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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ugae일공오 Jun 04. 2021

기억 3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바다로 다시 향했다. 우리의 관계에서 달라진 사실은 하나도 없었지만 우리가 걷고 있는 땅과 하늘은 온통 붉었다. 우리는 그 속을 같이 향유하고 있었다. 한 걸음마다, 주황빛 향기들이 우리를 감싸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하늘이 너무도 그림 같다 감탄을 반복하며 계속 걸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음료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자연스럽게 골라 들고는 계산하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고, 나 또한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안다.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해는 이제 막 떠오르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바닷물이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온 보석들 같았다. 흔들거리는 보석 알갱이들. 그 위에 칵테일처럼 한데 섞여 오묘한 색을 이루고 있는 분홍빛 하늘.


'다시 바다에 들어가면 안 돼요?'

이미 바지를 한 번 적신 터라 둘 다 큰 망설임 없이 바닷물이 무릎에 닿을 때까지 첨벙 들어갔다. 우리는 에어팟을 나눠 끼곤 한동안 말없이 노래를 들으며 바다를 보았다. 내가 수년에 걸쳐 모아 온, 가장 아끼는 곡들을 들으며 그는 내 옆에서 말없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종종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알려주곤 했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을 곧 각자의 플레이리스트에 자리 잡았다. 마치 그것들이 본래 자신의 취향이었던 것처럼. 함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같은 부분에서 비슷한 감탄사를 내뱉고, 내 눈에 비친 그의 눈과, 내가 느꼈던 감정의 순간들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고작 무릎 높이까지 밖에 안 오는 깊이였지만,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와 표류하는 것 같았다. 내 주위에 있는 것이라곤 그뿐이었다. 지긋이 그 순간을 음미하고 있던 순간, 무언가를 발견했다. 절대 이 바다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화려한 색감을 지닌 오색 물고기.

'저기 좀 봐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도 그 물고기를 보았다. 그것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순간,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존재를 그와 함께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운명 같다고 생각케 했다면 너무나 과장스런 해석일까.


해는 어느새 우리 머리 위로 떠올랐고, 그 빛은 우리를 향해 일자로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다. 항상 마법을 부리는 존재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며 믿고 살아왔는데, 모든 것이 마법같이 느껴졌다. 그 모든 우연의 일치들이 신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들이 신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바다에서 벗어나 숙소 앞까지 걸어갔다. 그의 바지는 온통 젖어있었다. 여러 가지 말들이 생각나고 목구멍에서 맴돌았지만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도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나와 헤어지는 것이, 이대로 되돌아가는 게 그도 아쉬운 걸까? 나는 또 한 번 용기를 내야만 했다.

'양말만 드라이기로 말리고 가는 게 어때요? 저는 문밖에 있을 테니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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