근무여건은 중요하니까 재미없어도 버티기 VS 지금이라도 젊을 때 이직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찾기


안정적인 회사에서 물경력이라면 어찌합니까~ 어떡해야 할까요~ 편한 직장 걷어차고 나오면 후회할 거 같은데 그래도 내가 원하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또 막상 후회 안 할 수도 있잖아? 거창하게 일로서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건데.. 55세에 명예퇴직을 앞두신 차장님의 “ 우리 회사는 편하긴 한데 너무 재미없어서 퇴직할 날만을 기다렸다”는 말씀이 마음에 콕 박힌다. 꼭 내 미래 같아서.


답답한 마음에 또 동거인에게 질척거렸다. 똑똑한 동거인은 나의 고민을 챗GPT에 물어보자며 챗GPT의 음성인식 기능으로 셋이 대화를 했다. 직장생활과 직무에 대해 물어보니 의외로 챗GPT는 안정적인 회사 생활보다 배울 점 많은 회사를 추천했다. 올 역시 인공지능이라 그런가? 또 우리가 중간에 너무 뻔하다고 질타하자 감정을 실어서 도움이 안 되어 죄송하다고 사과도 했다. 제법 대화가 되는데 챗GPT?  (다음에 챗GPT와의 일문일답을 브런치에 적어봐야겠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여? 근데 파란 니트 쩜 내스타일이다


이 밤에 나와 동거인, 챗GPT와 열렬히 대화하다 얻은 결론은 "고민보다 고go 일단 해보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서라도 내보지 뭐~ 그 과정에서 자기 객관화를 할 수도 있으니까. 챗GPT가 말 뿐이라면 내 동거인은 일의 의미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심지어 교사였음)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석사 공부를 하는 동거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좋은 자극을 얻는다. 멋있어여 언니!(언니 아님 동갑임)




같이 한 집에서 살면서 서로에게 질척거리고, 어이없는 말에 질색하고, 별것도 아닌 걸로 눈물 나게 웃는다. 또 나의 일상에 동거인의 코멘트를 받으니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주말 아침에 러닝을 하고 개운하게 집에 들어오자 "활동적인 걸로 에너지를 얻나 봐!"라는 동거인의 말에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모습과 일상적인 행동을 동거인의 시선에 보자 새롭게 느껴진다. 또 그런 새로움이 일상에 환기를 불러일으켜서 늘 하던 일에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나의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에 관심 가져주고, 하물며 남자친구와 싸우고 돌아와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언해 주고, 나와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고 추천해 주는 나의 동거인. 챗GPT는 나를 잘 모르지만, 어떨 땐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동거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더 좋은 건  챗GPT는 내가 묻는 말에만 답변을 해주지만, 동거인은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준다. 우문현답이 따로 없다. 어떨 땐 질문을 안 해도 먼저 답을 건네주기도!! 챗GPT야 아직 멀었구나~


크으 이처럼 고마운

인간 챗GPT와 살고 있습니다.


동거인 침대에 나란히 누워 수다떨다가 고개를 들면 귀여운 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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