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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3시간전

평화주의자가 아니고 갈등 회피형 아님?

내 동거인은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래

나와 동거인은 서로 불편하거나 서운한 점이 생기면 묵혀서 묵은지로 만들지 않고 바로바로 털어놓는다. 아삭한 겉절이의 상태로 상대에게 서운한 점이나 바라는 점을 산뜻하게 말한다. 그럼 상대방은 잠시 겉절이 고춧가루의 매운맛에 얼얼할 수도 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미안해"라는 말을 건넨다. 그러면 싫은 점을 말한 사람도,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도 풀렸다는 듯 짐짓 서로 어색하게 군다. 그런 모습이 웃겨서 이내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그런 뒤엔 또 일상적으로 수다를 떨고, 밥을 먹고, 굿나잇~ 인사를 한다. 우리의 갈등은 소금에 절여질 필요가 없다. 거의 생채로 소화한다. (요새 김장철이라서 갑자기 배추와 김장으로 비유를 해보았어요)


미안한데 이해해달라는 나.. 정말 싸이코가 맞았군


나와 동거인의 갈등 해결방식은 비슷하여 같이 살면서도 갈등이 쌓이지 않는다. 사소한 것이어도 말하면서 털어내고, 실수에 대해 앞으로는 안 하려고 주의를 한다. 이렇듯 우리의 '갈등이 있었는데 없습니다~' 상태는 우리가 같은 여자라서 가능한 걸까? 아니면 성향이 잘 맞아서? 아니면 진짜 내 동거인이 남편이 아니고 내편이어서? 농담이고, 남편이 아닌 단지 동거인이어서? 아니면 내가 만났던 구남친들이 그냥 나랑 안 맞았던 건가????


그런데 내 친구들의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도 내 연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가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풀어보면(원래 이런 이야기는 다 친구의 이야기다) 보통 비슷하다.


여자친구의 잘못 혹은 불편한 상황으로 남자친구의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눈치를 살피며  “기분 안 좋아?"라고 묻는다. 남자친구는 ”아니야~" 하고 회피한다. 이때 남자친구의 마음은 여자친구에게 화낼 일은 아니지만 상황이 불편하고 기분이 잘 안 풀린다. 그러니 짜증 난 티는 못 감춘다.


괜찮다고 하는데 왜 대화가 안 통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지


남자친구는 아니라고 했지만 행동이 평소와 달라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에게 또 말을 건넨다.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그렇게 되묻고 남자친구는 또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더 말은 안 함~ 여자친구도 급 화가 난다. (폭발한다)


"아니 왜 그러는데!! 그럼 티를 내질 말던가!!"


여자친구 마음은 남자친구 마음 풀어보려고 괜찮냐고 계속 묻는 건데, 남자친구가 똑바로 대답도 안 하고, 먼저 대화도 안 하니까 풀어주려다가 중간에 빡치는 거다.



반대로 남자친구 마음은 화를 내긴 좀 그렇고 괜히 말을 꺼냈다가 여자친구랑 싸울까 봐 걱정된다. 그래서 본인의 마음이 덤덤해지기를 노력하는 중이다. 그치만 본인도 짜증이 나는 티를 숨기는 건 못한다. 그냥 본인을 두면 되는데 왜 여자친구는 괜찮다고 해도 자꾸 또 괜찮냐고 물어보는 거지?


이런 남자친구들의 행동은 그들이 회피형이라서? 아니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는 이타주의자? 남자친구에게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주면 되는데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는 여자친구의 행동이 문제인가?


궁금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남자친구에게 그냥 시간을 주고 남자친구가 풀려서 서로 아무렇지 않아 지면, 그럼 이제 갈등이 없어지나? 아니면 어딘가에 쌓이는 건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면 그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는 건가? 나는 꼭 넘어가도 시간 지나서 그때 기분 나빴었냐고 묻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이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순수하게 궁금함.


말을 해보라고~~~


아직 나는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모르겠다요~ 사소한 것 하나하나, 불편한 것에 대해서 서로 지적하고 말하면 감정만 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 걸 알려줘야 앞으로는 조심할 수 있지 않은가. 또 싸우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알 수도 있는 기회이고. 왜 말을 하지 않아서 상대방을 눈치 보게 불편하게 하냐 이 말이야. (급분노, 브런치를 쓰면서 이렇게 감정적인 적은 처음입니다)


예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 남자는 동굴에 들어가니까 여자들이 그 시간에 남자를 재촉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암만 생각해도 그 책은 여자들에게 하는 가스라이팅인 것 같다. 나의 성격은 동굴에 불을 질러서 남자를 나오게 한 뒤에 대화를 하고 싶다.


말하면 풀릴 건데 왜 동굴에 들어가고 난리야.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실은 나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동굴 밖에서 기다리면서 여자들은 보통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동굴에 처박혀있고, 밖에서 불안할 바에는 서로 마주 보고 성숙한 지성인의 자세로 대화를 하면 더 좋지 않을까. (물론 내 생각)


참내, 이걸 그렇게 연애 비법서처럼 열심히 읽었다.


그냥 금성에서 온 여자 둘이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데~ 동거인을 더 꼬셔봐?


갈등해결 방식에서 오는 차이는 나와 주변 친구들의 경우에만 한정된 것인지, 일반화의 오류인지 궁금하다. 분명 어딘가엔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서로 대화로 잘 풀어내는 남자들도 있겠지? (있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세상에 정답은 없다. 갈등 해결 방식에서 둘 다 동굴에 들어가는 커플도 있을 것이다(있나? 사실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중에도 더회피형이 동굴에 들어가고 덜 회피형이 동굴 앞에서 문을 두드리다 부숴버리겠지).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아니고, 회피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잘 모르겠다~


그냥 서로 툭 털어놓고 말하고, 필요하면 잘 싸우고, 서로를 이해하며 잘 풀고 재미있게 지내면 될 거 같은데.. 그게 어려운 건가?  화성에서 온 남자들 중에 대화로 갈등을 잘 해소하는 사람 있긴 한가?



이번 브런치 글은 처음으로 물음으로 마칩니다.

정말 저는 모르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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