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점에서 결혼운이 들어 왔다는 동거인
동갑내기 친구랑 동거를 하기 전에 서로 약속한 것이 있다. 우리의 동거는 부동산 계약과 동일하게 최소한 2년을 유지할 것. 만약에 2년의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둘 중 한 명이 신변의 변화로 집을 나가야 한다면 나가는 사람이 다음 세입자를 구할 부동산 복비를 지불할 것.
우리는 동거생활에 아주 만족하며 살고 있다. 수시로 감탄과 감동을 잘 받는 나는 매일 이런 말을 동거인에게 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매번 이렇게 느끼는 걸.
"네로야(동거인 애칭) 너랑 사니까 너무 좋아! 내 삶이 업그레이드 된 거 같아!"
"솔직히 이렇게 둘이 평생 살아도 될 거 같지 않아?"
"나 너랑 살면서 너무 눈이 높아졌어~ 이렇게 요리도, 정리정돈도 잘하는 동거인이 어딨니"
나랑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는 고백을 내뱉지만,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우리의 이런 동거생활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길어도 둘이 같이 사는 기간은 2~3년 정도라는 걸. 그런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대학원생 마지막 학기인 동거인이 자꾸 마음을 철렁하게 하는 소리를 한다.
"나 졸업하고 세종시에서 일하게 되면 어쩌지?"
(난 당황했지만) "음 주말에 오면 되지~"
"뭐야? 이건 주말부부도 아니고 주말 동거인이야?"
다행히 세종시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옵션은 동거인의 잠시 스치는 생각이었다. 정말 천만다행이다. 같이 사는 사람과 롱디 할 뻔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엔 동거인이 대학원 사람들과 광주로 지방 출장을 갔다가 잠시 대전엘 들러 성심당도 아니고 신점을 보러 간다고 한다. 대전에 빵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점을 보러 간다고? 그치만 나는 평소 사주, 신점, 타로, 신년운세에 관심이 아주 많아서 후기가 넘 기대됐다.
나는 챗gpt로 사주를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사주와 신점이 넘 궁금하고 재밌다. 그런데 신점은 좀 무서워서. 사주는 막상 가려고 하니 비싸고, 예약이 밀려있고(난 당장 보고 싶은데) 뭘 또 사주씩이나 보냐~ 하는 마음에서 안 가게 된다.
저녁에 퇴근하고 동거인을 만나자마자 신점 후기를 물어봤다.
"신점 어땠어? 처음인데 안 무서웠어?"
듣는 나도 놀랍고 신기할 만큼 동거인에 대해 잘 맞추고, 말 안 했는데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누가 귀인인지) 진로에 대한 조언도 꽤 괜찮다! 듣는 내내 내 귀는 팔랑팔랑 해져서 나도 당장 대전 신점을 예약할 뻔했다. 대전에 신점 보러 간 김에 성심당 가서 빵 사오면 되잖아? 이거 완전 러키비키잖아~ 심지어 동거인이랑 같이 신점을 본 다른 분들도 모두 잘 맞았다고 한다. 이러니 대전 신점 아기동자의 말은 다 맞는 말처럼 신뢰하게 되었다. I'm 신뢰에요~
신점 후기를 재밌게 듣다가 충격적인 소식도 들었다. 동거인이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임신운이 계속 들어와 있고 (1차 헉..) 2026년도부터 3년간 결혼운도 있어서 그 기간에 결혼을 하라고 했다니.(2차 헉헉;;;) 이제 곧 새해인데 그럼 내년에 '내 친구가 결혼이라니! 그럼 우리 동거가 진짜 2년도 안 남은 거네?' 놀랍고 벌써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신점에 과몰입한 오타쿠가 되어 나에게 친구가 2년 뒤에 결혼하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친구가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식장을 잡았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단지 신점에서 결혼운이 들어왔다고 했을 뿐인데 나는 어느새 친구를 보낼 준비를 하게 되었다.
서른 넘은 나이에, 사회가 정한 결혼 적령기에 동거를 하니 상대방의 결혼 소식이 우리의 동거 결별 사유가 되기도 한다. 잠시 영화 엽기적인 그녀 건우 역할을 맡은 차태현처럼 동거인 미래 남편에게 전할 메시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음 첫째,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아주세요.
두 번째, 저녁에 따뜻한 물로 디카페인 티를 준비하세요.
또 세 번째..' 다행히 이때 정신을 차렸다.
이렇듯 친구의 진로, 우리 중 누군가의 결혼,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의 동거는 금방 끝날 수도 있다. 우리의 동거가 유한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동거생활이 더욱 소중해진다. 어느새 '있을 때 잘해야지. 재밌게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된다. 우리에게 남은 2년이라는 시간이 벌써 아쉽고, 짧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정말 나와 잘 맞는 동거인을 만난 것 같다.
그럼 나는 동거인이 결혼하면 어쩌냐고? 우선 지금 사는 집이 정말 만족스러운데 월세가 100만 원이 넘어서 친구가 나가고 혼자 살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나도 아마 이 집을 나와서 새로 살 집을 구하거나, 혹시 어쩌면 동거인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신혼집을 구할 수도 있다. 이럴거면 친구랑 그냥 합동 결혼식 하자고 해야겠다. 이렇게 서울의 비싼 집값 문제는 혼자 살 집 구하기가 어려워 결혼도 시킵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현대사회의 풍자 같다.
2년 뒤를 떠올리자 그리 멀지 않은 시간임에도 또 내 미래는 영 모르겠다. 나도 대전에 용하다는 신점을 보러 가야 하나? 친구와 동거생활이 끝난 뒤엔 혼자 살지, 누구와 함께 살지 모든 것이 미정이지만 지금 현재는 확실하다. 내 방 옆에 동거인의 방이 있고, 방문만 열면 동거인을 만날 수 있다. 미래 고민을 떨쳐내고 대신에 지금 동거인과 함께 사는 이 삶에 더욱 충실해야겠다.
여담으로...
근데 대전 신점은 좀 궁금하긴 하다.. 어쩌면 다음에 '동거인이 다녀온 그 용한 점집에서 내가 들은 말은~’ 이란 주제로 브런치 글을 작성할지도 모르겠다.
저는 왜 이리도 사주와 신점이 재밌을까요.
신년운세 쫌 땡긴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