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거짓말

*콩국수 :상암동 상암회관 콩국수

by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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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첫 콩국수다.


지난주 집에 잠시 들렀을 때 엄마한테는 오늘 해준 콩국수가 올여름 開市(개시)라고 했지만 실은 콩 국물처럼 새하얀 거짓말이었다. 지난밤 여행에서 돌아와 피곤한 눈을 치켜세우고 오랜만에 얼굴 한번 부닥치러 들르는 녀석 때문에라도 늦은 시각 아빠는 ‘이 시간에 믹서기를 써도 되는가’ 싶은 정도의 騷音(소음)에 잠에 빠져들면서 놀랐지만, 먹이 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證言(증언)이 있었다. 거칠게 갈아진 콩 국물을 보고 엄마는 내심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그 투박한 목 넘김 마저 거친 느낌을 즐길 줄 아는 ‘콩러버’가 되었다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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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갈아야 한다는 그래야 진정 맛있는 콩국수의 기본이라 가르쳤던 전 칼국숫집 오너였던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 걸 보니 엄마도 누군가의 자식인 게 틀림없다. 두 모녀의 스타일은 너무 다르지만 내게 콩 국물과 콩국수는 일정한 스타일만 맞으면 소금 없이도 때론 소금을 뿌려가며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이 계절에 가장 핫한 메뉴다. 작년에도 콩국수에 대한 禮讚(예찬)을 늘어놨고 그전에는 說破(설파) 했다. 어디에서든 나아가 어느 계절이든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고 紀行(기행)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했으니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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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어쩌면 냉면보다 담백한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기억에 鄕愁(향수)를 불러일으켜 예쁨 점수가 더해져 좋아지리라는 기대보다는 취향의 영역으로 분류하곤 했는데 확실한 건 자극적인 걸 평소에 즐기기에 담백하고 싶을 때 오롯이 담백한 걸 고르는 喜悅(희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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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에 소개될 정도로 슴슴한 북쪽의 맛에 빠져든 진한 육향처럼 魅了(매료) 된 사람들이 많지만 그와는 별도로, 개인적인 선택의 빈도를 따져봐도 하얀 국물 쪽에 줄을 서는 날이 많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고를 수 있고 대개 입맛 없이 ‘더워서’였으니까 그것 말고는 시원한 음식 맨 앞줄에 변함없이 서있다. 시즌 메뉴, 여름 ‘한정판’이기도 하니까. 여전히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다.


입버릇처럼, 하루에 두 번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이다. 중복 메뉴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지만 콩국수만큼은 하루쯤 허용된다. 콩의 종류나, 국물의 스타일 되직한 정도 간의 유무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되기도 하니까, 지켜야 할 건 딱하나 ‘중면’을 쓰는 것이다. 이에 여러 의견과 논쟁이 오간다면 所信(소신)은, 중면은 필수 요소라는 점이다. 메밀이나 그 어떤 것도 섞지 않은 하얗고 두꺼워 콩 국물을 제대로 끓어 올릴 수 있는 녀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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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배회할 뻔했던 늘어지는 주말 아침,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직접 만들어 볼 만한 떠오르는 메뉴가 없어 머릿속을 대신 배회하던 중, 지도에 익숙하지만 낯선 동네의 국숫집이 눈에 들어왔다. 멀지 않은 곳이었고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주말 방송국 주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한산할 터였다. 치열했던 평일을 뒤로하고 잠시 꺼진 TV의 정적,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자파만이 은근하게 느껴지는 상암동에 내려 會館(회관)으로 향했다. 높이 솟은 건물은 익숙했지만 주상복합처럼 보이는 딸려 있는 상가 가게 하나하나까지는 익숙지 않아서 입구를 찾는데 조금 헤맸다. 기다림 없이 운 좋게 앉을 수 있었고 그게 마지막 자리였다. 차분한 응대가 주문으로 이어졌고, 눈앞에는 뽀얗게 곱게 갈린 콩 국물과 그 안에 소복이 담긴 중면, 외모는 수려했다.


가장 일반적인 인상이 성공 확률이 높았던 것 같은데 그릇을 들어 국물을 조금 마셔보는 순간 조용히 놀랐다. 간이 되어 있는 ‘오늘 제대로’ 간 콩 국물이었다. 면은 알맞게 삶아져 있었고 풍미를 퍼 나를 만큼 力量(역량)은 충분했다. 첫 방문만으로 강렬한 기억은 실은 지난주 집에 방문했을 때 언제 갔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상암동에서 할머니와 비슷한 맛을 내는 결을 가진 ‘국숫집’을 찾았다고 壯談(장담) 했던 것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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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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