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방구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악동뮤지션 노래 중에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노래를 듣기도 전에 혼자 뭉클해졌다. 이런 문장을 떠올리다니! 대체 어떤 사랑을 해야 이런 가사를 쓰는 거야?
그런데 누군가와 한 집에 사는 것도 이런 마음이다. 아니 이 보다 더 추잡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방구냄새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의 마음이랄까? 내 동거인이 방구 냄새를 풍기고 다닌다는 말이 아니다. 내 동거인 네로는 고양이처럼 아주 깨끗하다! 우리 집에는 방구 냄새에 관한 일화 두 가지가 있다.
동거인 친구들이 동거인에게 동거하니까 뭐가 제일 좋냐고 물으니 동거인은 “아무 냄새가 안 나서 좋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의 반응은 "응? 나한테 냄새가 안 나서 좋다고?"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나와 살기 전에 남동생과 살았던 동거인 말로는 남자가 사는 집에선 남자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 냄새가 별로라고. 남동생이 있는 나도 문득 알 거 같다. 본가에 가서 동생 방문을 열면 뭔가 좋지 않은 냄새가 났던 거 같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집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뭔가 방구 냄새 같은 확실히 구린 냄새가 났다. 심하지는 않은데 불쾌한 냄새. 나 방구 뀐 적 없는데? 서로 무고함을 항변하다가, 원인은 부엌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도 방구 뀐 사람이 없어도 방구 냄새가 날 수 있다니.
우리의 방구 에피소드처럼 누군가랑 산다는 것은 방귀 같은 거 아닐까? (방구가 더 귀여워서 방귀, 방구 아무렇게나 쓸게요) 이게 무슨 방귀 뀐 소리냐면. 한 집에 같이 산다는 것은 서로의 방구쟁이 같은 면을 알게 되는 것이다.
데이트할 땐 몰랐는데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니 과민성 대장 이슈로 나의 아내 혹은 남편이 방구쟁이일 수도 있다. 수시로 뿡뿡뿡~ 이 방귀 냄새가 싫고, 소리가 기분 나쁘고, 밥맛이 떨어진다고 똥구멍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완벽해 보이는 상대방에게도 과민성 대장염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 조차도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그저 방구 냄새가 풍기면 악뮤의 아름다운 음률처럼 노래를 부르며 그 점까지 사랑하거나, 적당히 흐린 눈 하거나, 병원엘 데려가서 문제를 고쳐야 한다. ‘어떻게 방구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방구 대신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는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동거도, 결혼도 누군가와 함께 살겠다는 약속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애정으로 서로의 미숙한, 냄새나는 모습까지 아껴 줄 수 있어야 오래 즐겁게 잘 만날 수 있는 거 같다. 방구 냄새 싫어! 가 아니고, 왜 이렇게 방구를 껴? 몸이 어디가 안 좋은가? 하는 염려하는 마음. 혹은 방구 뀌는 걸 귀엽다고 여기는 마음. 그렇게 나만큼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있을 때 함께 사는 생활이 행복할 수 있다. 함께 사는 건 잠깐의 데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방구를 숨길 수 없다.
또, 우리 집 부엌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방귀 냄새처럼 같이 살면 우리가 원인제공을 하지 않았는데(아무도 방구 안 뀌었다구욧!) 방귀 냄새 같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쳐 방귀 냄새 원인을 알아보자! 하고 한 팀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하는 방식과 태도도 정말 중요한 거 같다. 나도 책을 읽다가 앞으로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다짐한 것인데, 동거인이 청소하기로 했는데 안 한 상황이라면 “청소 왜 안 했어?"라고 묻지 말고,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라며 동거인의 상황을 먼저 물어봐 주는 것이다. 다짜고짜 청소 왜 안 했냐고 따져 묻지 않고, 동거인이 무슨 상황으로 청소를 못 했는지 헤아리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물으면, 답변도 더 온화화게 돌아올 거 같다.
어제 본 밀라논나 유튜브에서 고민상담을 해주시는데 "사람은 그냥 고등동물이에요"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상대방에게 뭔갈 많이 기대하기보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쟤도 고등동물, 나도 고등동물이라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고등동물일 뿐! 완벽한 상대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동거인은 깨끗합니다. 방구를 뀌지 않아요. 방구 뀌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아, 아직 우리들의 동거생활에서 서로 대놓고 방구를 뀐 적이 없다. 나름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다.
방귀 냄새로 거창하게 말했지만, 같이 사는 것은 서로를 귀여워하는 것이 아닐까? 방구쟁이 뿡뿡이도 귀엽다. (아무 말) 서로 부족한 면, 냄새나는 면을 감싸주는 마음으로 상대를(동거인을, 연인을) 대하면 좋을 것 같다. 일단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면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물론 굳이 방구냄새 참지 않고 혼자서 온전히 내 취향의 디퓨저로 향기 가득한 삶도 참 좋다.
요새는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을 자주 떠올리는데 그것처럼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없다. 나에게 그저 잘 맞으면 된다. 내 마음 편한 대로, 내가 좋은 대로, 서로를 귀여워 하며!
역시 귀여움에 빠지면 답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