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화려한 축제 (4)
“저라면...”
'오빠 옆에 여자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만약 오빠가 내 남자 친구인데... 바람을 피운다면??..... 어휴~ 그 마음이 상상이 안돼... 아니,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 너무 현실적으로 답할 필요는 없지.'
마음속으로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 되는 상상의 흔적을 지운다.
“저라면..... 지나가는 남자한테 재빠르게 양해를 구해 팔짱 끼고 보란 듯이 지나갈 거예요. 남자 친구에겐 내가 먼저 바람피운 걸로 상황 정리하고.... 그 순간의 내 자존심도 지키고 상대도 가책 없이 지내길 바라요.”
“아, 신선한 답변이군요. 참가자분들이 다들 진지하게 답변을 주시고 계십니다. 자, 그러면 이어서 다른 질문으로 가봅니다. 참가자 5번.....”
'미스 S선발 대회'의 순발력 테스트가 마무리되었고, 심사 결과는 참가자들의 소속 학과 응원 점수를 합산하여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응원전? 이런 것도 있었어? 파트너 변경부터 응원전까지 당황스럽네. 우리 과 사람들에게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
응원 준비에 대한 사전 공지가 없었기 때문에 참가자가 속한 각 과에서 즉흥적으로 준비하여 무대에 올라온듯한 느낌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참가자들 일부만을 위한 응원전이 이루어졌다.
타과 응원전을 지켜보며 부러워하고 있는데, 무대 뒤편에서 우리 과 학우들이 일렬로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 나만 보면 놀리기 바쁜 보겸이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캠퍼스를 종횡무진하는 인성이를 비롯해 가수 이선희를 닮은 끼쟁이 연경이, 조금 전까지 무대 옆 건물에서 옷 갈아입을 때 나를 챙겨주던 아영이, 그리고 종수, 혜선, 기태, 도원이가 각각 양손에 4절지를 들고 상기된 채 서있었다. 무대에 올라와 순서대로 줄을 맞추어 서니 ’ 전진 영어 불멸 불패‘의 글자가 완성되었다. 삐뚤빼뚤하게 매직으로 쓰인 글씨는 얼마나 다급하게 준비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내 이름도 챙겨 써주었다, 고맙게도.
우리 00학번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한 콤비였던 보겸이와 인성이는 무대에서도 익살스럽게 끼를 표출했다. 어찌나 웃겼는지 진행자 김종석 씨도 박장대소했다. 이 기세라면 응원 점수가 크게 한 몫을 할 것 같았다. 응원전을 지켜보았던 참가자들은 다들 내가 1등 할것같다며 벌써부터 부럽다는 말을 했다.
응원 점수까지 합산하여 결과가 나오는 동안 객석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댄스 동아리 공연 무대가 펼쳐졌다.
'와~아아~~~ 동아리 공연이구나. 아, 그래서 오빠가...'
'앗! 오빠다.'
무대는 또다시 어두운 조명으로 바뀌며, 안개가 구름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댄스 동아리 멤버들이 무대에 우르르 등장했다. '백조의 호수'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조명은 다시 화려한 색채를 입기 시작한다.
신화의 'TOP'에 맞추어 댄서들은 각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What you gonna do what I gotta do
Keep me up and makin a cash
In flash at last do you wanna
See the light or stand alone
What you gonna do now what's up with the past
What you gonna do what I gotta do
This is how we do you niggas better know
Do you wanna see the light or stand alone
In the midst of flippin side puttin it down
Wild cornin through your town ~♬
아아아~~ 멋지다~~!
댄서들은 모두 광나는 소재의 블랙 컬러로 맞추어 입었고, 센터인 오빠는 흰색 정장을 입었다. 그렇지 않아도 환하게 빛나던 얼굴이 화이트 컬러에 반사되어 더 돋보였다. 절도 있는 춤사위와 고개를 돌렸을 때 도드라지는 날렵한 턱선.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머릿결.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신화 'TOP'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댄스 동아리 부회장
오늘의 이 무대가 나를 위한 것인지, 그를 위한 것인지 모를 만큼 그의 공연에 심취해 있을 때, 진행자의 목소리가 현실감을 주었다.
“여러분,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주셨습니다. 오늘 OO대학교의 축제 첫날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돌림노래로 합창하듯) 네~~~”
“네, 아주 열기가 뜨겁습니다. 허허. 축제의 첫 날을 이렇게 화려한 무대로 장식하게 되어 축제 남은 기간도 더욱더 기대가 됩니다. 자, 그럼 바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총 3명을 선발할 예정인데요, 바로 3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두구두구두~~~~ 효과음이 없어서 제가 직접 효과음을 냈습니다. 크하하하.....”
“자, OO대학교 ‘미스 S선발 대회’ 3등은요, 바로.... 참가번호 2번. 중국어과의 이서진 양입니다. 3등에게는 상금 50만 원과 트로피를 드립니다. 자, 여기 꽃다발도 받으시고요. 네네, 이서진 양은 여기에 서 계시면 됩니다.”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이어진다. 파리가 빠진 맥주를 다 마시고 새 맥주를 받겠다던 참가번호 2번 언니는 환하게 웃으며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어서 바로 2등을 발표하겠습니다. 아까 과 응원전을 펼쳤었는데 여기 학과가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죠? 하하하. 네, ‘미스 S선발 대회’ 2등은 바로 영어학부! 참가번호 4번. 차은서 양!입니다.”
3등이 발표되었을 때 나는 가망이 없겠다 싶어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2등이라니. 실로 믿기 어려웠다. 너무도 기쁘고 감사했다.
“2등에게는 상금 100만 원과 트로피가 수여됩니다. 네, 여기 꽃다발도 받으시고요. 축하드립니다.”
객석에서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무대 앞쪽으로 이동했다. 트로피, 상금, 꽃다발을 양손 가득 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 이제 대망의 1위입니다. 과연 어떤 참가자가 학교를 대표하는 명예의 1위가 될까요? 제가 한 번 먼저 결과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오~우. 네~!! 제 O회 ‘미스 S선발 대회’ 1위는요..... 바로 참가번호 8번 행정학과 강지유 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1등에게는 상금 300만 원과 함께 트로피가 수여됩니다.”
키가 175센티미터에 호리호리한 몸매가 매력적인 참가번호 8번 언니는 영광스러운 오늘의 주인공이 되었다. 왕관을 쓰고 지휘봉과 트로피를 양손에 들고 골드빛 망토를 걸쳤다.
진행자의 안내를 받아 세 명의 수상자가 무대 중앙에 서자, 연예인 시상식에서나 볼법한 카메라 세례가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추후 이 사진들은 학교 신문에 게재되었고, 엔터테인먼트사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 유학생들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들은 수상자들에게 서투른 한국말로 “언니, 언니!!! 너무 예뻐요~!”라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손이 쑤~욱 들어와 내 팔목을 덥석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