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함에 수긍한다

*만둣국 :부암동 자하손만두

by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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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에 간다. 결코 걸리지 않으리라 굳게 믿었던 코로나 확진을 받고 수일간의 격리 해제 후 첫 외출이다. 평소만큼 오래 걸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래도 걸어본다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그리고 오래된 정류장을 지나쳐 볼 수 있는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너무 붐비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서울 한복판에는 어딜 가나 기대 이상의 사람들이 있다지만 조금 멀찌감치 비켜 지나갈 수 있고 가까운 곳에는 우뚝 선 산이 너무 멀지 않게 병풍같이 서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낮은 구름은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날은 어깨가 아주 살짝 젖을 만큼만 비가 왔고 적당하지 않은 운치가 동네에 내려앉아 있었다. 걷는 동안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닐 거야’ ‘컨디션이 조금 나쁜 거야’라며 수없이 되뇌었지만 야속하게도 일어났으면 하는 일 대신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고 판정은 냉혹했다. 더도 말고 무엇도 없이 그저 ‘양성’이라는 두 글자로 줄였다. 다음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한 격리였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평소보다 늘었다. 아이폰이 확인해 준 스크린 사용시간의 증감 안내 문구처럼 머릿속에는 그와 비슷한 알람이 떠올랐다.


엎드렸다 돌아눕기를 반복하며 베갯잇을 벌써 몇 번이나 새로 빨고 건조대에 말렸을까. 선명한 두 줄을 직접 확인해 보지도 못한 채로 보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람마다 아픈 정도는 모두 다르다는데 어쩐지 이번에도 과몰입하게 만들 만큼 이렇게 집중적으로 괴로워야 하는 걸까. 돌이켜 보니 코로나가 세상에 나온 뒤로 첫 감기이자, 강렬한 발병이었다. 마스크 착용의 효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이렇게 오랫동안 관찰하며 지켜본 게 얼마 만인지 체온은 내려갈 줄 몰랐다. 그간의 수감생활 동안 배달음식이 주는 특유의 자극에 절여진 입에 휴식이 필요했다.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자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서게 만들었고 여전히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슴슴한’ 음식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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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외갓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도 안되고. 단념하고 구글 지도를 켰다. 점점 불어나는 초록색 랜드마크는 보면 볼수록 인상적인 곳들 투성이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이곳으로 지도를 확대하게 된 데에는 진정으로 원하던 슴슴함을 제대로 머금고 있을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간 자리를 지키는 동안 이 장르에 명품 브랜드로 불리지만 그건 다른 장소의 같은 메뉴보다 높은 가격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이고 다르게 말하자면 값을 매기기 어려운 화려하지 않은 수려한 감칠맛이다.


꾸며내지 않은 자극 없는 슴슴함이 가져다주는 건강한 느낌은 맑은 데다 깊이 있어 조용히 한 모금 더 떠먹게 만들고 수긍한다. 수저를 들었지만 결국은 묵직한 그릇째 들어 국물을 삼키고 만두 속이 넘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움직이고 나면 아무런 저항 없는 투명한 맛은 먹기 좋은 적당한 온도로 몸 안까지 타고 들어온다. 하루에 끼니마다 반복되었던 服藥(복약)으로 쓰디쓴 입을 정갈하게 씻어내는 기분은 평소에 느낄 수 있는 슴슴한 보다 더 한 것이었으며 ‘보신’과는 조금 결이 다른 ‘회복’의 기운이 느껴졌다.


혈색이 조금은 더 짙어져 나서는 찰나, 아직은 이물감의 잔상이 남은 목에 힘을 주어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최대한 담백하게 남기고 가게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비는 그치고 날은 스산해 보였지만 어쩐지 조금은 더 가벼워진 발걸음은 집을 나서기 전보다 한결 가벼워 조금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든든함 마저 과하지 않아 편한 걸 보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부대끼기만 하던 지난 며칠과는 너무 다른 날이었다. 부암동에서의 하루를 그렇게 슴슴하게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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