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기회 Nov 15. 2024

매우 예민한 사람(HSP)과 살아보니 느낀 점

예민한 사람은 이렇게나 섬세하구나.

나의 동거인은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동거인의 성향을 물어봐서 예민한 편이라고 말하면 다들 걱정을 한다.


“예민한 사람이랑 사는 거 괜찮아?"


그런데 살아보니 정말 정말 괜찮다. 아니 좋다. 아니 오히려 둔감한 나와 살아줘서 고마워요 동거인!


우리 사회에서 예민하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느낌이다. 예민한 사람은 까탈스러워서 친해지기 어렵고, 같이 있으면 금방 피곤할 거 같다.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나의 예민함에 대해서도 자기 검열하게 된다. '아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라고 반문하며 나의 지난 행동을 되짚어 보고 후회하기도 한다. 이렇듯 예민함은 덜어낼수록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민한 동거인과 살아보니 예민함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동거인은 감각에 예민해서 상대방의(나의) 기분이나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집의 분위기와 환경을 정돈되게 유지한다. 같이 살면서 내가 놓치는 것들도 동거인은 섬세하게 신경을 쓴다. 아무래도 집안일에서도 동거인의 손길이 닿는 경우가 더 많다. 적고 보니 둔감하고 털털한 편인 나와 살아서 동거인이 힘들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청소요정은 내 눈에 안보이는 것도 찾아서 청소를 한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라는 책을 보며 자연스럽게 동거인이 떠오른 건 필연이다. 이 책에서는 진짜 예민한 사람들을 뜻하는 HSP(High Sensitive Person)라는 단어가 나온다. HSP의 특징은 타인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세심히 배려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가장 공감한 부분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동거인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나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수시로 Sorry~를 말한다. 절대 Sorry의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예를 들어 집에 동거인이 사둔 아보카도가 있으면 나는 별생각 없이 맛있게 먹는다.(아싸 아보카도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아보카도를 사두었으면 동거인은 꼭 나에게 물어본다. (나 아보카도 써도 돼?) 그럼 나는 집에 있는 건 뭐든 마음대로 쓰라고 한다. (당연하지! 물어보지 말고 걍 다 써!!)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꼭 물어본다.


그냥 먹으라고 해도 꼭 물어보는 동거인


문득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나오는 성공한 아이가 꼭 나의 동거인이었을 거 같다. (집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어린 시절 엄마가 “먹지 말고 기다리면 하나 더 줄게~"라고 말하면 동거인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을 것 같다. 반대로 나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는 엄마가 안 보이면 금세 홀라당 먹어버리고 (헤헤) 엄마한테 또 달라고 했을 것이다.


동거인의 섬세한, 갈등을 싫어하는,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은 카톡에서도 느껴진다. 동거인은 나에게 뭘 물어볼 때 'pure curiosity'라고 붙인다. 'pure curiosity'를 붙여서 하는 질문은 막상 별 거 없다. 그냥 물어봐도 되는데? 아마 자기의 질문이 무례할까 봐, 괜한 오해가 생길까 봐 질문 하나에도 섬세하게 신경을 쓰나 보다. 궁금한 건 그냥 물어보는 나와 참 다르다.


그냥 물어봐도 되는데ㅋㅋㅋㅋ 정말 기여움...
just asking~ 정말 웃김


나와 다른 사람하고 사는 일, 나보다 예민한 사람이랑 사는 일은 참 재밌다. 또 섬세한 동거인과 사는 덕분에 나는 혼자 살 때보다 훨씬 윤택하고 정돈된 삶을 살고 있다. 예민한 동거인의 시선에 내가 있어서, 그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도 예민력을 높여서 동거인이 집에서 거슬리는 거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HSP들이여~~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나의 피곤까지 챙겨주는 동거인 이즈 러브



이전 14화 우리 동거의 결별 사유는 아마 결혼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