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출발 10분 전 ;
기차 창문 너머로, 날 배웅하려 서있는 널 보니 기분이 참 그렇네.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고, 아니 사랑은 이내 변하는 것이라고 상충하는 의견들을 많이 들어왔는데
아직 내가 선택한 정답은 없어,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그런데 지금 정답을 고른 너의 눈을 보고 있자니 문제지 자체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같은 문제를 풀어도 정답이 제각각 다를 수 있는 주관식 서술형 문제인 걸 나도 알고는 있었거든.
그런데 막상 너의 정답과 내 정답을 비교해 보니
참, 알고 있어도 맞닥뜨리면 숨이 막히는 건 시험을 여러 번 봐도 똑같네.
기차 출발 5분 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너를, 나도 같이 바라봐.
내 입김이 창문에 얄팍하게 서리다 이내 사라져. 나는 그걸 보며 우리 같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아주 밀도 높은 구름 속을 같이 유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같은 입자들을 마시며, 같은 것을 서로의 안에 채운다고 생각했지.
근데 사실은 그냥 금방 사라져버리고 마는 내 입김 같은 거였나 봐.
네 눈 속의 밀도는 이제 다른 것들로 점점이 채워지고 있고 내게 익숙했던 것들은 사라지고 있어.
기차 출발 1분 전;
누가 그러더라. 실재하는 것이 왜 실재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네가 이해하든 말든 어차피 그것은 실재한다고.
나는 이렇게 실재하는 널 두고 간다. 이렇게 실재하는 나를 너는 언제부터 내버려 두었던 걸까.
기차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