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과 주말을 보내는 일상
친구랑 둘이 동거하면서 비슷한듯 달라진 나의 평일과 주말 일상 모습을 적어 보려고 한다. 혹시 친구나 연인과 동거를 고민한다면 이 글을 읽고 ‘우리가 같이 살면 이런 모습이려나?’ 하는 참고가 되면 좋겠다.
결혼 생활이 '함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동거생활은 결혼보다 가벼운 '때때로 함께'이다. 결혼한 부부가 평일 저녁을 같이 먹고 주말 중에 하루는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동거인과 나는 서로 시간이 맞을 때 함께한다. 우리는 조건부 함께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서로의 시간이 잘 맞기가 어렵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맞추려 하지 않고 어쩌다 맞으면 함께하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이렇다 보니 서로 시간이 맞아서 집에서 함께 보내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평일의 동거 생활
내가 출근할 때는 동거인이 자고 있어서 조용히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서로 밤귀가 어두워서 생활 패턴이 달라도 지장이 없다) 혼자 살 땐 씻고 머리 말리고 출근하기 바빴는데 친구랑 같이 산 이후로는 5분 정도 먼저 일어나 뒷정리에도 신경을 쓴다. 머리를 말리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돌돌이로 치우는 정도. 가끔 늦잠 자서 아침에 정신없이 출근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깨끗하다는 화장실 표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퇴근해서는 저녁을 챙겨 먹고 운동 갈 준비를 한다. 요리를 잘하는 동거인이 만들어 놓은 국과 찌개를 데어 먹기도 한다. 보통은 유튜브 보며 혼자 밥을 먹는데 간혹 밥 먹는 중간에 동거인이 귀가할 때도 있다. 운동 가기 전에 여유가 있으면 설거지를 마치고, 시간이 없으면 설거지통 한쪽에 쌓아두고 “운동 다녀와서 설거지할게~"라는 말을 남기며 나간다. 내가 운동을 가는 사이 동거인은 뚝딱뚝딱 새로운 요리를 해서 저녁을 챙겨 먹는다.
자기 전에 잠옷 차림으로 동거인과 짧은 수다로 시작했다가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거실에서 노트북 하는 동거인의 맞은편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고, 동거인 방에 침입해서 침대에 편히 누워 수다를 떨기도 한다.(집에서 노는 최대 장점). 수다 떠는 중간에 동거인한테 전화가 걸려오면 (보통 남자친구) 후다닥 내 방으로 달려간다. 그럼 나는 누워서 핸드폰 좀 하다가 열한 시 반쯤 잠에 든다. 내가 잠든 시간에 동거인은 한창 깨어 있다가 새벽쯤 자러 간다. 영락없이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동거생활이다.
주말의 동거 생활
아침 먹는 게 습관이라 주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달그락 거리며 아침을 차려 먹는다. 아침을 먹고 있으면 동거인이 느지막이 일어난다.(동거인은 아침을 안 먹는다) 전날에 이어 가벼운 수다를 떨며 서로의 주말 계획에 대해 공유하고 각자 방에 들어가서 쉰다. 그러다 약속 시간이 더 빠른 사람이 먼저 집을 나선다. 주말에도 약속이 많은 편이라 토요일, 일요일 이틀 내내 집에 있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약속이 없는 주말에도 혼자 카페 가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해서 거의 집에 붙어있지를 않는다. 알고 보니 나 하숙범인가?(급 거침없이 하이킥 생각남)
우리의 동거생활의 특이점이 온 것은 주말에 있을 서로의 가족 행사날이다. 결혼하면 생각보다 챙겨야 할 양가의 가족 행사가 많아서 명절이 아니어도 주말에 가족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의 가족 생일 등 가족행사를 알게 되어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할 뿐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 담백한 사이다.
최근에는 주말에 한가롭게 뒹굴거리며 자다가도 케이크가 생긴 경험을 했다.(누워서 떡먹기 급!) 동거인이 남동생 생일이라 가족모임에 다녀왔는데 한두 조각만 먹고 남긴 케이크를 싸 온 것이다. 안 그래도 괜히 달달한 게 당겼는데 맛있는 케이크가 생기자 기분이 좋았다. 집 냉장고에 케이크를 두고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먹을 수 있다니! 혀와 마음이 동시에 달달해진다. 그저 “오 남동생 생일이구나!”라며 축하말을 전하고 케이크 먹는 기쁨만 누리면 되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우리 부모님이 서울에 볼일 보러 올라오신 김에 제철 고구마 1박스를 전달해 주겠다며 잠시 집에 들르신 일이 있다. 마침 그 시간에 동거인도 집에 있었어서 갑작스럽게 우리 부모님과 동거인이 처음 만나는 자리가 성사되었다. 집에 있던 동거인은 싹싹하게 우리 부모님을 환대해 주고, 부모님은 달달한 고구마로 본인의 딸과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대신하셨다.
동거인의 배웅을 뒤로하고 부모님과 나, 셋이서 밥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도 온통 동거인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찼다. 동거인이 호박고구마를 좋아하는지, 밤고구마를 좋아하는지, 동거인이 맛있게 먹는 반찬은 무엇인지 등등.. 딸과 함께 사는 동거인에게 뭐라도 해주시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신가 보다. 부모님의 내리사랑은 나는 물론 나의 동거인에게 까지 흐른다. (엄마가 싸주는 반찬의 양이 배로 늘었다!)
이렇게 서로의 가족 일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부모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기쁘게 받으면 (보통 받아먹으면) 되는 사이라니!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은 그저 우리끼리 재밌게 사는 모습으로 보답하면 될 뿐이다. 역시 난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씨 깊은 효년~~ 부담과 책임은 없이 온전히 주시는 것에 감사함만 누릴 수 있는 가족 관계가 결혼과 동거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동거인과 같이 살면서 나는 조금 더 주변 정리를 잘하게 되었고, 서로의 부스스한 자연인 모습에 익숙해졌다. 또 냉장고에서 동거인이 넣어둔 음식을 데워먹으며 나의 식탁이 더욱 풍성해졌다. 괜히 지치는 날에 시무룩하게 누워 있다가도 동거인이 건네는 다정한 손길에 무기력함을 툴툴 털고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손만 뻗으면 닿을 공간에 있다니! 이렇게 서로를 살피고 끄집어 내주는 관계로서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는 중이다.
즐겁고 배부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