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ugae일공오 Jun 14. 2021

기억 完

'그냥 안에 계셔도 돼요. 그런데 바지도 말리고 가도 될까요? 젖은 채로 지하철 타기가 조금 그래서..'

나는 뒤돌아 그가 옷을 말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기다렸다. 조용한 숙소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드라이기 소리가 오히려 나를 더 차분하게 만들었다. 옷을 다 말리면 그 뒤에는? 축축 젖은 바지가 뱀처럼 내 다리를 감싸며 들러붙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얼마 후, 드라이기 소리가 멈췄다. 


내가 그에게 잠깐 쉬다가 가라고 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였겠지. 


그와 나란히 누웠다. 고요하고, 내 옷들은 여전히 젖은 채였고, 공기는 편안하지만 무거웠다.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내 곧, 그는 일정한 숨소리로 나의 감정을 흩트려놓았다. 어이없으면서도, 아쉬웠고, 짜증 나면서도 아련했다. 나는 가만히 제일 낮은 볼륨으로 노래를 틀었다. 어제 그의 집 근처로 가면서 내내 들었던 노래를. 


나는 멜로디보다 가사에 더 큰 중점을 두고 노래를 듣는다. 노래 가사는 내가 깨닫지 못했던 감정들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들을 더 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노래는 그를 위한 노래였다. 그와 나의 노래였다. 하지만 그와 같이 들은 적은 없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네가 생각나.'라고 말하기엔 우리 사이의 간격은 조금 멀어져 있었다. 잠든 그의 옆에서, 그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적당히 어두운 숙소에 누워, 창문 밖에서 번지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나도 눈을 감았다. 


잠든 것은 아니었다. 그냥 눈을 감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가 노래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을 보고 알아차렸다. 언제 깨어났지? 


'졸리면 더 자도 돼요. 제가 시간 맞춰서 깨워드릴게요.'

그는 대답 대신 이 노래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같은 노래를 두어 번 더 듣고 나서, 그가 날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노래에 취해있든, 그에 빠져있든, 나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든, 나는 그 말을 삼킬 수 없었다.


나는 말했고, 그는 대답했다. 


기차역으로 가면서 우리에 대한 얘기를 끊임없이 했다. 버스의 소음은 우리의 대화를 일상적이게 만들었지만, 일상적이지 않았고, 나란히 앉은 우리는 어색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햇살이 버스 창 안으로 내리비췄고,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다. 그는 항상 나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마다 항상 서로를 동영상에 담았다. 나는 기차 안에서 창밖에 서 있는 그를 찍었고, 그는 창밖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나를 찍어주었다. 우리만의 소소한 습관이었다. 아직도 그날 그가 입었던 옷이 생각난다. 기차가 출발하고 멀어질 때, 그의 표정과 행동들을 기억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